나는 한국말 표현에 뒷배라는 말을 좋아한다. 나의 듬직한 배후. 자랄 때는 부모님이 내 뒷배였고 그분들 덕에 별로 맘고생하지 않고 아쉬운 줄 모르고 편하게 자랐다. 나의 다이내믹한 삶은 25살에 부모님을 떠나 미국에 유학을 오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타향에서 혼자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난 뒷배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쩐지 내가 기댈 수 있는 고향 같은 푸근함이 느껴져서 참 좋다.
존 크라이들러는 사진을 막 시작하는 나에게 그런 뒷배 같은 존재였다. 그는 라이카 아카데미의 프로듀서이며 미국 동부의 아카데미 시니어매니저로 라이카의 모든 제품들을 죄다 꿰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나는 그를 2019년 필 펜만의 (Phil Penman) 뉴욕 스트리트포토 워크숍에서 첨 만나 난해한 컴퓨터와 같이 느껴졌던 디지털카메라를 바닥부터 기는 심정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일행을 제일 뒤에서 따라가는 나와 같이 걸으며 혹시나 낙오되지 않도록 챙겨주었다. 사진 찍는 것에 정신 팔려 아차 하면 뭔 일을 당할지 모르는 뉴욕 한복판에서 육 척이 훨씬 넘는 거구의 테디베어같이 맘 좋게 생긴 아저씨가 내 뒤를 봐주고 있다는 기분은 뭘로 설명하기 힘든 안도감을 주었다.
그는 나만이 아니라 많은 아카데미 참가자들과 인스트럭터들에게도 같은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낯선 도시에서 첨 방문하게 되는 라이카 스토어에서 어색해하며 카메라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봐야 할 때, 존의 이름을 내세우면 다들 긴장이 풀어지고 갑자기 친절해지곤 하였다. 마치 마법의 열쇠같이…
그래 저래 그의 이름은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우리 집 남편에게도, 아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진에 대해, 카메라에 대해 질문이 있으면 “존에게 물어봐” 하면서 서로들 얼굴을 바라보며 씩 웃곤 했으니까. 영어로 house hold name이란 말이 딱 어울렸다.
일 년 만에 포르토애서 다시 만난 존은 내가 오 년 전 첨 보았던 뉴욕에서처럼 여전히 톤이 좋은 목소리에 친절한 존 아저씨 그대로였다.
바닷가 촬영에선 내 모델의 머플러 끝을 잡아주어 바람이 쌩쌩부는 해변에서의 촬영을 만족하게 끝낼 수 있게 해 주었다. 프로듀서가 꼭 해 주어야 할 일은 아니었지만 선뜻 나서 주어 고마웠다. 그보다 일 년 전 방문했던 포르토의 그라함 와이너리에서 내가 모델과 사진 찍는 모습을 찍은 장면은 라이카 아카데미 홍보 사진에도 쓰였다. 가문의 영광이라고까지는 못하더라도 기분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존이 자기가 찍은 나의 모습을 그의 부서인 라이카아카데미의 홍보사진으로 써 준 것이 그냥 좋았다. (커버 사진)
(왼쪽사진: 칼러사진의 왼쪽 가운데쯤 머플러를 잡고 있는 존의 손이 보인다. 오른쪽사진: 파이널 본으로 그의 손을 크롭하고 이미지를 흑백으로 바꾸었다.)
포르토에서의 워크숍은 너무나 좋은 동료들, 도사급 선생과 프로듀서, 항상 웃는 얼굴로 우리의 식탁을 책임졌던 세이지의 엄마 메리까지 다들 모여서 그랬는지 워크숍 내내 어떤 특별한 에너지가 마치 마법같이 우리를 에워싼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퍼펙트했던 일주일간의 시간이었다. 모두들 커다란 행복함과 성취감을 미련 없이 즐겼고 감사했고 그리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포르토 워크숍의 그룹포토: 존과 마지막 찍은 사진. 제일 뒤편 두 팔을 들고 모두에게 축복을 내리는듯한 모습이 그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에게 축복을 선사하고 떠났다.)
이틀 뒤, 나는 같이 갔던 선생인 마크와 프로듀서인 세이지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세이지: “M, 존이 돌아가셨어.“
나: “………”
라이카아카데미의 프로듀서인 존은 포르토 워크숍을 같이 끝나고 필라델피아 집으로 돌아간 이틀 뒤 세상을 떠났다. 워크숍 내내 그는 천식 비슷한 기침으로 고생을 좀 했지만 그렇게 허무하게 갈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우리나라 속담에 “든 자리는 몰라도 빈자리는 안다”라고 하는 말처럼 요즘도 가끔씩 동료들이 모이면 존의 이야기를 한다. 그를 그리워하며. 모든 것이 전과 같지 않다고. 아마도 우리들은 그동안 그를 잃은 슬픔을 달래고 있었던 것처럼 서로를 위로하곤 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나부터 존과 같이 그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그는 마치 앞서나간 커다란 뒷배가 뒤에서 따라오는 조그마한 배들에게 좋은 본이 되어준 듯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지난주 엘에이에서 만나 저녁을 같이 했던 마크선생은 그와 동료 사진작가 몇몇이 힘을 합하여 존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을 만들거라 하였다.
“카메라에 대해선 무엇이든 물어보셔요.” 하던 존은 그렇게 전설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진설명: 미크와 존, 제임스와 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