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 인상 깊었던 사진을 추려 짤막한 설명과 더불어 이곳에 싣는다.
그녀의 이름은 앤 프랭크 (Ann Frank)이다. 남편과 나는 그녀를 제인 오스틴 소설 중 하나인 Pursuation의 조용하고 참한 주인공 Anne Elliot을 연상시킨다는 생각에 미스 앤 이라 부른다.
미스 앤은 남편 친구의 딸내미인데 여름동안 우리가 사는 포틀랜드 근처에서 물리치료사로 일을 하고 유타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 집에서 며칠을 묵었다. 나랑은 15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타로 처음 이사 갔을 때 약 반년 정도 내 회사에서 같이 일한 이력이 있어 딸같이 여기는 친구 중 하나이다.
소설 속의 미스 앤처럼 태어나기를 완벽주의자여서 그녀의 희망은 좀 편안해지는 것. 그러나 막상 그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떠나는 날 아침, 내가 “사진 찍어줄까?” 하고 꼬드겨 아무도 없는 우리 집 마당에서 둘이서 한 시간 너머 같이 촬영을 진행했다. 나는 사진기를 들고 그녀는 내 맞은편에 서서 뒷걸음을 치는 나를 따라 앞으로 나오면서 자연스레 찍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어쩔 줄 모르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해볼래? 네 생각은 어때?” 하면서 대화를 이끌었더니 점점 익숙해졌는지 한 시간쯤 지났을 즈음에는 긴장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장만 더 찍자고 청하면서 ‘이번엔 맘대로 춤을 춰 볼래?“ 했더니 그때 나온 모습이 아래 오른쪽 사진이다. 솔직히 나도 긴가민가 했는데, 본인이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었네. 보기 좋아요!“ 하며 활짝 웃었다. “맞아. 네게도 이런 모습이 있어. 이젠 즐기면서 살아도 돼.” 사진이 그녀에게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런 것이 힐링이 아니면 무엇일까? 싶었다.
아마도 나이 때문일 거라. 육십이 훌쩍 넘으니 가끔씩 자신들의 영정사진을 찍어달라는 친구들을 만난다. 대학동창 신일용 씨도 그중 하나.
난, 영정사진을 찍어 줄 테니 부인도 모시고 나오시라 부탁했다. 그래서 그들이 결혼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지 삼십 년이 훨씬 넘어서 드디어 그의 신부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세상에! 그 많은 세월을 같이 살아온 부부가 이렇게까지 내외를 할 줄이야. 내 앞에서 서로의 눈도 못 맞추고 한참 동안 실랑이를 했다. 아마도 한국사람이라서, 그것도 부인에게 나는 첨으로 만나는 남편의 여자 대학 동창이라 어색해서 일거라. 이분들 역시 아래의 자연스러운 사진이 나오기까지 한 시간 남짓 걸렸다. 마지막엔 아름다운 부인의 편안하게 웃는 모습까지 선물로 받았다.
촬영은 계속되어, 부인은 볼일이 있다 하며 먼저 떠나시고 일용 씨와 둘이서 촬영을 계속하며 그가 원하던 영정 사진도 찍었다. (아래 왼쪽) 그리고 맨 나중에는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그의 또 다른 얼굴을 보게 되었다. 사진기에 찍힌 그의 낯선 얼굴을 들여다보며 “아니 이 모습은 뭐지요? 왜 얼굴이 슬퍼 보일까요?” 그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아… 우리가 워낙 슬픈 존재 아닙니까?! 인간에 대한 연민입니다.”
“아. 사십 년을 알아온 이 친구에게 이런 면이 있었구나.” 첨 알았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모두 에디팅 해서 보낸 후 “영정사진은 마음에 드셨어요?” 하고 물으니 “아들에게 파일을 주었어요. 내 장례식에 쓰라고.“
할 말을 잃었다.
이 년 전 워싱턴 디씨 근처에 사는 대학 동창인 윤교수집을 오랜만에 방문하였다. 그 집 남편인 윤교수(남편과 성도 직업도 같다)와도 즐겁게 대화하는 사이라 편안하게 가족사진을 찍어 주겠다 청하였다. 그 집에 사는 골든레트리버인 유리는 한 살 때 처음 만나 십 년을 넘게 보아왔는데 벙벙 뛰어다니던 아이가 걸음도 느려지고 현저히 나이 든 티가 났다. 나도 벌써 네 번째 반려견과 같이 사는 마당에 어쩌면 세 명이 같이 찍는 마지막 가족사진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래 왼쪽 사진이다.
오른쪽 사진은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며 보았던 남편인 윤교수의 모습. 이 사진을 보면서 나는 ”어떻게 칠십이 훌쩍 넘은 초로의 남자가 이렇게 순수한 어린아이의 표정을 지니고 있을까?!“ 의아했다. 옛날 선비의 모습을 연상시키던 그녀의 남편이 교수가 천직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다.
지난봄, 이년만에 다시 방문한 그녀의 집에 유리는 없었다. 대신 과거의 단란했던 가족의 모습을 기념하는 사진 속의 유리가 거실 책장 위 유리 액자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저도 저런 사진 하나 찍고 싶어요.“
2023년 파리포토에 참가하러 떠나기 바로 전, 친구가 지인이라며 나에게 소개해준 파리의 안 가이드가 자신의 SNS에 이렇게 올린 글을 보았다. 그가 찍어 올린 사진은 루브르의 유명한 소장품 중 하나인 나이키 (불어로 니케라 부른다고) 상 앞에 서있는 그의 고객의 폼나는 모습이었다. 나는 갑자기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속담과 사진기는 맨날 들고 다니지만 정작 내 맘에 드는 본인 사진 하나 만들기 어려운 내 처지가 생각나 “제가 찍어 드릴게요.“ 하며 나섰다. 아래의 이미지들은 안 가이드와 첨 만나서 사진도 찍고 저녁도 같이 먹으며 촬영한 것들이다. 비록 너무 늦어서 루브르의 니케상 앞에는 못 갔지만 피라미드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소원 이루었다고 너무 좋아해 주니 내가 되려 고마웠다. 생전 첨 만나는 사람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는 게 이렇게 쉬울 수가 있다니. 모두 사진을 배운 덕이다.
그 후로 안 가이드와는 파리에 갈 때마다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급기야 지난겨울에는 그 댁 가족들과 내 남편도 같이 만나 저녁식사도 함께하고 그의 가족사진도 찍어주었다. 이번 겨울에 파리에서 볼 때는 내 아들과 다 같이 만나고자 한다. 가이드와 고객으로 만난 사이가 가족과 같이 어울릴 수 있게 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사진을 배우니 이런 일도 생긴다.
다음엔 니케상 앞에서 가족사진을 찍자고 해야겠다. 조금 오래 살다 보니 그렇게 할 수 있는 순간에는 그 일이 나중에 얼마나 귀하게 느껴질는지를 모르고 지나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어서다.
소원은 의지와 행동이 뒤따라야 이루어진다. 생각만 백날 하다 날 샌다는 말도 있다.
파스칼 씨는 아틀라스 산맥을 지나 사하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유명한 관광지인 아이트 벤 하도우에 위치한 아름다운 호텔의 사장님이다. (영화에도 많이 나오곤 하는 유명한 유적지이다.) 우리의 가이드 압둘의 소개로 어쩌다가 그의 인물사진을 찍었는데 방에 돌아와 정리한답시고 키보드 하나를 잘 못 눌러 메모리 카드 속의 파일이 다 날아가버렸다. 실수로 다 지워진, 어디에도 없는 사진파일들을 찾으며 갑자기 몇 시인가 시계를 보니 밤 열두 시, 자정. 너무 놀래서 머리가 하얘진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하얘지는 경험이란 걸 알았던 밤. 모로코의 아틀라스 산맥을 내려와 사하라 가기 직전의 자그만 초소 같은 도시에서 한밤중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담날 새벽 여섯 시.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서 새벽에 일하러 온 삼개국어를 (영어, 불어, 아랍어) 구사하던 모로코 청년인 유니스를 설득해서 내 조수로 임시 고용하고 (파스칼 씨는 영어를 못했고 나는 불어를 못해 통역이 필요했다.) 기다리던 파스칼 씨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셋이서 전날 저녁에 사진 찍었던 곳들을 다시 방문하며 재 촬영을 성공리에 마쳤다.
물론 파일이 사라진 것을 고백하지 않고 떠나는 쉬운 방법도 있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어느 한국 여자 사진사가 내 사진을 잔뜩 찍어놓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 는 말은 도저히 한국사람으로 들을 수가 없었다면 누가 믿어줄까? 그러나 그 말은 정녕코 진심이었다. 한국의 국위를 선양하지는 못할지언정 흑탕물을 끼얹다니… 사십 년 차 교포에게도 그건 아니었다. 자정이 넘어 이멜로 재촬영 약속에 답해 주었던 파스칼 씨를 그렇게 새벽에 다시 만났다. 다행히 그는 나의 사진이 맘에 들었고 나는 그가 원하는 파일들을 유니스에게 인터넷으로 다 전송했고 유니스를 통하여 파스칼 씨가 진심으로 고마워한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재촬영의 기회 덕분에 그 전날 찍지 못해서 서운했던 “사장님과 당나귀” 사진도 얻었다.
언젠가 모로코에 또 갈 일이 있다면 그 호텔에 꼭 들려 새벽부터 나와 함께 수고해 준 유니스와 내가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는 방에 가서 증명사진을 찍어오고 싶다.
지구 반대편에서 만났던 참 좋은 사람들이었다.
이외에도 나의 모델 중에는 포르토의 외진 골목길에서 만났던 포르투갈의 평범한 할머니들, 광주 KTX플랫폼에서 길거리 캐스팅을 당해 나와 함께 춤추며 사진 찍었던 멋쟁이 전직 대학교 학장님, 수채화가님, 나의 예술가 친구들, 연변에서 오신 조선족 웨이트리스 여사님들, 부탄에서 축제 때 만났던 어린이들, 대한민국 육군의 헬기조종사 장교님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모두 언듯 보면 평범했지만 조금만 알게 돼도 모두 특별하게 다가왔다. 가만히 세어보니 지난 이 년 반 동안 내가 만나고 찍은 모델들이 거의 백 명이 넘어가는 듯했다. 깜짝 놀랐다.
인물사진만 백 명이 넘게 찍었다면 많은 숫자라 생각되지만 그들의 사진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으면 당시 사진 찍을 때의 온갖 기억들이 죄다 생생하게 떠오른다. 참 이상하지? 어떻게 그 많은 기억들이 그렇게 많이 쏟아질까 싶을 정도로 모조리 생각이 난다. 그러면서 서서히 머리가 맑아지곤 한다.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혹시, 사진을 찍으면 치매가 예방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그런 연구를 아직 안 했다면 혹 성공적인 박사 논문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장비 설명: 거의 모든 사진은 라이카 M11 모노크롬과 녹틸러스 50mm F1.2 렌즈로 찍었다. 내가 인물 사진을 찍을 때 즐겨하는 세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