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
2006년에 개봉한 <V For Vendetta>는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나탈리 포트만과 매트릭스에서 스미스 요원 역을 맡았던 휴고 위빙이 출연했다. 이 영화는 근미래에 독재국가가 된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회 혼란을 틈타 등장한 독재자가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침묵과 복종을 강요한다. 공포와 불안에 짓눌린 국민들은 폭력과 감시가 일상인 삶을 받아들인다.
그러던 평화로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브이'는 공포와 폭력으로 쌓아 올린 질서에, 폭력으로 균열을 내기 시작한다. 헌법재판소를 폭발시키며, 그는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게 있을지라도, 이를 방관한 시민들도 같은 질량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이비'는 매일을 살아내기 위해 애쓰는 소시민이다. 그러던 두 사람은 우연히(브이는 운명이라고 말한다) 만나게 되고, 브이와의 만남을 통해 이비는 점차로 변하게 된다.
브이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이 포크스의 마스크를 쓰고 나온다. 그는 국가의 폭력으로 인해 과거의 자신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그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실제 외모는 어떻게 생겼는지, 고향은 어디인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오직 그의 말과 행위를 통해 그의 신념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반면에 이비는 가면을 쓰지 않았지만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국가가 원하는 사람, 타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쓴다. 너무 오랫동안 스스로를 억압한 끝에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사람이다.
브이는 이비를 납치해, 자신이 당했던 폭력을 그대로 재현한다. 아무것도 모른 체 고통과 두려움에 떨던 이비는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자신과 직면하는 것을 선택한다. 이비의 내면에는 불안과 공포, 두려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 자신으로 살고픈 마음,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지켜낼 수 용기가 있었다. 마침내 연극이 끝나고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온 이비의 온몸에 빗줄기가 세차게 떨어진다. 이비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두 팔 벌려 떨어지는 빗줄기 속에서 오감으로 전해지는 자유를 만끽한다. 겁먹은 어린아이였던 과거의 자신을 애도하고, 새로운 자신을 맞이하는 떨림이 혼재하는 자각의 순간이었다. 그때 이비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는 대사가 ‘God is in the rain’이다.
신의 존재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고양의 순간, 자신의 내면과 외면이 한 치의 틈도 없이 완벽하게 일치되는 자각의 순간, 그 순간을 상징하는 말이 ‘God is in the rain ’인 것이다. 그 자각이 어떠한 것이었는가는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알 수 있다. 이비는 그 이전의 겁먹은 소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브이가 자신의 목숨을 재물로 신념을 실현하는 것을 목격한 목격자이자, 그의 이야기를 후세에 전 할 기록자가 되었다. 브이가 국회의사당을 폭파시키고 난 후의 세상을 새롭게 건설해 나아갈 각성한 자이기도 하다. 실수할지언정, 실패가 두려워 자신의 의지를 남에게 의탁하지 않는 홀로 선 사람이 된 것이다.
이 영화는 주로 독재정권 하에서 주권자의 각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내가 내 자신이 되는 것을 막는 모든 것으로 확장시켜 생각해 볼 수 여지가 충분히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진정한 자신을 자각하게 하는 사람을 만날 기회나, 사건을 접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 만남은 결코 유쾌하거나 즐겁지가 않다. 대부분 오랜 세월 타협해오며 만들어진 껍질이 박살날만큼의 충격을 동반한다. 어떤 이는 그 충격에 더 움츠러들어 주저앉고 말기도 하며, 어떤 이는 껍질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알아채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그 또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