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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외 출장자의 하루

by 친절한 알렉스


새벽 4시.

알람이 울린다.


자는 둥 마는 둥, 뒤척 뒤척,

다시한번 핸드폰 시계를 보자, 정신이 번쩍 든다.

여행지에 갈땐 여핸지 (여권, 핸드폰, 지갑) 를 챙기라 했다.

짐을 들고 나선 동네의 새벽 거리,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공항버스에 올라타,

노래한곡 들어본다.


인천공항 2터미널.

아침 댓바람 부터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

다들 어디로 이렇게 가는걸까?


수속을 마치면,

가벼워진 몸으로 면세점을 향한다.

면세점 근처에 가면 여러 회사의 향수가 뒤섞여 독특한 향이 풍기는데,

내가 지은 그 이름,

'인천공항 에디션 넘버 5'

언젠가 분명 신상품으로 출시될거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라타,

환한 미소를 머금은 승무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내 자리는 어디일까? 두리번 두리번,

자리에 앉아 벨트를 매며 주변을 한 번 둘러본다.

왼쪽은 가족여행,

오른쪽은 신혼여행,

아이쿠, 나만 혼자 일하러 가네.


그렇게 많은 비행을 했건만,

이륙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아이 무셔라,

어린 시절로 돌아가 눈을 질끈 감는다.

이내 '레이디스 앤 젠틀맨'으로 시작하는 기장님의 정겨운 영어가 들리면,

아, 이륙에 성공했구나, 하며 안심을 해본다.

맛없지만 맛있는 이코노미 기내식은 한국에서 먹는 마지막 밥,

볶음 고추장은 최고의 반찬이요,

조미료맛 미역국은 최고의 국이로다.


영화 한 편이 채 끝나기 전에 찾아오는 졸음에 스르륵 잠들어 보지만,

달콤하던 잠은 그리 오래 못 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변한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

혼자 남은 엄마생각,

아내와 아이들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착륙할 때가 된다.


다른 나라 특유의 이국적 냄새에 적응할 틈도 없이,

오늘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며 분주한 발걸음을 이어간다.

왁자지껄 신나게 떠들던 사람들도,

여권에 도장 찍어주는 아저씨 앞에서는,

입학식에 참석한 초등학교 1학년들처럼 고분고분.


할아버지가 꼭 성공하라고 지어주신 내 이름,

저 멀리 수십 개의 푯말 중에서 단연 눈에 띄네.

다른 나라에 와서 처음 만나는 사람은 언제나 운전기사,

어찌 그리 다들 코리아를 좋아하는지,

두유노 지성 팍?

두유노 BTS?

하다 보면 저 멀리 어디서 많이 보던

반가운 우리 회사 로고가 보이는구나.


나를 맞으러 걸어 나오는 동료의 웃음은 세상 처음 보는 함박웃음,

가장 높은 매니저 방으로 찾아가 먼저 인사를 드려야 하는 것은,

한국이나 유럽이나 미국이나 매 한 가지,

가벼운 인사와 안부를 전하며 본론으로 들어간다.

업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두 눈이 반짝반짝,

시차적응 완료!


내일 일정을 위해 호텔로 가는 길에,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식당에 모인 7명의 동료들,

인도에서 온 챠트리,

루마니아 에서 온 안드레아,

중국계 미국인 크리스,

다들 저마다의 사연으로,

이 곳에 모여 한 식구가 되었네.


호텔로 돌아오면 갑자기 외로운 기분에 TV부터 틀어 보지만,

왜 호텔 TV에는 뉴스밖에 볼게 없는건지,

그렇게 오래 영어공부를 했건만,

현지 뉴스는 아직도 잘 못 알아 듣겠네.


아직 한 끼밖에 안 먹었는데,

벌써부터 생각나는 매콤한 라면 국물,

피곤한데 잠은 잘 안 오고,

호텔 안에 비치된 널찍한 책상에 앉아,

펜을 집어 들고,

메모지에 괜히 이것저것 끄적끄적.


완성된 하나의 문장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며,

푹신한 침대에서 잠을 청해 본다.


'나는 이 세상 최고의 글로벌 세일즈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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