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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옹 Dec 05. 2023

김장철 배추더미 앞에서의 프러포즈

왜 하필 시장통 거기였는가

날이 쌀쌀해지고 김장철만 되면 19년 전 받았던 그 첫 번째 프러포즈가 생각이 난다. 그건 내가 스무 살이었던 2004년 12월의 첫째 주 금요일이었다. 나름 나의 일생일대의 대 사건이어서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남자친구와 사귄 지 백일은커녕 두 달도 채 되지 않던 때였으니.


내가 대학에 들어간 그 해에 아버지는 지방으로 발령이 났고, 가족들이 아버지를 따라가서 서울에서 학교를 다녀야 했던 나만 홀로 원래 살던 집에 남았다.  


엄마는 내가 남자친구가 생긴 걸 아주 금방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는 내가 어릴 적부터 “남자친구가 생기면 바로 엄마한테 말하는 거다”라고 늘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기자마자 쪼르르 신고했다. 엄마는 걸려든 내게 아주 좋은 제안을 하듯 말씀하셨다. 당시 산본에 살고 계셨던 큰 이모네서 통학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남자친구의 집은 산본과 가까운 안양에 있었다. 이모댁과 버스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통학거리는 많이 멀어졌지만 우리는 집 방향이 같아져 더 오래 있을 수 있게 되었다며 마냥 좋아했다. 그것이 엄마의 앞서간 걱정에서 비롯된 계략인 줄도 모르고. 우리는 갓 스무 살 된 누군가와 처음 사귀어보는 순진한 커플이었으니 말이다.


이모네 집은 금정역에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더 가는 곳에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같이 오래 있고 싶고 집에 빨리 가는 것이 아쉬워서 금정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지 않고 이모네 집까지 한참을 걸어가곤 했다.


그날도 금정역 앞에 있던 산본시장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12월 날이 제법 많이 쌀쌀해졌을 무렵이었다. 장갑을 끼지 않으면 손이 많이 시렸다. 남자친구와 잡고 있던 내 손을 남자친구의 점퍼 주머니 속에 넣고 걷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그 말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동물을 좋아하던 나는 나중에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면 마당 있는 집에서 개와 고양이를 한 마리씩 키우면서 살고 싶다는 소박하고 머나먼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물끄러미 들으며 이어지는 남자친구의 말은


“그 집에서 나도 같이 살고 싶다.” 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당연히 당황했다. 헛웃음이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대체 지금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건가? 그것도 정식으로 사귄 지 두 달도 되지 않았을 그 시점에.


그래서 남자친구를 쳐다보며 다시 물었다.


“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는 거야?”

“ 응. 나중에 0이랑 결혼할 거야. "


그 질문에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남자친구는 그 자리에서 바로 나와의 결혼을 다짐해 버렸다. 그것도 장난이 아닌 아주 진지한 눈으로.


생각하지도 않은 뜻밖의 말에 사귀자고 고백받을 때 보다 얼굴이 더 빨갛게 달아올랐다. 좋아하는 건 맞는 거 같아서 사귀긴 했다. 그래도 결혼이라니. 스무살이었던 그 시점부터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 같았지만 결혼은 인생의 가장 큰 사건이 아닌가? 그런건 다섯 살짜리 꼬맹이도 본능적으로 알겠다. 그러니 이모네 집에 갈 때까지 한참 남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김장배추가 수백 포기 쌓인 시장 입구 앞에서 프러포즈를 받게 되었다. 이상적인 프러포즈로 상상할 장면조차 그리지도 못한 채.


이것이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의 그저 어린 날의 추억에 불과하다면 이곳에 뻔뻔하게 글을 쓰고 있을 리 없겠다. 그 남자친구는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에 정말 내 남편이 되었고 나의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으니 말이다. 난 사귀는 10년의 세월이 그리 쏜살같이 지나갈지도 몰랐다.



오랫동안 나는 그 시장통 길바닥에서의 언약을 프러포즈로 치지 않았다. 그래서 사귀는 10년 동안 프러포즈에 대한 나의 로망을 생각날 때마다 흘리듯이 주입시켰다. 가령 예쁜 야경이 보이는 조용한 곳이 좋겠다고도 했다. 야구장같이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프러포즈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했었던가. 나의 꿈을 지키고 싶어 때로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가 사귄 지 딱 10년이 된 그 해에 여의도의 야경이 눈에 들어오는 마포대교 북단의 어느 조용한 장소에서 나의 로망에 충실한 프러포즈와 반지를 받았다.


그래도 결국 진실한 의미의 프러포즈는 산본시장 김장 배추더미 앞에서 받은 그게 되었다. 나의 낭만과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그 배추더미 앞에서 남자친구였던 남편의 아주 진지한 눈을 바라보고 어쩌면 나도 모르게 그 순간 이 남자와의 결혼을 결심해 버린 걸까?


매년 겨울철이 시작되고 마트에 배추더미가 보이면 남편에게 물어본다. 그때 도대체 왜 뜬금없이 결혼하자고 했냐고 말이다. 그러면 남편은 볼맨 소리로 매번 되묻는다. 그래서 나랑 결혼한 거 후회하는거냐며. 나는 그저 아무 말 않는다. 날씨가 항상 맑음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우리의 연애와 여태까지의 결혼생활이 대체로 온화한 기후였을 수는 있겠다. 마치 캘리포니아의 기후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그 캘리포니아라고 어찌 폭풍우와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 없었겠는가? 캘리포니아에는 가끔 우박이 사납게 떨어진다. 게다가 캘리포니아는 환태평양지대다. 지진도 나고 해일도 온다. 우리의 연애와 결혼생활도 그랬다. 그리고 정말로 우박이 지나가듯이 갈등이 스쳐 지나가던 날들도 있었다. 우박이 지나간 자리같이 쑥대밭이 되면 복구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내년이면 남편과 만난 지 20주년이 된다. 몇년 전부터 따져보니 이제 우리는 서로 인생의 절반을 같이 보냈다. 그 세월 동안 나는 내 연애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거의 하지 않았다. 남사스럽다기보다 둘 사이의 이야기는 둘만 소중하게 간직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가 별 말이 없으니 그냥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이나보다. 별 노력 없이 처음부터 잘 만나서 백년해로를 향해가는 운 좋은 사람들이라고 여기는 듯한 말을 들으면 슬쩍 억울하다.


그래도 수 십 년의 세월이 쌓이니 이제는 사랑과 연애라는 무게에 대해 입을 뻥끗해본다. 그것은 감정은 참으로 복잡한 것이었고, 소중히 여겨야 지킬 수 있는 것이었음을. 물론 우리에게 행운도 있었겠지만 서로를 향한 감정에 대한 노력을 치열하게 수반했으니까 여기까지 온 거라고. 그게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가 아니겠냐고 이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 과정에 대한 여타 에피소드는 생각날 때마다 풀어보겠다. 일단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할 것 같다. 사실 이 이야기를 올린다니 자기의 흑역사가 나온다고 생각하는지 별로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이런 건 ’일단 결재 올리고 알아서 하고 도장은 나중에‘ 라고 생각하지만. 남편은 요즘 은근히 내 브런치를 보는 것 같다. 지금쯤 퇴근하고 있을 텐데 집에 와서 뭐라고 할지는 들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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