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이 무슨 인형놀이쯤인가?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옛날 컴퓨터 게임을 아는가? 1980년생부터 99년생까지의 광범위로 퉁치는 MZ세대에 해당된다면 (물론 그 전 후의 나이라도) 이 게임을 꽤 알 것이다. 90년대에 딸을 키운다는 참신한 콘셉트를 내세워 출시된 이 게임은 이후 여러 속편을 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90년대 당시 컴퓨터 게임은 주로 남자아이들이 하는 놀이였다. 그래도 이 딸을 키우는 게임으로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여자아이들이 내 또래 중에서는 꽤 있을 것이다. 내가 왜 이 게임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냐면, 아이 둘을 키우는 아줌마가 된 이 시점에서 이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게임을 다시 생각해 보면 양육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에 대해 꽤 많은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게임을 알게 된 건 1995년 내가 11살 때 고모댁에 놀러 갔을 때였다. 나와 사촌 언니 오빠들은 나이차가 많이 나서, 당시 이미 대학교까지 졸업한 성인들이었다. 어른들이 이 국딩 꼬맹이랑 재미있게 놀아줄 수 없으니 컴퓨터 게임이라도 시켜줘야 했으터. 언니 오빠들은 마침 네가 아주 좋아할 만한 게임이 하나 있다고 했다. 컴퓨터로 딸의 이름을 지어주고 생일을 정해주고 오프닝을 보고 나온 갈색머리 소녀 딸내미가 세상에 너무 예쁜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그 가상의 딸과 나는 나이가 딱 동갑이었다.)
당시 구형 컴퓨터로 테트리스와 고인돌 게임이나 하던 나에게 이 게임이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고모네 집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은 후다닥 지나갔고 게임을 다 끝내지 못한 나는 아쉬운 마음을 접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프린세스 메이커>와 사랑에 빠졌다. 당시 우리 집에는 오래된 386 삼보 컴퓨터가 있었지만 <프린세스 메이커> 게임을 구동할 수 있는 최소사양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걸 하려면 컴퓨터를 새로 사야 했다.
그런데 그 당시 컴퓨터가 좀 비싼 물건이었는가? 당시 최신 펜티엄 컴퓨터가 400-500만 원쯤 했다. 지금으로도 명품가방 정도의 가격인데, 물가 상승률까지 감안하면 초딩이었던 나는 요즘의 등골브레이커 따위와 비교가 안되는 불효자식이었다. 게다가 애가 겨우 게임한다고 이런걸 사달라는데 도대체 어느 부모가 선뜻 사주겠는가?
게임에 제대로 홀린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가 아니었다. 책을 사서 혼자 도스를 공부하고, 컴퓨터 학원에 다니며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따고, 또 책을 보며 혼자 베이직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당시 다가올 21세기 정보화시대에 대한 기대로 컴퓨터 배우기에 대한 열풍이 불기는 했었다. 이때의 나의 열정은 컴퓨터 특기생으로 바로 대학갈 기세의 거의 무슨 꿈나무 수준이었다.
아무튼 우리 부모님은 나의 이런 이상한 열정에 감복하셨는지 기가 막히셨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드디어 6학년 때 우리 집에 최신형 586 컴퓨터인 세진컴퓨터의 모델명 세종대왕님을 모셔왔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프린세스메이커를 어렵게 구해 정품으로 사 왔다. 나는 그 게임 가격이 얼마나 정확하게 기억난다. 3만 8천 원. 이 또한 그 당시 물가를 생각해 보면 참으로 사악한 가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컴퓨터를 다루는 건 학교에서는 남자아이들 정도였다. 그때는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아주 희박할 시절이라 컴퓨터 게임을 구입하기보다도 디스켓에 불법 복사를 해서 공유했었다. <프린세스 메이커>를 갖고 있던 덕분에 동네에 사는 남자아이들과 컴퓨터 지식과 게임에 대한 우정을 자연스럽게 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이 딸 키우는 게임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것이 아닌가? 이 녀석들은 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인 <대항해시대>, <영웅전설>, <삼국지> 등을 카피한 디스켓들을 마치 보물처럼 건네며 이 게임과 교환하자고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춘기였던 이 녀석들은 게임보다 이상한 잿밥에 관심이 있었다. 으이그 변태 같은 녀석들 같으니라고. 여자아이였던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게임은 아는 사람은 다 알 듯이 양육을 표방했지만 그런 개념만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게임이다. 10살부터 18살 소녀를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한다는 이 게임의 시나리오는 남성(전쟁에서 이긴 용사)이 전쟁고아가 된 소녀를 양녀로 입양해서 키운다는 것이다.
딸을 키운다는 것을 모성의 영역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래서 여자아이인 나는 이 게임을 좋아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게임은 남성이 어린 소녀를 입양해서 키우는, 양육적 관점보다도 철저히 소녀라는 존재에 대한 남자의 관음증적인 시선에서 그려낸 것이었다.
그래서 이 게임에는 딸에 대한 신체 노출이 많은 일러스트도 상당수 나온다. 심지어 어떤 파일을 지우면 게임 속의 딸이 옷을 입지 않은 전라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꼭 게임 일러스트뿐만인가. 내용 자체가 어른이 되어 다시 생각해보니 내 딸이 초등학생이라도 이 게임을 하는걸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여러 황당한 내용이 있지만, 이 게임의 솔직한 주제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건 역시 키우던 딸과 양아버지가 결혼하는 엔딩일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게임심의라는 제도와 한글번역을 거쳐 이를 아버지를 모시고 같이 사는 효녀 엔딩으로 바뀌었다는게 재미있다면 재미있는 포인트랄까.
아동 청소년 보호법도 존재하는 지금의 정서로 바라보면 이 게임의 내용이 다소 야만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 시대는 그런 게 별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관음증적인 관점보다도 내가 이제 육아를 해보니 아이를 키운다는 이 게임은 지금 기억해봐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하지 않은 자녀 양육의 의미란, 지금도 도대체 무엇인지 말이다.
이 프린세스 메이커 게임을 보면 양육이라는 건 마치 인형같이 예쁘게 생긴 아이를 그림같이 키워내는 것 같다. 아이가 고분고분 말을 따르고 스케줄에 맞춰 딱딱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로만 나오니 육아란 얼마나 참 쉬운 것 같은가?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게임은 특히 양육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인형 놀이쯤으로 보일 육아 개념의 한계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게다가 30년 전의 그 이상한 관점과 지금 이 시대의 사회에서조차, 이 프린세스 메이커적인 육아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음을 느낀다. 어쩌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초저출산 사회가 된 이유와도 맞닿아 있지 않을까 싶어 이 이상 야릇했던 추억의 게임을 소환해 본다.
전편 나혜석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족, 육아에 대한 사회적인 통념은 잘 변하지 않는다. 글이 벌써 길어지니 다음 시간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