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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옹 Dec 08. 2023

첫눈과 어른이 되어가던 기억들

그래서 언제부터 어른이었나


어릴 때 겨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었다.


이유는 아이다웠고 단순했다. 나는 겨울에 태어났고, 크리스마스에는 산타 할아버지도 오시고, 무엇보다도 겨울은 하얀 눈이 내리는 계절이니까.



나는 스물 중반쯤까지도 눈이 오는 걸 좋아했었다. 첫눈이 오면 약속을 미리 잡지 않아도 꼭 만나야 했던 사람이 있었다. 겨울이 되면 영화 <러브레터>를 꼭 봤다. 여전히 눈이 쏟아지면 헤드셋을 끼고 그 영화 가장 처음에 나오는 음악인 His Smile을 찾아 들으며 그 시절을 기억해본다.


난 분명 눈 내리는 날을 사랑했었다. 말라 비틀어진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오래전 군대를 갔던 남자친구가 수신자 부담 전화로 하소연했던 일이 생각난다. 강원도 부대에서 몇 날 며칠 눈만 쓸고 있다던 그는 하얗고 아름다운 눈을 악마의 배설물을 가리키는 적나라한 단어에 비유했었다.


그 말을 듣고 남자친구의 고생이 느껴져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이 사람은 나와의 낭만은 다 잊었다는 섭섭한 마음도 조금 들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철이 없었던 거다. 내 또래 남자애들은 대부분 그렇게 눈을 맞으며 일찍 어른에 가까워졌을 것이다. 20대 초반 소년의 티도 벗지도 못한 채 군대에서 아저씨 소리를 들으며 가장 혹독한 사회를 경험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눈이 오면 마음이 얼마나 들뜨는지는 내가 얼마큼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척도 같은 것이었다. 확실히 해마다 눈이 올 때의 감흥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눈이 처음으로 싫어졌던 건 회사를 다니면서부터였다. 때로는 다섯 시쯤 일어나서 출근해야 할 때도 있었는데 겨울이면 칠흑 같은 시간이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눈이라도 오면 출근길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연말 회식 시즌에 눈이라도 만나면 더 싫었다. “ 회식날 눈이 오니 얼마나 낭만적이냐. 이럴 때 술을 더 마셔야 몸이 춥지 않다. “ 지금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그런 말들이, 종로인지 을지로인지 여의도인지 기억이 희미한 장소들과 뒤죽박죽 섞여있다.


나는 나같은 취객들로 빽빽한 막차를 겨우 잡아 의자가 아닌 어딘가에 몸을 겨우 기댔다. 집에 오는 길은 너무 길어 지치곤 한다는 패닉의 <달팽이> 노랫말 가사를 떠올랐다.


그리고 길거리 차바퀴의 시커먼 때가 묻어가는 눈뭉치를 바라보았다.



진짜 어른이 된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아이들이 걸음마를 떼기 무섭게 나는 잊고 있던 동심을 다시 끄집어내야 했다.


눈이 오면 아이들은 용수철이 달린 강아지같이 밖으로 퐁퐁 뛰어갔다. 나는 설원의 예티 같은 몰골로 눈을 머리털에 묻혀가며 아이들을 쫓아다녔다. 십수 년 전 군대에서 눈을 치우던 옛날 그 남자 친구는 내 옆에서 여전히 눈은 악마의 배설물이라고 애들이 들리지 않게 혼자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뒷모습은 마치 시베리안 허스키 같았다. 개에 비유해서 미안하지만 뭐 나는 예티였으니.


티 없이 맑은 표정으로 꺄르륵 웃으며 눈밭을 뒹구는 아이들. 고생이 첩첩해도 그 모습을 보면 행복해진다. 그렇게 말라 비틀어진 마음 구석 어딘가 흔적 정도 남은 순수한 마음을 끄집어내 본다.


왜 어릴 때는 뭘 하든 설레고 행복했을까? 그리고 어른이 되었다는 건 결국 무슨 의미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치열함과 책임감 속에서 여유가 점점 사라진다는 말인 것 같다. 그나마 아이들은 내가 까맣게 잊고 지낸 동심이라 부르는 낭만과 여유를 복원시켜 준다.



올해 여름은 다시 떠올려봐도 이 세상 날씨가 아니었다. 가을도 미지근했고, 12월 한복판을 향해가지만 겨울도 전혀 겨울답지 않다. 밖에 나가자마자 귀때기가 시려야 겨울인데. 정직한 아이들은 아직도 가을이란다. 눈이 쌓이지 않아 입이 빼쭉 나왔다.


그런 큰 아이에게 엄마가 어릴 적 좋아하는 노래였다고 지누의 <엉뚱한 상상>을 소개해줬다. 크리스마스를 기대해 보라고 하면서. 막상 이렇게 말하면서도 지금의 날씨 같으면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 수 있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겨울 시즌송이 우리 대중가요에서 사라진 지가 오래되었다. 아이들이 커가며 그런 낭만의 시절이 존재했었노라고 종종 말해줘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세상이 변해가지만, 아이들이 다 커도 나는 눈이 오는 날을 기다릴 거다. 영국의 어느 시인이 그랬던가. 무지개를 보고 설레지 않으면 죽는 게 낫다고. 눈도 마치 무지개 같은 것이다. 내가 비록 무미건조한 어른이라고 해도 행복했던 기억을 완전히 잊은 건 아니니까. 죽는 게 낫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쓴 건 무언가에 설레는 마음은 사람의 삶을 태우는 연료 같은 것일 거라는 의미로 쓰신 것 같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예를 들어 그 옛날 보라색 하늘에 눈이 떨어지던 그날 밤,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연락을 망설이던, 혹은 기다리던, 인생에서 가장 설레던 그 순간의 기억 하나 정도를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불을 태우는 듯 떠올리는 기억일지라도.


사람은 결국 사랑했던 그 순간을 기억하려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살아갈수록 느낀다. 그 순간을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엊그제 일처럼 출력할 수 있음이 그 증거일 것이다. 아무리 각박한 세상이라도 우리는 살아가는 이유, 추억을 놓지 못하는 이유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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