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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옹 Jul 16. 2024

프롤로그 : 내가 다닌 9개의 학교들

“ 1985년생인 나는 공무원 아버지, 전업주부 어머니 사이에서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


자기소개로 흔히 쓰이는 이 클리셰적인 문장에서 바로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을 떠올릴 것이다. 나는 사회를 계층으로 나누어 뭉뚱그려 구분 짓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단어라는 프레임은 때로 편견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어린 시절 사회의 중산층은 지금보다 더 두텁게 형성되어 있어 그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그렇기에 내 성장과정을 누군가가 이해하기에는 이보다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은 서울사람이 아니다. 나 역시 출생한 곳은 부모님의 고향이다. 우리 가족의 서울살이는 아버지의 근무지가 서울로 바뀌며 시작했다. 그때가 내 첫 돌이 지난 직후였고 아직 80년대였다. 우리는 개발이 한창이던 서울 택지개발지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우리 가족은 내가 걸음마를 떼자마자 서울로 이주했다. 내가 유치원, 국민학교를 입학할 때까지 우리는 5년 간 줄곧 같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울에 쭉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1992년 국민학교에 갓 입학한 어느 날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우리가 어쩌면 좀 멀리 이사를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내 기억에 이사를 다닌 경험은 없었으니. 물론 동네에 이사를 오고 가는 사람은 보았지만. 그게 정말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어쩌면 단절이라는 의미일지, 변화라는 의미일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교육학자 페스탈로치는 ‘아이에게 전학은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단다. 이 말을 요즘 식으로 응용하자면 나는 어린 시절 인생을 10 회차쯤 산 것이다. 어느 곳에 이사를 가든 비슷한 곳은 하나도 없었으니.



그렇게 거의 1년에 한 번 꼴로, 서울과 지방, 해외까지 떠돌며 이사를 다닐 줄도 몰랐다. 당연히 그건 우리 엄마도, 어쩌면 근무지가 늘 바뀌는 당사자인 아빠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공무원이 왜 이렇게까지 자주 전근을 다녔는지 궁금해할 수도 있겠다. 우리 아버지는 공무원 치고 좀 특수한 일을 하셨었다. 자세히 설명하면 복잡해지고, 무엇보다도 아버지께서 내가 떠벌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실 것 같다. 이렇게까지만 설명할 수 없는 사정임을 십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렇게 내 나이 8살 때부터는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계속 이사를 했다. 어느 날 문득 세어보니 고등학교까지 다닌 학교가 9군데.. 그것도 서울과 지방 소도시 광역시 미국까지 다녀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나만큼 자주 환경이 뒤바뀌며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은 별로 만나지 못했다. 간혹 아버지를 군인으로 둔 사람 중에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례를 알게 되었다.  


내 이런 사연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경험 하셨네요. 그런데 힘드셨겠어요’라고 반응한다. 나는 그때는 그냥 사는 게 원래 그런 건 줄 알았다. 어쩌다 알게 된 그 군인 자녀들도 이런 경험을 그냥 덤덤한 말들로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과 서로 동병상련의 무엇을 느낄 고된 느낌이 없는 것조차 비슷해서 신기했다.


 

이런 성장과정에 대해 별 생각이 없이 20대를 쭉 보내다가 30대에 결혼을 했다. 신혼집 마련은 경제적인 사정에 맞췄지만, 결혼하고 살아갈수록, 특히 출산 이후 아이를 데리고 살 주거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내 어린 시절의 경험을 저절로 복기하며 굳건히 지키고 싶은 신념이 있었다. 내 새끼만큼은 반드시 초중고를 같은 동네에서 논스톱으로 보내보리라. 아이들만큼은 반드시 ‘안정된 삶’을 살게 해 주겠노라고 말이다. 나는 30대까지는 안정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다시피 살았다. 어쩌면 그 집착 덕분에 삶의 기반을 나름대로 성실하게 추구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안정만을 추구하던 가치관에 이제 와서 회의감이 밀려오는 거다.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몇년 전 코로나로 바뀐 세상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저출산으로 급변한 인구 구조는 당장 10년이 아니라 5년 안에 여러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고, 인공지능 같은 개념 또한 그럴 것이다. 그 누구도 당장 5년 후도 섣불리 예측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과연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과거와 같은 교육의 패러다임을 고수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미래에 살아남을까? 그럼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키워야 할까? 이 생각은 이 글들의 마지막 꼭지에 다시 정리해보고 싶다.



개인의 경험에서 파생된, 그것도 지금부터 30년 이전 시절을 거슬러 복원한 내용이다. 아주 치우치고 신빙성에 의문이 들지 모르며 그에 따른 내 의견은 당연히 주관적일 것이다.


그래도 주변인들에 따르면 나의 기억력은 마치 코끼리 같다. 8살 때부터 진심으로 일기를 열심히 쓰던 습관 때문에 비교적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기억을 정확히 재생하는 것보다 내 오랜 경험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쓰는 글이다. 아마 읽는 사람은 할머니가 들려준 옛날 이야기 같은 글이 그닥 재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주된 이유가 있다. 사실 나도 요즘 가끔씩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아이들이 행복할지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제일 큰 장점은 사유로 생각을 정리하며 나 자신이 성장하는 거 기에, 글을 직접 써보며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오류의 가능성을 생각해 주시고 내 글을 간접적인 경험의 장으로, 웬만하면 직관적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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