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아옹 Oct 01. 2024

2017 : 우리 가족은 어디에 살아야 할까

그동안의 세월을 앞으로 몇 배속으로 빨리 돌려야겠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던 나는 결혼을 했다. 스무 살 때부터 만난 남자친구와 연애를 10년 채운 시점이었다. 나에게 결혼은 꼭 해야 하는 인생의 목표라기보다 아마도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하게 될 것에 가까웠다.


여기서 결혼의 의미를 다시 짚어 본다. 나에게 결혼이라는 것은 나의 새로운 가족의 결성을 의미했다. 오래 만난 남자친구는 이미 가족같은 존재였고, 부부가 되어 만인 앞에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책임질 가족이라고 선언하는 것 같은 의미였다.



그리고 우리 둘 사이에 아이라는 존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지금은 결혼과 가족의 형태가 점점 다양해지고 달라지고 있지만 나에게 결혼은 분명히 그런 의미였다.


결혼할 때 가장 필요한 건 집이다. 결혼식은 생략할 수 있어도 둘이 삶을 영위할 공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첫 신혼집을 어디로 구할지 결정하는 과정은 특수한 상황에 처하지 않았다면 대부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집값은 예나 지금이나 월급쟁이들이 부지런히 모아서 살 수준이 아니다. 그리고 결혼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해야 하니 집을 구할 때 내 직장과 남편의 직장의 통근거리 정도만 염두했다. 나와 남편의 직장은 서울이니 수도권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요즘은 결혼이 곧 아이를 동반하는 의미가 아니지만, 우리에게 결혼이라는 의미는 아마도 아이를 내포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집은 가족의 보금자리라는 본연의 의미에 충실한 것이었다.


하지만 씁쓸하게도 현실적으로 아이까지 고려하면 더 많은 주거비용이 필요해 보였다. 나는 당장 조금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더라도 아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성장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싶었다.


우리 부부에게 아이는 허니문 베이비로 찾아왔다. 생각보다 빨리 엄마가 되어 당황스러웠지만 연애를 오래 했기에 기쁜 마음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내 나이와 비슷한 연식의 구축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었다. 낡은 아파트의 불편함보다 그 당시에 유행하던 갭투자 열풍 속에서 나는 수시로 바뀌는 집주인과 주거의 불안정으로 갈등하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집을 사는데 완전히 꽂혀버렸다. 당장 어디서 큰돈이 생겨서 집을 살 수 있었던 상황은 아니었다.


그나마 나는 부동산에 또래들보다 일찍 관심을 가진 편이었다. 어릴 때 대치동 학원에 다닐 때도 한참 돌아가는 버스에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가격차이가 왜 나는지 생각했다. 대학 다닐 때도 부동산 특강을 꼭 들었고, 직장이었던 은행을 다니며 민법, 경매, 재건축, 최신 부동산 대출 규제들을 자연스럽게 꾸준히 접하며 공부할 수 있었다.



다만 그때는 지금보다 금리가 낮아 대출을 비교적 쉽게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마저도 집값이 과도하게 비싸다고 여겼기에 매매보다 주거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전세를 선호하던 시절이었다.


금전적인 이유를 떠나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절대로 이사를 자주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연재글의 프롤로그에도 썼듯이 나는 다짐했었다. 내 새끼만큼은 한동네에서 초중고를 나오게 하리라. 나는 지금도 내 한 끗 빼또롬한 성격이 내가 이사를 자주 다닌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처음 집을 구할 때 가장 고려요소였던 직장과의 거리가 다소 멀어지더라도, 아이들과 오래 정착을 할만한 동네라면 그 정도는 달게 감수할 것이었다. 그래서 적어도 아이가 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집을 반드시 매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니까 집을 사는 이유는 우리 부부보다도 아이를 위해서였다.


그 와중에 내가 어릴 적 살았던 아파트 단지 중 하나가 재건축이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청약이 당첨된다는 보장은 없었기에 큰 기대는 없었다. 다만 왠지 여기로 돌아갈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정말로 청약에 당첨이 되었다. 주변에서는 분양가가 비싸다며 손해 나는 것이 아니냐며 말리기도 했지만, 그렇게 나는 기쁘게 돌아갔다. 집은 말 그대로 보금자리였으니. 산란기에 강을 거슬러 올라가 보금자리로 가는 연어처럼. 나에게 이 지구상 어디에서라도 아이와 살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져도 나는 연어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내가 어릴 적 기억 중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더듬어보며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이사를 하고 내가 사는 동네가 30년 전의 그 동네가 아닌 전혀 다른 곳임을 깨닫기 전까지는 그랬다. 시대가 변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고 세상이 변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나와 내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은 확실히 뭔가 이상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었다. 인구가 유래 없이 소멸하는 초저출산 시대. 나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이들을 키울수록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