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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비 Jul 10. 2021

Ep 7. 인천 상륙

불꽃으로 뒤덮인 인천의 하늘

  1950년 6월 25일-. 내가 제주에서 한창 공비 토벌에 열중하고 있던 때, 그 지긋지긋한 동족상잔의 6·25사변이 일어났다.

  탱크와 박격포, 비행기를 앞세운 북괴는 평온하기만 했던 우리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었다. 당시 아군은 물밀듯 내려오는 북괴를 물리치지 못한 채 부산까지 후퇴하는 쓰라림을 겪었고, 이는 너무도 생생한 일이다. 제주에 주둔하고 있던 우리는 이때에도 주간에는 한라산의 공비 토벌 작전을 계속하면서 밤에는 본격전을 대비한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목포의 해군 경비 부대가 이곳으로 철수했으며, 곧이어 떼 지어 내려온 피난민의 수용 작전 임무를 맡았다. 상륙용 수송선 LST정에는 피난민이 산더미처럼 실려 왔다. 나는 이때 제주에서의 피난민 수용 임무가 인연이 되어 지금의 부인과 결혼하게 된 인연을 가졌다.


  전황은 우리에게 계속해 불리해지기만 했다. 아군의 전선은 낙동강까지 위축되었다. 9월 4일 미군의 6·25 참전 소식과 함께 나에게도 이동 명령이 내려졌다. 반격전을 위한 이동인 것이 분명했지만 상부에서는 모든 것을 극비리에 진행시켰다.


  이틀 후 우리가 도착한 곳은 부산이었다. 이곳에서는 당시의 UN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 더 이상의 전략은 알 수 없었다. 8일, 우리는 부산부두에서 미국으로부터 급송된 신무기를 지급받았다. M1소총이며, BAR자동소총, 경기관총 60밀리 박격포, 총류탄 등 모든 것이 최신무기였다. 그리고 철모에서 군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개인 장비 일체가 지급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받은 무기의 대부분이 처음 보는 무기였으므로 사용 방법을 새로이 익혀야 했다. 무기 분해결합 등 극히 기초적인 무기 취급 방법을 이틀 동안 교육받고, 우리는 미 해군 함정 피카웨이 호에 탑승, 목적지도 모른 채로 항해 길에 올랐다.


  선내에서 엄격한 통제를 받은 우리는 13일 정오나 되어서야 장교급 이상만 갑판 위까지 오르내릴 수 있는 자유를 허락받았다. 갑판 위에 올라온 나는 눈앞의 풍경에 입이 벌어졌다. 주위 바다가 군함, 구축함, 각종 함정의 연속이어서 마치 육지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일본 해군 시절의 상륙 훈련을 회상한 나는 비록 정확한 지점은 몰랐으나 분명히 상륙 작전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의 현 위치가 일본 오키나와 서남방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본 함정에는 미대 ‘아이젠하워’의 특사인 로우 소장과 해군 참모총장 손원일 씨, 신현준 해병사령관 등이 탑승한 것으로 미루어 총지휘본부에 탑승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를 실은 함대는 14일 제주, 서, 북 방해상을 항진했는데, 이곳에서도 소속을 알 수없는 함대 20여척이 합류했다. 그것은 아군의 낙동강 전선이 약간 허물어진 듯한 기세를 본 북괴가 그 지역에서 최후의 공격을 가하고 있는 틈을 이용해 서울을 탈환함으로써 적의 허리를 두 동강 내겠다는 맥아더 사령관의 작전 계획이었다. 한편 이 같은 항해 속에서 우리 해병대는 부산에서 지급받은 각종 신무기에 대한 훈련을 받기에 진땀을 뺐다. 함대 내의 훈련은 심신을 모두 피로하게 했다. 더욱이 우리가 부산을 떠나 인천 앞바다에 도착하기까지 꼭 4일동안 받은 함상 훈련은 적이 아무런 동요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총 한방을 쏘지 못하는 방식이었다.


  함대가 인천 앞 영종도 부근에 도착했을 때 함대 마이크는 각자가 지급받은 무기를 사용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이번 전투에 참여하지 말라고 알려왔다. 그러나 우리 해병대에서는 그 누구도 무기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없었다. 14일 밤 12시쯤 드디어 인천 상륙을 위한 모든 준비를 재확인한 다음 곧이어 인천과 월미도를 향한 함포사격이 시작되었다.


  새벽하늘은 불꽃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기동함대는 더욱더 진격 인천 시가지의 적정을 살피기에 동분서주했다. 크고 작은 함정 260척이 마치 소나기가 내리듯이 퍼부은 함포사격 뒤의 인천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하늘은 붉게 물든 가운데 시가지는 온통 화염으로 뒤범벅되었다. 제 2차 공격이 또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비행기들의 인천 폭격이었다. 이 정도의 폭격이면 개미새끼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다.


  드디어 새벽 5시 상륙이 시작되었다. 미 해병 제 5연대가 월미도의 적색해안에 상륙을 시작했고, 이어 상오 11시 한국 해병대가 청색해안에 상륙, 인천 시가지로 돌진해 들어갔다. 모든 것이 폭격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되어 버렸을 것 같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비록 잔여 병력이었지만 괴뢰군들의 결사적인 저항은 우리의 진격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거리마다 시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러 당장이라도 코피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약 5시간 정도의 공방전은 약간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결사적으로 저항하던 괴뢰군들도 신무기와 용감한 우리 해병대의 전투 태세에 질린 나머지 인천 북방인 주안 쪽으로 도망갔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전투에서 얻은 노획물은 차마 입으로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정신을 놓쳐버린 듯한 괴뢰군들은 갖가지 무기를 버린 뒤 민가에 침입, 괴뢰 군복 대신 사복으로 변복을 하고 달아나더라는 시민들의 제보였다. 국군의 상륙을 반기는 시민들은 우리들의 목을 껴안은 채 풀어줄 줄을 몰랐다.


그칠 줄 모르는 환성은 마침내 괴뢰의 붉은 사슬에서 풀려나온
희열의 넘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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