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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비 Jul 10. 2021

Ep 9. 마포 시가전

남대문을 완전히 점령하다

9월 23일 새벽 3시-. 우리는 연희고지와 104 고지에서 도주한 괴뢰군의 뒤를 쫓아 본격적인 서울 시가전에 들어갔다.

  당시 전투 단장인 김두찬 씨(4대 해병사령관)는 우리 1연대에게 마포를 거쳐 서대문-효창공원-청파동-서울역-남대문 그리고 서울시청까지의 탈환을 전투지역으로 확정했었다. 그리고 미 해병의 주력부대인 5연대는 서대문구 아현동을 거쳐 중앙청을 탈환하도록 계획되었으며 후속 부대인 육군 17연대는 9월 26일 상오에 남산을 거쳐 서빙고 쪽으로 진격, 서울을 적의 마수로부터 완전히 탈환키로 했다는 것도 시달되었다.


  제6중대 1소대장인 나는 선임 장교였기 때문에 모든 전투에서 언제나 선두에 서야 했다. 마포 입구에 접어든 우리는 이곳에서 적의 산발적인 공격을 받아, 최초의 시가전을 벌이게 되었다. 이때 우리는 시가전의 애로점 때문에 빠른 진격을 하지 못했다. 최후의 발악을 한 괴뢰군들은 민가에 몸을 숨긴 채 우리에게 사격을 가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적들을 가능한 밖으로 유인한 다음 사살해야 했다.


  단 한방이면 민가가 날아가 버리는 각종 자동화기의 사용은 잘못하다가 적에게 인질로 붙잡힌 무고한 시민까지 죽여야 하는 경우를 최대한으로 막아내기 위해서였다. 당시의 서울 시가전은 마포에서 남대문까지 군 지프로 약 20분 정도의 거리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서울시청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3일이 걸렸던 것은 그때의 시가전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효창공원을 지나 청파동까지 진격한 우리는 그동안 적 8명을 사살하고 72명의 포로(부상자 13명 포함)를 붙잡는 전과를 올렸다.


  예정대로 우리가 서울역 탈환을 위한 준비를 하는 동안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우리는 서울시청을 불과 1km밖에 남겨두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했다. 그것은 당시의 전투는 괴뢰군들이 야간 공격을 택한 데 비해, 우리 아군은 주간 공격을 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역에는 진격군의 서울 탈환을 지연시킬 것을 목적으로 한 괴뢰군 2개 중대 3백여 명이 진을 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으므로 우리 대원들에게도 충분한 휴식을 주기로 한 것이다.


  24일 새벽 우리는 청파동에서 서울역 후문 쪽의 철길에 진을 쳤다. 적은 현재의 서울역 건물 안과 철로에 있는 기차 등을 은폐물로 삼고 우리에게 사격을 가했다. 다행히 이곳에는 시민들이 단 한 사람도 인질로 붙잡혀 있지 않은 듯했기 때문에 모든 화력을 서울역사에 집중시킬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소대원에게 적을 정 조준한 사격보다는 서울역 건물을 중심으로 한 탄막을 형성토록 했다. 적은 비 오듯이 쏟아지는 탄환을 막아낼 길이 없었던지 기차 등을 은폐물로 한 불과 30여 명만을 최종 지연 부대로 남기고 남대문 방면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서울역을 점령한 우리의 전과는 적 사살이 6명, 그리고 전상을 입은 포로가 5명이었다.


  후속 부대가 벌써 청파동에 진격했다는 무전을 받은 우리는 곧 서울역에서 남대문으로 향한 태평로의 시가전에 들어갔다. 바야흐로 서울 시가전에서 가장 어려운 시가전이 시작되었다. 적의 방어진이 의외로 튼튼했다. 태평로는 불과 몇 10분 전에 내가 서울역을 공격할 때와 똑같은 탄막이 형성되어 있었다. 적은 길 양편 50m 지점마다 방공호를 팠고 그 위에 모래가마니로 바리케이드를 친 가운데 모두가 기관총으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적이 2명씩 매복해 있는 방공호에서는 기관총탄이 우리 해병을 향해 쉴 새 없이 날아왔다. 진격이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러나 우리는 서울시청을 1초라도 빨리 탈환해야 한다는 결심이 서 있었으므로 길에 있는 갖가지 은폐물을 이용해서 한 발자국씩, 그리고 또 한 발자국씩 진격해갔다. 나는 먼저 뒤따라오는 대원의 사기를 살릴 것을 결심, 단신으로 적의 제1호 방공호의 접근을 시도했다. 이때의 아군들은 나의 접근을 최대한으로 지원키 위한 엄호 사격을 맹렬히 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불꽃 튕기는 쌍방의 사격은 그칠 줄을 몰랐다. 한편 방공호의 접근을 위해 포복을 시작한 나는 적의 허점을 알아낼 수 있었다. 집중 공격보다는 단신의 포복 공격이 바리케이드를 없애기에 훨씬 편리한 것을 알아낸 것이다. 그것은 적이 진격하는 입장보다는 퇴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홀로 접근하는 것을 손쉽게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래주머니 속에 숨어있던 적은 고개를 내밀어 앞을 주시할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했다.


  드디어 1호 방공호 5m 지점까지 접근한 나는 수류탄을 빼내어 정확하게 방공호를 향해 던졌다. 쾅! 하는 순간이었다. 적의 기관총이 하늘 위로 치솟았고, 방금까지도 그토록 요란했던 총성이 잠자듯 조용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류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은 2호 3호의 적병이 남대문을 향해 도주함과 소대원들의 기관총탄에 맞아 길 위로 나뒹구는 모습들의 보인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나머지 공산군들도 무기를 버린 채 도주하거나 또는 두 손을 높이 들고 우리에게 항복을 해오기도 했다. 이날 새벽부터 시작된 남대문까지의 시가전은 우리가 남대문을 완전히 점령하기까지의 전투시간은 약 11시간이 걸렸다.


  남대문을 완전히 점령한 우리는 또 한 가지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대문 지하도 속에는 적병이 우글대고 있었다. 적은 이곳에서 우리에게 사격을 가했다. 나는 처음에 약 2개 중대 병력(3백 명)이면 충분한 병력을 하필이면 지하도에 들어 떼죽음을 기다리는 전법을 택했을까 하고 의아스러웠는데, 사실은 그들은 전투를 하기 위한 정규군이 아니었고 마포, 서울역, 남대문 등지의 패잔병들이 숨을 곳을 찾다가 이곳에 모이게 되었다는 것을 포로로부터 듣게 되었다.    

 

  수차례의 항복 권유에 저항하는 지하도의 적을 향해 나는 화염방사기를 쓰도록 명했다. 그때야 적은 앞을 다투어 항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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