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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비 Jul 11. 2021

Ep 10. 서울시청 탈환

서울 하늘에 태극기가 휘날리다

9월 25일 남대문이 탈환됐다.


  나는 문득 내가 사관학교 시절에 사귄 S누나의 가족 안부가 걱정되었다. 누나 강인숙의 집은 내가 있는 곳에서 불과 200m 안팎밖에 되지 않았다.


  구 대한일보 옆, 그러니까 현 중앙산업의 바로 옆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쪽 지역을 완전히 탈환하지 못했으므로 자유롭게 활동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소대원 2명을 데리고 누나 집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지금의 현대 경제 신문사 뒷길로 숨어 들어간 나는 이곳에는 적이 없다고 판단하고, 누나의 집 대문을 세차게 두들겼다. 집안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아무리 두들겨도 응답이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누나의 큰딸인 ‘희정이’를 부르면서 삼촌과 대한민국 국군이 왔다고 소리쳤다. 그때야 방 안에서 인척이 나기 시작했고 이윽고 누나가 얼굴을 내밀었다. 아무 말 없이 창백해진 얼굴을 조심스럽게 내보인 누나는 아직도 겁에 질려있는 표정이었다.


  나는 대문을 박차고 들어가 “죽지 않으셨군요”하고 인사를 했다. 누나는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나의 목을 껴안고 통곡하면서 가족이 모두 피난을 가지 못한 채 기나긴 100일 동안의 여름을 불안과 초조 속에서 보냈다고 했다. 방 안으로 들어간 누나는 방 돌 밑에 숨어있던 가족들에게 “정모 삼촌이 우리를 구하러 왔다”라고 외쳤다. 집안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다. 누나의 통곡은 물론 나도 울었고, 소대원들도 한없이 울었다.


  한참 후에야 나의 군복을 본 누나는 해병 소위의 전투복 차림을 한 내가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던지 몇 번이고 나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우리 국군이 서울을 완전히 탈환했느냐”라고 물었다. 나는 “우리가 방금 남대문을 탈환하고 서울시청을 탈환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누나는 어젯밤(24일) 음식을 구하기 위해 덕수궁 쪽엘 갔더니 시청에는 괴뢰군들이 상당수 있더라고 했다. 누나는 그날 밤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서 누군가가 잃어버리고(?) 간 듯한 콩비지를 주워와 꼭 3일 만에 배를 채웠다고 했다. 누나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창백하다 못한 얼굴색은 오히려 검푸른 빛을 보였다.


  우선 부하들에게 통조림을 몇 통 가져오도록 한 다음에 나는 시청 탈환을 위한 적정 탐지에 나섰다. 남대문에서 시청까지의 적의 진지는 너무도 견고했다. 시청 앞 넓은 길의 적 방어진은 길 양편에 방공호가 파진 것은 물론, 길 복판에는 모래가마니를 높이 쌓아두고 기관총 좌대를 설치했다. 첫눈에 정면 공격은 아군의 피해가 클 것이라 직감하고, 나는 측면 공격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믿음직스러운 뒷모습을 쳐다보는 누나의 눈길을 뒤로하고 누나 집을 나왔다. 우리 해병 2대장의 작전지역은 김종기 소령(대대장)은 회현동 일대, 그리고 박성철 중대장이 서울시청 앞을 거쳐 퇴계로 방면으로, 심포학 6중대장은 소공동 일대에서 소탕전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1소대를 이끌고 덕수궁 쪽으로 진격했다. 이때였다. 우리를 발견한 적은 기관총 사격을 맹렬히 가해왔다. 나는 대원들에게 “기관총이다. 엎드려라”라고 외치고는 엄폐물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뒤를 돌아다보니 누군가가 쏟아지는 총탄을 피하기 위해 몇 바퀴를 뒹굴면서 나의 옆으로 왔다. 나는 나의 명령을 기다려야 할 것 아니냐고 소리치면서 우선 그의 손을 잡아당겨 엄폐물 뒤로 숨도록 했다. 그는 다름 아닌 종군 기자 박성환이었다. 박 기자는 나에게 “박 소위는 지금 어디를 공격하느냐”라고 했다. 나는 “시청을 탈환하고 그곳에 태극기를 올리겠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박 기자는 “중앙청에도 태극기를 올리시오”하고 말했다. 나는 중앙청은 우리 2대대의 전투지역이 아닌 미 해병 5연대의 작전지역이라는 것을 설명하면서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박 기자는 나에게 “여보! 박 소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이승만 대통령께서는 우리 국군이 중앙청에 태극기를 올릴 때는 3천만 환의 상금을 줄 것을 약속했다”라면서 나에게 중앙청까지 진격할 것을 재촉했다. 한편 시청에서의 괴뢰군 기관총 사격은 거의 발악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소대원 5명을 데리고 지금의 체신부까지 진격했다. 체신부에서 바로 보이는 길 건너편의 시청 옆에는 지하실 창문과 창살이 똑똑히 보였다. 나는 대원들에게 수류탄을 준비시킨 뒤, 일제히 지하실 창문을 향해 던지도록 했다.

하나, 둘, 셋!

여섯 개의 수류탄이 창문을 향해 날아갔다.

광, 쾅!

 수류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중 두 개의 수류탄이 창문을 뚫고 지하실에서 폭발했다. 성공한 것이다. 나는 즉시 소대원 전원에게 돌격을 명하고 화염방사기 사수에게 지하실의 집중적인 방사를 가하도록 했다. 괴뢰군들은 혼비백산하여 후문 쪽으로 도주하기도 했고 7~8명이 손을 들고 항복을 해왔다. 나는 곧 시청 옥상에 있는 괴뢰군의 깃발과 광장에 있는 폭 3m, 길이 5m가량의 스탈린 초상화를 불태우도록 하고 우리의 태극기를 올렸다.

오후 3시 정각이었다.
포연으로 가득한 서울 하늘 위에 감격의 태극기가 휘날렸다.


  어디서 모였는지 100여 명의 시민들이 시청의 태극기를 쳐다보면서 만세 소리를 외쳤다. 그들의 얼굴에는 모두가 눈물이 흘러내렸다. 시청을 한 바퀴 돌아본 나는 시청 광장의 웅덩이에 있는 수많은 시체를 보고 괴뢰군의 잔인함을 다시 한번 느껴야 했다. 도주하던 괴뢰군들은 폭탄이 터져 움푹 파인 깊이 7~8m 직경 20m가량의 웅덩이에 죄 없는 시민들을 사살해버린 것이다. 이 광경을 본 나는 조금 전의 박 기자 얘기를 생각하면서, 내 손으로 한 놈의 적이라도 더 죽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곧 중앙청을 탈환할 것을 결심했다. 3천만 환의 상금이 욕심이 나서가 아니었다. 감격의 태극기를 서울 한복판인 중앙청에 내 손으로 꽂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적의 시체 30여 구, 장총 17정, 수류탄 25개, 소제 권총 3자루, 기관총 3정 등 노획품을 확인한 나는 곧 무전병인 김주송 수병을 불러 “너는 지금부터는 어떠한 상부의 연락에도 응답하지 말라. 만약 응답을 한다면 즉시 총살하겠다”라는 불호령을 내렸다.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무전병에게 나는 “지금부터 중앙청을 탈환하겠다”는 말을 남긴 채 양병수 선임하사와 최국방 2등 해병을 이끌고 광화문에서 중앙청까지의 적정을 정찰하러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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