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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옥 2집 <사랑하는 이에게>

(음반이야기)한국적 모던 포크 가창의 정석

by MTWT 김토일 Mar 29. 2021

정태춘은 박은옥의 목소리에 완전히 반했던 모양이다. 그들 부부의 딸 정새난슬이 페이스북에 올려둔 이야기에 따르면 과거 박은옥의 팝송을 부르는 모습이 아주 세련되어 그 모습을 본 정태춘이 거기에 매료되고 연정을 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그 이후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기에 이르렀는데 두 사람 평생 인연의 이유가 될 만큼 가수 박은옥은 매우 특별한 목소리를 지닌 가수였다. 이는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긴 한데 한편으로는 아무도 드러내어 말하지 않는 사실이기도 하다. 1980년대 초반은 2인조, 3인조 구성 혹은 가족 구성의 가수 활동이 활발한 시기였는데 그중에서도 박은옥 부부의 음악은 매우 독특했다. 농촌 같고 산촌 같은 구수한 가사와 선율이었지만 막상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은 뒤처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도시의 사람들, 그중에서도 젊고 세련된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즐기기에 오히려 제격이었다. 맑고 세련된 박은옥 목소리의 역할이 작지 않았을 것이다.


서라벌레코오드사가 1980년 7월에 출시한 박은옥 2집 음반은 가장 싱그럽던 시절의 가수 박은옥 목소리를 담고 있다. 당시 다수의 음반들이 그러했듯이 음반 제목은 특별한 의미 없이 수록곡 중 대표곡의 연명으로 표기되었다. 그래서 음반 제목은 <양단 몇 마름, 회상> 혹은 <양단 몇 마름, 사랑하는 이에게, 회상>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음반에는 강제 수록된 건전가요를 제외하면 총 9곡의 노래가 담겨 있다. 출시 당시 음반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1집 음반과 마찬가지로 전 곡을 정태춘이 작사, 작곡한 것으로 되어 있고 ‘사랑하는 이에게’의 경우만 예외적으로 박은옥이 작사를 맡았다. (* 현재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바에 의하면 B면 3번 곡 ‘하늘 위에 눈으로’가 박은옥 작사-작곡으로 정정되어 있다.) ‘윙윙윙’ 등 4곡에서는 음악 동료인 동시에 이미 배우자가 된 정태춘이 육성으로도 함께 하였다. 박은옥은 2집 음반 이후로 독립 활동을 접고 ‘정태춘-박은옥’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그것은 1982년 3집 음반 이후의 정태춘도 마찬가지였다. 

박은옥 2집 음반 표지 (출처: 매니아디비닷컴)박은옥 2집 음반 표지 (출처: 매니아디비닷컴)


전체 9곡의 노래 가운데 ‘회상’과 ‘윙윙윙’은 박은옥이 1집에서 불렀던 것을 다시 수록하였고 ‘양단 몇 마름’과 ‘어리야 디야’는 정태춘이 또 다른 가수 장영희와 함께 1978년 음반으로 발표한 것을 박은옥이 다시 부른 것이다. 악곡의 조성과 관련해서는 장조와 단조가 대략 반반으로 균형감 있게 배치되었다. 민요적 음악 어법이 차용된 것은 ‘어리야 디야’ 1곡뿐이면서도 소재, 가사, 창법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여 토속적 감성의 성취를 이루어내고 있다. 예를 들어 A면 1번 곡인 ‘양단 몇 마름’의 경우 전형적 뽕짝 어법으로 창작되었지만 악곡을 장악하고 있는 질감은 매우 토속적이다. 이는 정태춘이라는 창작자로 환원되기 십상이나 가수로서 박은옥의 역량 및 색깔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양희은이나 박인희 등이 그러한 질감을 재현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음반에 수록된 노래 가운데 가장 눈에 뜨이는 노래는 누가 뭐래도 박은옥이 작사로 참여한 ‘사랑하는 이에게’다. ‘윙윙윙’도 존재감이 상당하지만 이는 1집에 수록되었던 것을 단순 재 수록한 것에 불과하다. 나머지 곡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이 노래 하나만으로도 음반의 존재가치는 이미 넘치고도 남는다. 청중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말로 그러한 것이, 한국인이 사랑하는 역대 가요 100곡과 같은 이벤트 목록에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노래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곤 하기 때문이다. 박은옥의 뛰어난 노래 솜씨 역시 다른 어느 수록곡에서보다도 잘 드러난다. 음반 전체적으로도 그러한데 박은옥이 부르는 노래의 음역은 비교적 하향되어 있다. 가수들에게 중저음을 능숙하게 소화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나 박은옥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인 듯 자연스럽고 일관된 호흡이 유지되는 목소리가 펼쳐진다. 정태춘과의 조화도 온화한 동시에 애틋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과장도 없고 물러서지도 않는 사랑의 대화가 이 노래 속에 소박하면서도 찬란하게 담겨 있다.


박은옥 2집(1980)에 수록된 국민가요 <사랑하는 이에게> 첫 녹음 버전


동시대 다른 가수들이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다수 청중들에게 전달하는 가창의 심상을 만들어 왔다면 박은옥은 정태춘과 함께 ‘사랑하는 이에게’를 통해 단 한 사람에게 전하는 내밀한 가창의 심상을 성공적으로 재현하였다. 노래는 사장조(G key)로 연주되었는데 박은옥이 구사하는 최고음은 근음인 솔(G)을 넘는 법이 없을 정도로 중저음에 치우쳐 있다. 관객을 향해 목청을 돋우는 대신 자신의 내면에 사랑하는 이를 담아두고 아끼듯 맹세하듯 노래를 하였다. 이렇듯 내지르지 않는 소리는 녹음 과정에서 가창자의 마이크 근접을 가능케 한다. 이는 가창자의 입에 우리의 귀를 바짝 다가가게 만드는 것이며 가창자의 미세하게 떨리는 호흡까지 청중에게 전달할 수 있게 만든다. ‘사랑하는 이에게’는 이후 제작사가 바뀌면서 두 차례 재녹음이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1984년에는 한 키를 올려 가장조(A key), 1987년에는 반 키를 올려 내림가장조(Ab key)로 각각 녹음되었다. 특히 1984년 수록곡의 경우는 원곡에 비해 음높이가 뚜렷하게 상승함에 따라 내밀한 음색은 축소되고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아닌 청중을 향한 연희와 같은 노래로 변하였다. 1987년의 녹음은 그보다는 반걸음 내려왔지만 역시 박은옥 2집에서 보여준 내밀함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에게’의 첫 녹음본이 수록된 박은옥 2집 음반의 존재감은 더욱 각별하다. 


이 밖에 다른 노래에서도 박은옥의 빼어난 노래 솜씨는 곳곳에서 은근하게 빛을 발한다. 노래의 구절구절마다 쉽게 던지는 법 없고 쉽게 내려놓는 법이 없다. 매우 맑고 투명한 목소리임에도 무게중심이 매우 낮게 형성되어 있어 안정감이 있으며 그 어떤 말들도 허공에 방치됨 없이 구절마다 책임감과 그로 인한 호흡의 긴장이 가득하다. 어쩌면 무대뿐만 아니라 거리에서도 오랜 세월 정태춘과 함께 청춘을 보낸 훗날 박은옥의 생애를 노정했다고 비유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 목소리를 수록곡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요약하자면, 박은옥의 2집 음반은 단순한 외형적 번안을 넘어 한국 모던 포크 가창의 정석을 예시한 의미 있는 음반으로 평가할 만하다.


40년의 음악 동반자 박은옥과 정태춘, 정태춘이 쓰다.40년의 음악 동반자 박은옥과 정태춘, 정태춘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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