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정말 계속 쓰면 될까요?
지난 9월, 북클럽 오프라인 모임에서 한 작가님이 물었다.
누구도 아직은 확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지만,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다.
'나도 몰라, 그럴 거라 생각하고 쓰는 거야. 믿는 거야 그냥.'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쓰는 대부분의 작가들은 출간 작가를 꿈꿀 거라 믿는다.
실제로 글쓰기에도 좋은 플랫폼이고
이렇게 계속 유지되는 글쓰기 매체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나탈리 골드버그'는
쓰라고, 계속 쓰고 쓰라고 얘기하면서, 글쓰기는 오직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고 얘기한다.
매일 뭐라도 쓰는 사람이 작가라는 말에 위안받으며
일단 무조건 글이란 걸 쓰고 있다.
가끔은 일기장에 써야 하는 건 아닌지 혼동스러울 때도 있지만
어떤 말이든 끄적이는 게 안 하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에 글을 써 내려간다.
대단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며칠이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금세 노트북 앞의 하얀 화면이 낯설어지기 때문이다.
요즘은 매일매일 글을 쓰고 있지만
항상 쓰기 전엔 머릿속이 하얘진다.
뭐라고 써야 하나, 무슨 말을 써야 하지.
기약 없는 무언가를 한다는 건 쉽지 않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는 2~3일이라는 기한이 있다.
수능 시험도 일 년에 한 번이라는 약속이 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를 상상하며 뭔가를 한다는 건 나이가 들수록 녹록지 않다.
그만큼의 믿음과 뜨거움이라는 것을 끌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위축되는 말을 들으면, 열심히 올려놓은 자존감이 미끄럼틀 타듯 내려간다.
그래도 지금은 '그런 말 들으면 속상해요, 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할 줄 안다.
이제 누가 나한테 뭐라 할쏘냐, 할 말 하고 살겠다는 용감함도 장착되어 있다.
나이 먹는다고 다 안 좋은 건 아니다.
소소한 '깡'이라는 게 생긴다고나 할까.
인생의 2막에서 떠오른 작가라는 목표를 세우고 가고 있지만,
어떤 순간엔 재능 없음에 많이 실망하기도 하고, 위축되기도 한다.
이러다 제 풀에 꺾일까 봐 두렵기도 했다.
지난 인생을 돌아다보니 극적인 사건도 없고
극도로 평범하게,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고통만 가지고 살아왔다.
그 원동력이 무엇인고 하니 결국엔 마음속에 자리 잡은 약간의 유머와 긍정 심이다.
때론 철없어 보이는 이상주의 인간인지라, 막연한 희망을 품고 사는 데는 도가 텄다.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되지 않겠나 마음 편하게 생각해 본다.
오전엔 어떤 글을 쓸까 하면서 유튜브를 보다가 무심코 '유현준' 건축가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학벌 때문에 늘 승진에 누락되던 아버지가 우시는 모습을 보고, 학벌에 대한 일종의 집착이 생긴 것 같다고
고백한 그는 연세대, MIT, 하버드의 우등 졸업생이다.
졸업하자마자 터진 이라크 전으로 승승장구할 것 같던 그의 미래가 잠시 암담하기도 했다.
이력서를 400~500통을 썼지만 면접은 겨우 2~3군데 볼뿐이었다.
다행히 유명한 건축가인 '리처드 마이어'의 건축 사무소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었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건축사무소를 오픈했다.
그곳에서 대출까지 해가며 직원들 월급을 준 세월이 자그마치 15년이었다.
중간에 문을 닫을 뻔도 했지만, 가끔씩 생기는 큰 프로젝트 덕에 유지할 수 있었다.
그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 건, 칼럼을 쓰면서부터이다.
편당 15만 원, 세 편.
이 칼럼 쓰기를 시작으로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책을 출간하고 방송과 유튜브, 교수로까지
뻗어 나갔다.
클라이언트 등 많은 사람들과 얽혀 있는 건축과는 달리, 자유로운 글쓰기는 그에게 스트레스 해소와
해방감을 주었고, 지금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유현준'이 되었다.
순간 알았다.
나보다 학벌도 훨씬 좋고, 능력 있는 사람도 자그마치 400통이 넘는 이력서를 썼다.
15년이나 한 분야에서 버텨내었다.
그렇다면 지금 난 불안해할 때가 아니라, 버텨야 하는 때인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나는, 지독하게 견뎌내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미래를 모르니 불안한 건 당연한 거다.
당연한 건 그냥 당연한 거다.
특별히 이 시기를 이겨낼 뾰족한 묘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버티는 거다.
엄청난 확신도 자신감도 아닌 그냥 버티기.
감히 끝까지 해보겠다는 의지.
몸의 '습'을 만들어보겠노라 다짐한다.
학'습'은 쉽지 않았으나
더 이상 학생이 아니니 물러날 곳은 없다.
지극한 마음으로 그냥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