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하나쯤은.

by 마음돌봄
좋아하지 않는 걸 좋아하려고 애쓰는 게 힘들듯이 미워하지 않는 걸 미워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미움을 억지로 만들어냈다. 세상 나쁜 것들을 다 갖다 붙이면서. - p.97 브로콜리 펀치 -


원준은 권투 선수다.

어느 날, 오른손이 브로콜리가 되어 버린.

병원에서도 주변 어른들도 그가 마음속에 생각이 많고 힘들어서라고 했다.

브로콜리 손은 광합성을 하느라 간질간질했다.

덕분에 원준은 당분간 권투를 하지 않았다.


왜 갑자기 사람 손이 브로콜리가 되었냐고?

내 생각엔 주먹과 가장 비슷해서가 아닐까.

우리는 한 번씩 나와 가장 그나마 닮은 것으로 위장하는 경우가 있다.

이건 동물들의 camouflage와 같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위장술.

군인들의 위장술처럼, 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


<브로콜리 펀치>에서 원준은 사실은 권투가 너무 싫었다고 했다.

눈앞에 있는 상대방을 곤죽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상상.

상대방에 내 주먹에 맞아 피 흘리는 생각.

왼손과 오른손을 어떻게든 다 동원하여 상대 선수를 쓰러트리고 이기고야 말겠다는 시뮬레이션.

사실 그는 자신처럼 복싱을 좋아해서 노력했을 그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

비슷한 삶을 살았을 그에게 동질감도 느꼈다.

아무리 복싱은 직업이다, 스포츠다 하고 세뇌시켜 봤지만 타인의 신체를 해하여 얻어지는

직업적 만족감이란 공허할 뿐이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목표에 관해서 집중한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전국적으로, 혹은 다른 나라에서도 '확언'이라는 것을 하겠지.

사람의 정신은 힘이 세다.

그래서 더욱 나는 긍정의 힘을 믿는다.

인간의 상상력이란 어찌나 대단한지 나쁜 생각이 시작되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부정의 대서사시 하나쯤은 너끈히 만들어낸다.

긍정적인 생각은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의 평화와 안심을 가져다주고.

늘 상대를 반 죽일 생각을 해야 하는 원준으로써는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까.

그러니 손이 브로콜리가 되어버린 거겠지






우리도 어쩌면 내 마음 어딘가는 브로콜리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길쭉한 오이이거나 당근일 수도 있고.

아이들에게도 못하는 과목을 시키느라 힘쓰지 말고, 잘하는 과목 좋아하는 과목을 더 잘하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있는 것처럼(부모 입장에선 힘들지만), 아무리 애써도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은 더 하고 싶기 마련이다.


하기 싫은걸 억지 에너지를 만들어내어 하는 것만큼 사람에게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그리고 아무리 애써도 결국 좋아하는 것으로 가게 되어 있다.

좋아하는 일로 밥 먹고 살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던가.

억지로 해야 해서, 오른쪽 글러브 안의 손에 온 힘을 응축한 원준의 손이 브로콜리가 되어 버린 것처럼

우리도 뭔가를 억지로 하다간 내 몸이 마트의 채소칸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하기 싫은 것도 할 줄 알아야지, 사람이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 있나.'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소소한 일에만 그래 보자.

청소하기 싫지만 방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것.

미루고 미뤄서 영원히 그러고 싶지만 냉장고를 청소하는 것.

휴일이라 늦잠 자고 싶지만, 눈 비비고 일어나 목욕탕에 가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하는 건 내 정신 건강에도 좋다.

좋아하는 것으로 생계까지 되어도 좋고, 덕업일치도 괜찮다.

생계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퇴근 후,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것도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몰입과 확언이 아닌

행복감과 긍정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그런 확언과 생각들.

거창한 인류애까지는 아니더래도 개인의 생각이 확장되면 결국 세계가 되는 거니까.


너무 오래 하다가 할 줄 아는 게 남을 억지로라도 미워하고, 곤죽이 되게 때려주는 것만 생각하다가 결국 브로콜리 손을 가지게 된 원준.

오래 참다 보면 그렇게 되어버린다. 결국 안으로 곪고 곪아서.

원준처럼 산에서 소리라도 질러 보자.

억지로 욱여넣은 감정의 골을 만들어보자.

마음속의 물길이 기어이 터질 때까지.

마흔 이후, 글을 쓰게 된 내가 그래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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