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를 쓰겠습니다.

by 마음돌봄

두려웠던 것 같다.


머릿속에선 멋진 커리어우먼을 꿈꾸면서도, 현실은 무서웠다.

과연 내가 회사라는 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

어떻게든 '공부'라는 걸 연장해서 직업이란 걸 가져야 하나.

남보기에 번듯하고는 싶고, 지방대라 마음은 위축되고.

점수 맞춰 급하게 들어간 대학 생활은 의외로 재미있었으나

재미에 취해 현실은 못 보는 상황.

'사' 자 돌림의 직업을 갖든 남이 내 직업만 들어도 더 이상 추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사실 이건 내 인생에 대한 무례한 도피이고 핑계였다.



학원강사를 하다가 나중에 학원을 운영하면 어떻겠냐는 아빠의 말에

왜 내 인생과 직업을 아빠 마음대로 결정하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선배들을 보고서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무것도 없지만, 아무 나는 되기 싫은 어설픈 치기였다.




최근에 상업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자소서강의'를 하면서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공기업이나 금융권, 혹은 공무원 취업이란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참 부지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뭘 4년이나 배우러 대학을 간 건가 생각했던 나에게 그녀들의 모습은

기특하기도 하고 참 예쁘기도 했다.

부지런히 관련 자격증을 따는 학생들.

회화 어플로 열심히 영어 회화를 공부한다면서

나에게 초3 때 학원에서 배운 미국교과서가 아직 재미있어서 가지고 있다는

한 학생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다.

노트북 한 대씩 책상에 놓고 수업을 듣는 새로운 모습.

학교 내의 모의 면접을 통과해야 하는 학교 시스템.

너무나 착실하고 알뜰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

어차피 면접관들은 밖에 나가면 다 그냥 아저씨 아줌마이니 쫄지 말고 당당하게 하세요라는

망언을 남기며 강의를 마쳤다.




입사 시에 써야 하는 여러 서류 중 가장 기본인 자기소개서.

날 모르는 생판 남에게 나를 소개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도 글로까지는 아니더라도, 말로 나를 소개할 때도

도대체가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암담하다.

나이, 결혼 여부 아니면 좋아하는 거 얘기하면 되나.

일단 무슨 일을 하는지도 얘기했던 것 같은데.

만나는 사람들이 누구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블로그 챌린지를 할 때는 직업 먼저 이야기를 했고,

글쓰기 모임에서는 아무도 직업 이야기는 먼저 하지 않았다.

그냥 서서히 드러나게 되는 정도였다.

당장 오늘 아침 인터뷰한 필리핀 원어민 선생님과는 난데없이 북클럽을 일 년째하고 있다고

얘기하면서 책 이야기, 글이야기를 하다가 최근에 읽은 책 이야기를 하며 마무리지었다.




항공사 승무원이 되겠다고 한참 면접을 보던 때에는

뻔한 순서대로 인자하신 어머니와 엄격하신 아버지 밑에서 등등의 자소서를 썼던 것 같은데

지금 쓴다면 그렇게 쓰진 않을 것 같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란 사람이 상상되게끔 스토리를 써야 하겠지.

아니면 뭔가 획기적인 멘트를 날려서 나를 각인시키던지.

뭔가 궁금증을 가질 수 있도록 써야 하는데.

아, 아직도 자기소개서는 어렵다.

이제 보니 제일 쓰기 어려운 글이 자기소개서였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스토리가 있는 자기소개서.

이것부터 도전해 봐야겠네.

빛나는 청춘, 이력서나 자소서를 몇백통씩 써보고 좌절해 볼 기회는 스스로가 날려버렸으니

새로운 인생 2막에 필요한 자기소개서를 준비해야겠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는 2.30대가 있다면

거절을 두려워말고 자기소개서를 쓰시라, 이력서를 제출하고 지원하시라.

그 또한 지금의 나는 부럽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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