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째 공백
여기저기서 진눈깨비가 발견될 무렵. 열심히 노력해 온 덕에 좋은 소식이 있었다. 엄마가 참 기뻐했다.
성인이 된 후로 줄곧, 긴 시간 동안 내게는 이게 정말 전부였다. 언제나 내 의지를 붙잡고 이끈 것은 겨우 누군가의 기쁨을 언젠가 이루어내는 것이었다. 나는 살면서 이만치 행복에 어린 엄마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의 기쁨이 피부에 와닿을수록 짙은 회의감이 덮친다. 어째선지 슬펐고, 그냥 서러웠다. 전화 너머로 엄마는 웃었다. 들떠서 어쩔 줄 몰라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나는 자꾸 울고 싶었다. 싫었다.
엄마의 생전 처음 들어보는 그 목소리가, 나를 무언가로부터 박탈시키는 기분이었다. 이런 것들을 증명해 내야만 당신에게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딸이라고, 스스로를 그렇게 여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당신과 나누는 모든 대화가 나에게 그런 기분만을 안겨준다. 내 평생에 그랬다.
약해진 목소리로 아이처럼 신난 당신을 떠올리면
이따금 내가 노력해 온 시간들이 어디론가 흩어져서 사라지고, 끝내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다. 내가 이루고 성취해 온 모든 것들이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 그렇다고 당신의 손에 놓이지도 않았다. 그저 나의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기분을 느낀다. 자꾸. 원인 모를 공허를 깨닫게 돼, 당신을 떠올릴 때마다.
기쁜 일이 가득한데, 갈피를 잃고 심장의 한가운데로 큰 구멍이 뚫린 것만 같다.
…아빠, 나 열심히 살았어요.
한 해동안 미련 같은 것도 그냥 다 내려두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곱씹었어요. 그럼에도 나는 여기에 발을 붙이고, 모든 계절을 보냈더라고요.
내 노력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무엇으로도 채워지지가 않아서요. 근데 최근에 확신했어요. 나는 요즘 당신의 편지가 받고 싶어요.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요.
아주 많이 그리운 목소리로, 고생했다고, 대견하다고,
아빠가 나를 부르는 이름, 사랑하는 우리 딸
그거 하나 듣고 싶더라고요.
그것만이 내가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서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서요. 나를 평가하지 않고, 내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고 있다는 걸 오롯이 믿을 수 있는 한 마디여서요.
나는 봄부터 모든 계절동안 그게 가장 간절했어요.
겨울이야, 아빠.
보고 싶다. 나 열심히 살았어. 전부 다 해냈어.
엄마가 정말 기뻐했거든. 나 잘하지 않았어?
외로워, 서러워. 힘들었던 순간에도 이젠 조금 덜 그리웠는데, 엄마가 이만큼 기뻐할 일이면 아빠는 얼마나 좋아해 줬을까 싶어서. 그래서 지금이 가장 그리워.
아빠도 기뻐하게 해주고 싶었어. 나 아빠한텐 아무것도 못해줬잖아. 실은, 그래서였어. 그게 너무 속상해서 계속 스스로에게 잘했다는 말을 못 하겠어. 엄마가 기뻐하시는 모습에 온전히 함께 기뻐하지 못하겠어. 그러게 왜 그렇게 일찍 간 거야, 딸 호강도 못 누리고.
하늘에서, 천국에서, 그런 말 다 필요 없어.
차라리 꿈에라도 나와주라.
나 요즘은 아빠가 나와도 꿈인 줄을 모르거든.
다시 한번 다잡고 힘 좀 내게.
진짜 많이 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