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용두돈대
용두돈대에 서서 썰물 지는 서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광성보와 이어져 있는 용두돈대는 좁은 강화 해협에 용머리처럼 내밀어져 있는 자연 암반을 이용해 돈대를 쌓은 곳입니다. 이곳은 병인양요의 격전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866년 평양 대동강에 들어와 통상을 요구하던 미국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우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듬해 미국은 조선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여 4월 23일 함대장 로저스를 비롯 450명의 해병대가 물류도를 출발하여 초지진에 상륙하였으며 이튿날 아침 미국 해병대는 전진하여 덕진진을 공격·점령하고 이어 광성보로 육박해왔습니다. 이에 어재연이 부대를 이끌고 48시간 사투를 벌였으나 전원이 전사하게 됩니다.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를 기억하듯 지금도 광성보와 용두돈대에는 포격의 흔적이 선연히 남아있습니다. 전란의 상흔과 저물어가는 서해의 낙조가 상념을 일렁이게 합니다.
문득 강화도와 관련 있는 몇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먼저 김경징입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을 계획했지만 사실 입도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김자점은 청의 침략 사실을 뒤늦게 보고하고 조정이 그 사실을 알고 몽진을 준비했을 때 이미 청의 군대는 서울 인근까지 진격해 들어온 상태였습니다. 급히 최명길이 청의 부대에 들어가 시간을 벌고 그동안 인조는 남한산성을 향해 갑니다. 대신 인조는 인조반정의 일등공신인 김류의 아들 김경징을 강화도 방어를 책임질 검찰사로 임명해 세자와 대군 등 왕족들을 피신시키고 청의 공격에 대비하도록 지시합니다. 그러나 김경징은 자신의 가속과 가산을 지키는 일에만 혈안이 됩니다. 강화도로 가는 배에 자신의 가족과 친한 사람들을 먼저 태우고 세자빈마저 거부하여 빈축을 삽니다. 강화도에 도착한 이후에는 방어를 위한 군사적 대비조차 하지 않습니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출성을 거부하자 홍타이지는 강화도 공격을 지시합니다. 김경징은 싸워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결국 도망가고 맙니다. 나라 안이 온통 잿더미가 되고 도성에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살육의 전쟁에서 오직 자신만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50 궤짝이나 되는 재산을 갑곶으로 가는 배에 싣기 위해 피난민을 밀쳐내는 검찰사의 그 어두운 마음이 무섭습니다.
두 번째 정권의 보위에만 혈안이 되었던 인조입니다. 17세기 명청 교체기 서구 열강의 물결이 급속히 밀려들면서 조선은 약소국으로 어디까지나 종속변수였습니다.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정이나 외교면에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폐모살제와 거대한 토목공사를 비판하며 윤기의 회복과 민본이라는 나름의 명분에서 출발한 인조반정은 반정이라는 비정상적인 정변을 통해 추존된 임금이라는 출발지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정권 보위에 대한 집착이 강했습니다. 생부 원종의 추승에 집착하였고 명청 교체의 권력 이동 속에서도 명의 깃발을 붙잡고 호란의 불길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적산 탈취, 권력 남용, 인사 비리, 부패 만연 등의 문제 속에서도 공신에 대한 편애를 버리지 못했고, 대동법, 호패법, 군적법 등 개혁 과제는 무산되었습니다. 정세를 정치적 목적을 위해 주관적으로 규정해 가는 과정에서 근대화와 서세동점의 시기에 전략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치명적 우를 범하였습니다. 이러한 내부의 모순이 폭발하는 지점에서 병자호란이 터졌고 이후 홍타이지에 의해 입조와 왕위 교체에 대한 불안이 증폭되면서 소현세자와 강빈, 원손의 죽음이라는 왕실의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세 번째 강화도 전등사의 도편수입니다. 전등사 대웅전의 처마 끝에는 추녀를 떠받치는 나부상이 있습니다. 대웅전 공사를 맡았던 도편수가 절 근처 주막의 주모와 정분이 났습니다. 그녀와 혼인할 생각으로 돈을 맡기지만 주모는 다른 남자와 함께 자취를 감춥니다. 배신당한 도편수는 여인을 닮은 네 개의 나부상을 만들어 대웅전 처마 네 군데를 떠받치게 합니다. 여인을 처마 아래 영원히 가두어두고 싶었던 그 도편수의 마음은 사랑일까요. 집착일까요. 아니면 불교의 자비심으로 여인을 용서하고 싶었던 마음일까요. 나부상의 표정을 자세히 보니 웃는 것도 같고,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일그러진 것도 같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빠진 것도 같습니다. 그냥 망연히 서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볼 때마다 혹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표정이 달리 읽히는 듯도 합니다. 추녀를 지지하기 위한 야차상으로 보은 법주사 팔상전, 황해도 연탄 심원사 보광전, 평안남도 박천 심원사 보광전의 귀공포에도 비슷한 형태가 발견되는 불법 수호의 의미를 지닌 조각상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절과 어울리지 않듯 어울리는 나부상의 이야기에 속인은 깊이 감정 이입을 하게 됩니다.
세 사람의 마음은 모두 집착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물질과 권력, 사랑. 대상은 다르지만 마음의 길은 같아 보입니다. 한없이 이기적이고 자기 파괴적입니다. 젊은 시절 저도 늘 무언가에 깊이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마음의 헛증을 달래줄 누군가를 붙잡고 싶었고, 그에 사무치어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 사랑이라 믿었지요. 제 마음이 변덕스럽고 무상으로 출입을 번복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열망했습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다섯 가지 요소의 모임인 오온에 불과하며 영원불변하는 고정된 자아는 없다고 합니다. 오온의 실상은 덧없고 괴로운 것이며 실체가 없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집착하기 때문에 근심과 슬픔, 고뇌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로 봄(正貫)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우리 또한 그 변화 속에 있음을 자각할 때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겁니다. 거기서 진정한 관계 또한 시작할 수 있겠지요. 일몰의 시간은 이제 깊은 어둠으로 바뀌었습니다. 삼라만상은 음양이 교차하고 춘하추동 낮과 밤이 교차합니다. 어둠 속에서 눈과 귀가 더욱 밝아지는 것 같습니다. 변화와 변통(變通) 속에서 당신에게 가는 길도 더 잘 보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