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그림자 (2)

by 트윈플레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왔던 길을 되짚어 갔다.

지하철역이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두근거렸다.

마침내 아까 그 상가 건물 앞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그 주변에는 길게 늘어선 119 소방차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멀찍이 떨어져 건물을 지켜보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켜서 포털앱을 열었더니 속보가 떠 있었다.

‘도심 지하철역 근처 상가건물 화재. 사상자 40여명 발생. 현재 화재 진화 및 구조 작업중.’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 다시 벌어졌다.

어쩌다 우연히 한번 그런 일을 겪은 거라 생각했는데 왜 내게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난건지.

너무 두려워서 온몸이 덜덜 떨렸다.

정말 내가 본 것은 죽음의 그림자인가.

순간 총천연색으로 보였던 편의점 직원이 떠올랐다. 그럼 그는 무사한건가.

인터넷 기사를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니 화재는 고층부 오피스텔에서 발생했고 따라서 상부층에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미처 대피를 못해서 연기에 의한 피해가 많았다고 한다.

‘아, 그래서 1층에 있던 편의점은 무사했던 거구나. 내가 만약 그들에게 미리 대피할 수 있게 알려줬다면. 그랬다면 달랐을까?’


그저 낌새를 느낄 수 있었을 뿐 그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을거라며 그 자리를 피해버린 나의 비겁함을 애써 합리화했다.

하지만 그 순간 결심했다. 어쩌면 이런 일이 또 생길 수도 있을 거라는 느낌과 함께 다음에 만약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그 때는 사람들이 피할 수 있도록 어떻게든 알리기로. 더 이상 이런 기분 나쁜 상황은 다시 만들지 않으리라.


밖에 나가는 것이 무서워서 한 동안 집 안에서만 생활했다.

다시 면접을 보러가기 힘들어 일반적인 취업은 포기하고 재택으로 근무할 수 있는 번역일을 하게 되었다.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라 벌이가 시원치 않아도 만족하는 편이다.

또 다시 죽음의 그림자가 보이면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럴 자신이 없다. 사람들이 내 말을 믿어주지도 않을텐데 뭐라고 설명을 해야할까.

똑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진다고 해도 내가 뭔가를 바꿀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졌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게 되었다.


오늘은 나의 대학 동기 지영이의 결혼식이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하지만 아예 사회생활을 안할 수는 없으니 얼굴은 비춰야겠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니 기분이 좋다. 시덥잖은 옛날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근심 없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 행복하다.

배부르게 먹고 맥주도 많이 마셔서 기분이 들뜬 상태에서 친구들과 근처에서 2차를 하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려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순간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흑백으로 보였다.

너무 놀라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데 친구들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다.

더 이상 생각할 틈도 없이 나는 비명을 질렀다.

“엘리베이터 천장에서 불꽃이 보였어. 모두 내려요!”

“뭐? 불꽃? 불이라고?”

“꺄악”

한명이 소리를 지르자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사람들은 너도 나도 소리를 지르며 엘리베이터에서 뛰쳐나왔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는 빈 채로 아래로 내려갔고 조금 있다 쿵하는 소리가 들리고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엘리베이터가 멈춘다고 다 죽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그 안이 온통 흑백이었던걸로 보아 다른 일이 생겼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이런 일이 생겼다는 오싹함과 찝찝함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번엔 사람들을 구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집에 오는 길이 많이 힙겹지는 않았다.


여전히 기분 나쁜 그 느낌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샤워를 하면 조금 개운해질까?’


샤워를 마친 후 욕실 거울을 쳐다본 순간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거울 속의 내 모습에는 그 어떤 색도 보이지 않았다.

흑백의 내 모습.


그 순간 깨달았다.

죽음의 그림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내 주위를 계속 맴돌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번에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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