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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플레임 Dec 06. 2022

진짜로 멋진 아저씨를 만났다.

가야금, 그 날카로운 감촉의 기억

또 다시 전율이 일었다.

'난 저걸 배워보고야 말겠어.'


곧바로 회사 근처 국악원을 인터넷에 검색했다.

아무리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이 크다 하더라도 배움의 장소가 멀면 나의 열정은 사정 없이 꺾였다.

그러므로 가까워야 한다.


이 중에 어디가 다니기가 좋으려나.

여기가 좋겠다. 안국역.

안국역에 몇 번 가본적은 없지만 이번 기회에 가봐야겠다.




국악원은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은 해금을 배우는 학생들.

해금도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두줄짜리 악기를 내가 다룰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국악기는 뭐니뭐니해도 가야금이지.


처음 가야금을 잡은 날 그 생소하면서도 떨렸던 느낌을 기억한다.

음. 생각보다 가볍구나.

줄은 또 생각보다 단단하네.

오우, 손가락이 아픈걸.


현악기는 역시 손가락이 아팠다.

그래도 일단 배워본다. 오른손부터.

퉁겨보니 손가락 끝이 찌릿하다.


처음 한달은 열정이 넘치니까 레슨 시간 외의 개인연습 시간도 살뜰히 챙겨본다.

얼마나 배울지도 모를 악기를 살 정도의 무모함은 없는 나의 현실감각을 스스로 칭찬하며 국악원의 연습실로 향했다.


신기하게도 늘 사람이 많다.

어딜 보나 회사원 같은 아저씨가 들어왔다.

키가 작고 안경을 쓴 은행원 같아 보이는 아저씨가 서류가방을 들고 국악원에 들어왔다.

양복을 입은 그 아저씨는 거문고를 잡는다.


이럴 수가. 연주를 시작하니 이렇게 고수일 수가 없다.

아저씨의 뒷모습을 흘끔 흘끔 훔쳐봤다.

처음 봤을 때의 아재느낌은 갑자기 사라지고 몸 주위로 영롱한 아우라가 퍼져보인다.

이 사람은 진짜 멋지구나.


취미는 저렇게 해야하는구나.

사람한테 홀리는게 이런건가.

완전 멋지다. 거문고 아저씨 최고.



푸른 하늘 은하수.

반달이라는 노래를 배웠다.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반달은 느낌이 색달랐고 특별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도 거문고 아저씨처럼 저렇게 멋진 취미 국악인이 되겠어.


하지만 언제, 어떻게, 왜 그 열정이 식었는지는 모르겠다.

거문고 아저씨처럼 가기엔 너무 길이 멀어서였는지.

가야금을 튕기던 손가락이 아파서였는지.

안국역까지 가는 그 길이 너무 복잡해서 였는지.


급속도로 식은 열정은 나의 시작 리스트에 한 가지만을 더 추가해놓고 멀리 날아가버렸다.


'가야금도 한때 배웠죠. 근데 오른손만 연주할 수 있어요. 왼손은 배우다 말았네요.'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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