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윈플레임 Dec 08. 2022

무협지 좀 본 여자

영웅문과 중국어, 그 사이의 간극

누군가 나에게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김용의 영웅문이요. 진짜 최고 중의 최고예요."


그렇다. 나는 정말 인생을 영웅문을 통해서 그리고 각종 중국 무협영화를 통해서 배웠다.


지금도 생각난다.

아버지와 함께 봤던 무협 시리즈.

끊임없이 여자를 홀리고 다니던 초류향.

간신 진회의 모함에 죽은 악비 장군.

그리고 무엇보다 영웅문의 주인공들, 특히 나는 장취산을 좋아했다. 주인공도 아니고 주인공 아버지를.


그렇게 나는 막연히 중국에 대한 동경을 이어왔고 언젠가는 소림사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림사에 가는데 간단한 중국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거기에서 나의 스파크가 튀었다.

중국어를 배워야겠다.


가까운 중국어학원에 등록을 했다.

아무래도 저녁에는 약속이 많으니까 아침 시간으로 해야지.

주5일 오전 여섯 시 반부터 여덟 시 반까지 수업을 듣고 출근을 했다.


아침 한 시간은 무조건 중국인 선생님과 중국어로만 수업을 하고, 나머지 한 시간은 한국인 선생님과 문법 공부를 했다.

중국어라고는 한마디도 모르는 초보와 중국어로만 수업을 하다니.

그런데 이게 또 그렇게 재미있다.

중국어 성조는 내가 많이 보았던 영화 속 대사 같았고 간단한 인사말만 따라 읽어도 그 소리는 나를 중국 무협영화의 한 장면으로 데려가는 것 같았다.


매일 수업 듣기를 세네 달 정도 하니 초급 수준 대화가 어느 정도 된다.

그 이후로는 중급반에 가야 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내가 그동안 말하고 읽었던 중국어는 한자로 된 중국어가 아닌 중국어 발음을 표시한 병음 기호였다.

중급 교재부터는 그 병음이 빠지는데 그때부터 나는 한 글자도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중국어 선생님과 대화를 하고 있고 내가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있는데 글을 보고 읽을 수가 없다.

내가 바로 그 말로만 듣던 문맹이구나.


나의 열정이 드디어 나를 소림사로 데려다 주나 싶었는데 그 꿈은 한자 때문에 강제로 종료되었다.

스파크가 중국어 간체자로 연달아 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럴 때 보면 나의 스파크는 굉장히 선택적으로 일어난다.


중국어 못해도 소림사는 갈 수 있잖아?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전 02화 진짜로 멋진 아저씨를 만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