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별의 불가능성
"나, 너에게 섹슈얼한 감정을 느껴."
수화기 밖의 그의 발언은 지금까지의 우리 사이의 관계를 송두리째 흔들기에 충분했다.
"고마워. 나도 너와의 미래를 그려보곤 했어."라는 나의 대답에 그는 다시 대답을 시작했다. 이전 관계들에서 아이 문제 등 때문에 아예 연애를 시작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자신도 조금 더 준비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먼 곳에 있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이미 그에게로 날아가고 있었다.
"나, 너에게 섹슈얼한 감정을 느껴."라는 그의 말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나는 너를 좋아해. 너와 사귀고 싶어."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었고, 우리가 사귈 가능성이 있을지 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그를 만나야 할 것 같았다. 그를 직접 만나지 못한지 5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지금의 일과 휴가 시간, 자금 등을 머릿속으로 굴려보았다. 그러며 그에게 말했다.
"내가 너한테 한번 찾아가도 될까?" 지금은 4월 초, 한 3개월 정도 자금을 모으면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7월 정도의 시간을 그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응. 물론이지. 요즘 우리집 주변이 공사를 해서 공짜로 호텔을 주곤 하는데 주말에 오면 그 호텔을 쓸 수도 있겠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마무리가 되었다.
돌아가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고민해보았다. 그리고 그에게 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연애를 안해본지 13년의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마지막 만남을 끝으로 나는 의존성을 벗어난 홀로서기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했었고, 13년동안 나는 나 나름의 삶의 방향성을 찾기 위해 헤매고 또 헤매왔다. 그 역시 그 과정에서 만난 동료였고, 나의 헤맴과 방황, 실패와 도전 등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그 과정의 커다란 친구였고, 삶의 방향성을 응원해주는 소중한 동료이기도 했다.
그를 생각하며 나는 지하철 안에서 핸드폰에 편지를 써내려갔다.
-----
나는 아직도 여정의 어딘 가에 있는 것 같아. 때때로 마음을 돌아보면서. 큰 변화라고 한다면 나는 천천히 "어떻게 살아야할까?"하는 하나의 커다란 정답을 찾는 것을 조금씩 그만두기 시작했다는 점이야. 그리고 나의 그러한 시도 뒤에 정말로 무엇이 있었는지를 알아가려고 하고 있어.
아직 그러한 과정은 한창 진행중에 있어. 그리고 나는 하나의 결론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지도 몰라. 최근에 알게 된 것은, 나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는 거야.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내가 그렇게 "멋진 사람"이 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나를 좋아해줄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이러한 맥락에서 가지는 의미를 다시 보고 있어.
그리고 내가 만난 것은 아직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나의 필요를 나 대신 채워줄 사람을 찾아 헤매고 있는 마음이야. 이러한 마음은 아직도 완전히 분리되기에는 시간이 필요해보여.
그리고 어떻게든 새로운 의미의 "사랑"의 행위의 정의를 다시 찾아가고 있어. 어쩌면 내가 마음 속으로 느끼고 만난 적이 이미 있을수도 있는. 너와 만난 수련센터 커뮤니티에서도 말이야.
내가 경험한 것은, 내가 뭘 해야할지 말해주는 "선생님"을 가지는 것은 사실은, 동등한 입장에서 그들 자신의 삶의 경험이나 영감을 공유해주는 친구를 가지는 것보다 실제로 나에게 큰 도움이 덜 된다는 것이였어. 아마 그냥 "선생님"이 있으면, 나는 그 가르침이 시사하는 바나 정말로 내가 원하는 바가 뭔지 그 속을 바라보기도 전에 그저 가르침을 따르려고 하며 내가 이런 것들을 꼭 해내야만 한다고 강하게 믿어버리게 되는거 같아.
그렇지만 자신의 경험을 그저 공유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면, 나는 그를 바탕으로 나 자신의 경험을 다시 살펴보고 그러면서 나 자신의 길을 찾아가려고 하게 돼. 어쩌면 결코 하나의 정답이나 결론에 도달하지 않고 계속 변해가는 그런 길 말이야.
내가 나는 내가 '안좋은' 상태에 있으면 나 자신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을 꺼리는 경향성이 있다고 했지? 그건 아마도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 받기 위해서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내 무의식적인 마음과 통해있는 것 같아.
그런데 내가 돌아보면, 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이미 그 '안좋은' 상태에 있었어. 그래서 웃음이 나더라.
'연애 관계'라는 용어가 내 안에서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과정이야. 내가 수련센터에 처음 갔을 때, 나는 '좋은 사람(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나를 자동적으로 좋아하게 될)'이 되는 방법을 찾아 헤매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리고 수련자로서 평생 다시 연애를 하지 않는 삶을 추구하고 있었어. 그래서 아마 나는 '연애 관계'라는 용어가 내 안에서 어떤 의미인지 살펴볼 기회를 많이 가지지 못했던 것 같아.
그래서 그 용어와 함께 어떤 이야기들이 내 안에서 살아나는지 들여다 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 되고 있어. 나는 내 20대와 30대에 많은 고정관념들을 가지고 있었어.
"남자친구라면 이렇게 행동해야해.",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너는 나를 위해 이런 것들을 해야해.", "네가 이런 행동을 한다면 그건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거야! 너는 잘못한거야!" 이런 식으로 말이야.
내 안의 '사랑'이라는 용어는 나를 온전히 돌봐주고 챙겨줄 사람을 찾는 것으로 한정되어있었어.
나는 아마 '돌봄'과 '사랑'이라는 단어의 구분을 많이 혼란스러워한 것 같아. 그래서 그 두 개념을 분리해나가는 작업이 최근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해.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듣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연인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있어.
이러한 작업은 아직 시작에 불과해서 이러한 마음 뒤에 어떤 것들이 숨어있는지 알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이상적인 연애 형태'에 대해서 하나의 완벽한 정답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아마도 이러한 '이상적인 연애 형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주 희미한 느낌만 가지고 찾아가고 있을지도 몰라.
아주 오랫동안, 나는 내 자신만으로는 불안정함을 느끼는 상태에 머물러있었어. 나는 "내가 괜찮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누군가가 항상 필요했어. 그 이유 중 하나로는 분명 나는 "네 존재 자체는 잘못된거야."라는 메시지를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부터 끊임없이 들으면서 끊임없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거야. 그래서 마음속에 계속 살아나는 그 목소리를 어떻게든 하기 위해서, 그리고 어떻게해든지 계속 존재해나가기 위해서, 나는 내 존재가 괜찮다고 증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계속 필요했어.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항상 실패하곤 했어. 왜냐하면 내가 나의 가까운 사람들과 관계하는 방식 자체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너무나 희귀한 방식이기 때문이기도 할거야. 나 혼자서는 내 안의 이런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관계방식과 어떻게 다른지 자체를 알아차리기 조차도 힘들었어. 그래서 내 이해가 어떤 방식으로 현재 작용하고 있는지 알아가는데만해도 몇년의 시간이 걸렸어. 나는 아직도 그 여정에 있어.
-----
나는 나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연애를 안한지 13년. 어떤 마음들이 13년 전의 그 형태로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연애 없이 보낸 13년. 나는 다시 연애를 할 수 있을까?
1, 2년동안 그전보다는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래서 13년만에 느끼는 자신 안에 13년 전의 형태로 남아있는 마음들이 놀랍기도 했다. 너무 오랫동안 고민하거나 생각해보지 않아도 되었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준 계기와 기회가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가 "나, 너에게 섹슈얼한 감정을 느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다시는 가서 닿지 않았을 마음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에게 쓰는 편지를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와는 항상 그렇게 삶의 고민과 당시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방향성 등을 나누는 사이기도 했다.
저녁이 되었다. 나는 놀이터로 가서 대학 친구인 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수는 대학 시절에 연애에 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같이 나누던 친구였다. 그런 예전의 습관이 다시금 내 안에서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물론 13년간 연애를 안했던 나에게 그러한 기억은 너무나 먼 옛날의 것이었다. 그래서 13년 만에 느끼는 감정들에 낯설어 하면서 전화를 했다. 지금의 조금은 낯간지러운 감정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지수는 내 이야기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탐탁지않아했다. 그가 평균적인 괜찮은 결혼 상대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일단 현재 안정적인 직장이 있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프리랜서인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한명은 안정적이어야지!" 빨리 나도 결혼을 해서 자신의 육아와 결혼 생활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어하는 지수의 기준은 상대의 결혼 상대로서의 조건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역시 친구로서 오랜만에 느끼는 '설레는 감정'을 지수는 듣고 공감해주었다. 그러면서 또한 나를 잘 아는 걱정도 했다. "지금 네 이야기를 들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보러 갈 것 같아. 좀 진정해." 나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13년만의 자극에 들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를 오래 알았던 나의 친구는 나 이상으로 내 현재 상태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답을 해주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어딘가 사실 처럼 느끼면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