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설 멘토/ 에이로봇 대표
결국 핵심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 매달리는 것인데, 저는 그 힘이 재미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재밌어야 몰입을 하고 몰입을 해야 성공의 경험을 하게 되고, 경험이 쌓이면 자신감이 붙어서 자기가 잘하는 분야나 진로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키네틱아티스트이자 로봇의 외형을 만드는 디자이너, 로봇과 놀 수 있는 콘텐츠 기획자까지! 탐험멘토진 중 가장 많은 직업을 가진 엄윤설 멘토님의 본격적인 키네틱아트 여정은 대학 졸업 이후 시작됐어요. 탐험대원들을 위해 작업실까지도 활짝 개방해서 다양한 노하우를 전수해주신 멘토님의 탐험은 어떻게 시작됐을까요? 에이로봇 대표 엄윤설 멘토의 에너제틱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몰입한 경험이 쌓이는 만큼 확신이 생긴다
저는 금속공예를 전공했는데 미국으로 대학원을 가기 전에 몇 개월 정도 비는 시간이 생겼어요. 그래서 로봇을 만드는 회사에서 외형을 디자인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죠 그 당시에 회사에선 어린이들에게 로봇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을 가르치기 위해 장난감 형태의 작은 로봇을 개발하는 단계에 있었어요. 근데 제가 장난감 매니아예요. 그래서 저는 토이로봇을 만드는 작업이 너무 재밌었어요. 재미가 있다 보니까 저에게 주어진 업무를 마치고 6시 이후엔 회사에 있는 블록과 모터를 이용해서 이것저것 만들어 봤죠. 아침 9시 출근을 해서 밤 11시까지 주말도 없이 거의 매일을 그렇게 보냈어요. 제가 즐거워서 휴일에도 회사를 자발적으로 나갔어요.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나중에 계산해보니 제가 딱 100일 동안 그렇게 보냈더라구요. 게다가 저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제가 움직이는 토이로봇을 만들었을 때 엔지니어가 만든 토이로봇보다 더 귀여운 거예요.(웃음) 그래서 제가 만든 토이로봇이 시장성이 있다고 직원분들이 판단을 하시게 돼서 40개 예제로 총 4개의 패키지를 완성하게 됐어요. 40개 예제를 만들려면 그것보다 더 많이 만들어야 하는 거잖아요. 필요없는 것들은 걸러내고 수정하는 작업을 생각해 보면 저의 작업량은 지금 생각해도 많은데, 그 때 어마어마한 양의 토이로봇을 만들고 부시고, 만들고 부시고 하면서 힘든 줄 몰랐어요. 이따금씩 ‘내가 그때처럼 집중하고 몰입하던 때가 있었나?’ 라고 생각하면, ‘그때만큼은 아니지’ 라고 생각할 정도로 정말 힘든 줄을 모르고 했어요. 제가 놀았다고 표현할 만큼 재밌었어요.
저에게 막대한 영향을 준 아티스트는 아서 겐슨(Arthur Ganson)4이에요. 미국에 있을 때 이미 키네틱아트 분야의 거장이셔서 그 분이 운영하시는 워크샵에 참여하면서 만나게 됐어요. 밤 늦게까지 작업을 하면서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분이 ‘네 작품은 내 작업과 굉장히 닮은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근데 저도 생각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아이디어에 대해 그 분과 공감한 적이 종종 있어서 신기했거든요. 이후에 작품 활동을 할 때는 그 사람과 머릿속에서 대화를 계속 했어요. 물론 제 머릿속에서 제가 대답을 하는 건데, ‘이게 왜 안 되지?’ 질문을 던지면 그의 목소리로 대답을 해줘요. 그 만큼 저에게 큰 영향력을 미친 작가예요. 감수성이 비슷했어요. 그리고 그 분을 만나서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작업도 같이하면서 제가 저 자신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내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믿고 작업을 시작하면 완성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많이 얻게 된 만남이었어요.
작년 탐험대원 중 한 명이 오토마타를 만드는 게 너무 재밌어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재료를 사러 나가고 고민을 하는 몰입의 과정이 있었다고 발표했던 모습이 굉장히 기억에 남는 이유가 그 간의 제 모습을 봐서 그런 것 같아요. 저도 그 학생처럼 몰입한 경험이 있어서 시작점과는 다르게 키네틱 분야로 오게 됐거든요. 움직이는 작품을 만들면서 몰입한 경험이 쌓이면 그 친구들의 진로도 키네틱아트나 로봇 쪽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상상한 것을 실제로 만드는 과정에 중독되다
저의 상상력의 시작은 보통 판타지 영화, sf 영화, 소설이에요. 작품 속 장면들을 보면서 ‘저걸 내가 실제로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해요. 영화적인 상상력과 과학의 기술력은 공학 분야의 양쪽 발과 같아요. 영화 스토리를 쓰시는 분들이 상상을 해서 현재는 없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면 과학자나 엔지니어들이 그것을 보고 만들어내요. 그럼 다시 작가들이 이야기를 연결해서 그 다음 것을 상상해 내면 과학자와 기술자가 구현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과정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거죠. 저도 제가 좋아하는 마법 영화, 우주 영화들을 보면서 영감을 많이 얻고 실제 작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만든 작품도 글 쓰시는 분들의 상상을 부르지 않을까요? 제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토이로봇이 특별하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도 내가 만든 게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것처럼 움직일 때 느끼는 짜릿함 때문인 것 같아요. 레고로 귀여운 강아지를 만들 수 있지만 움직이지 않잖아요, 하지만 토이로봇으로 만들면 네 발로 아장아장 걸어 다닐 수 있어요. 상상했던 움직임이 결국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실체로 완성했을 때의 희열이 엄청나요. 특히 어려운 과정일수록 성취감이 커요. 내 머릿속에서 원하는 움직임과 지금이 아주 미세하게 다를 때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 건지를 찾아가고 이런 저런 시도를 통해 마침내 내가 그리던 환상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냈을 때, 정말 짜릿해요. 성취한 순간까지도 몰입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제가 키네틱아트와 로봇을 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물론 난이도가 높을수록 과정이 길고 ‘이건 안 되는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어요. 제가 에디(EDIE)라는 로봇을 만들 때 정부 과제 연구비를 받아서 작업했는데, 이미 완성하고자 하는 그림이 머릿속에 뚜렷하게 있었어요. 하지만 그때 컨설팅을 해 주신 분이 3년 과제 기간 동안 이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다고 못 박 듯이 말씀하셨어요. 오기가 생겨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고 결국은 했거든요. 대부분의 작업들이 대안이 있는 피드백보다는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하는 무수한 지적과의 싸움일 때가 많아서 증명하듯 보여줘야 했죠.
그럼에도 제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안 풀리는 문제를 스스로 풀어낸 경험이 이전부터 몸에 쌓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토이로봇을 만들 때부터 키네틱아트 작업, 로봇 작업 등 수많은 시도를 할 때 저 혼자 해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결국엔 성공을 했던 경험이 몸에 베고 나니까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결국엔 풀릴 거야’ 하는 감각이 생기는 것 같아요. 맨땅에 헤딩을 하는 느낌으로 새로운 로봇이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도 어려움과 실패들을 풀어냈던 수많은 경험 때문이겠죠. 이 맛을 본 친구들은 그 매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거예요. 비슷한 문제를 지난번에도 다섯 달 정도 걸려서 해결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 이번에도 3개월 동안이나 끙끙대고 있지만 결국 해낼 것이라는 믿음을 배우게 될 거예요. 치열한 고민 끝의 성공한 경험이 하나씩 쌓이면 기간이 얼마나 길게 걸리는지, 문제가 얼마나 어렵다고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재미있다면 용감하게 도전하세요!
탐험대원들이 작년에 스스로 재료를 사고 고민을 해서 오랜 시간 동안 작업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재미있었다는 의미 같아서 그 얘기를 들으면서 감사했죠. 다른 데에서는 하지 못 하는 정말 재미있는 활동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 성과와는 별개로 학생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도록 채널을 열어주고 판을 깔아주는 건 탐험대학이 해 주는 일이잖아요. 하지만 학생들이 움직여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면 의미가 없거나, 움직이더라도 오래 가지 못해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세 가지가 있어요. 재미가 있거나 보람을 느끼거나 돈 같은 보상이 있을 때 동기가 부여되고 시간과 열정을 쏟기 시작하죠.
하지만 탐험대학에 오늘 친구들처럼 좋아하는 것을 아는 친구들보다는 아직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친구들이 훨씬 많을 거예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 해요. 학교 과목을 넘어서, 시시해 보이는 활동이더라도 다양한 분야에 시도를 많이 해봐야 해요. 근데 학생들에겐 절대적인 시간이 많지 않아서 학교 선생님 또는 부모님은 우선적으로 ‘미래가 유망한’ 분야와 관련된 활동을 제안하실 때가 많죠. 재밌는 활동을 제안하는 게 아니라 직업을 찾는 과정에 괜찮을 것 같은 시도들만 던져 주시면 학생이 경험할 수 있는 영역 자체가 좁아져요. 재미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시도가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다른 어려운 점은 많은 친구들이 틀리는 걸 두려워한다는 거예요. 시도를 했는데 지적을 받거나, 더 나아가 충분히 칭찬받지 못하면 재미가 없다고 느끼고 포기하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는 거죠. 근데 진짜 재미는 그런 맥락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실패할 것 같은, 칭찬을 받지 않을 것 같은 길을 가려 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있는 세계와 우주의 사이즈가 작아져요. 다른 사람이 하라고 한 일은 훌륭하게 해낼 순 있겠지만 스스로 내딛는 시도 자체가 무서워지죠. 그럼 창의적인 도전을 하기가 어려워져요.
재미를 찾기 위한 과정은 학생 혼자의 힘으로만 거쳐 나가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어요. 학생이 배우면서 살아가는 환경을 대부분 부모님이 조성해주시기 때문에 학생보다 부모님이 먼저 용감해야 하는 것 같아요. ‘괜찮아, 겁내지 마, 틀려도 돼’ 라고 말해주는 존재가 학생에겐 필요하기 때문이죠.
엄윤설 멘토님의 작업장에서 하루종일 작업!
현장의 열기를 영상으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