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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토마토 Oct 25. 2024

너의 이름은?

-나무 베란다에 살고 있는 너희들의 이름

  야외 나무 베란다가 있는 아파트 일층에 이사 온지 사년이 지났다. 2020년 9월 태풍 오기 전날에 이사를 왔었다. 이 집과의 인연은 태풍에 대한 공포와 함께 시작되었다. 이사오자마자 밤새 태풍이 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아침,  베란다문을 열었다.

  나무 베란다에는 화분이 깨져 있었고 뿌리를 드러낸 나무가 흙덩이들과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처음 마주한 야외 나무 베란다의 모습이었다. 야외 나무 베란다에는 전주인이 키우던 화분들이 있었다. 전주인이 두고 간다기에 그냥 '네' 하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그것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 뒤에 깨달았다.


  직장을 다녔던 나에게는 모든 것이 짐이었다.


  화분 관리를 잘하는 언니에게 베란다에 있는 식물 이름을 물어 겨우 이름만 기억했다. 그리고 무관심했다. 저절로 크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여름에는 거의 날마다 물을 주어야 하고 겨울에도 가끔 물을 주어야 한다는 것, 때가 되면 영양제를 주고 거름을 주어야 한다는 것, 분갈이도 해줘야 하고 가지치기도 해야한다는 것 등을 하나씩 익혀갔다.

  애초부터 식물 가꾸기에 취미가 없고 식물은 나의 손을 거치면 죽게 된다는 것을 진리로 알고 있던 나였기에  모든 것이 난감했다. 하지만 나의 노력에 비해 더 탐스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들을 보며 그들을 좀더 잘 가꿔야한다는 생각을 거듭 했다. 여전히 겨울이 지나고 나면 식물들은 많이 죽어 있지만 사년 전에 비해 나는 좀더 성숙한 식집사가 되어갔다.


  그렇게 가꾸던 화분 사이로 고개를 내민 길고양이. 길고양이와 눈이 마주치고 돌봐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버렸고 사료를 사서 나무 베란다에 놓아주게 되었다. 결국 식집사에 이어 고양이 집사까지 되어 버렸다.

나는 이제 동백나무, 애니시다, 수국, 장미와 로즈마리, 라벤다, 치자, 해바라기, 백정화, 국화, 꽃기린, 제라늄, 카랑코에가 피워내는 꽃들의 매력을 안다. 여름이 되면 열리는 딸기, 방울토마토, 고추의 달큼한 맛도 알아버렸다. 단풍나무 잎들이 순식간에 빨개졌다가 화다닥 지는 풍경은 삶이 머물러있지 않다는걸 깨닫게 했다.  오색마삭줄의 찬란한 잎들과 상큼한 로즈마리향을 위해 부지런히 물을 주어야한다는 것도. 더불어 식물들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담아 정성껏 애써야 한다는 것도.


  길고양이들이 살기 위해 추운 겨울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 아기 고양이들이 어미 고양이의 꼬리를 잡고 노는 것, 지나가던 벌들이 길고양이 물그릇의 물에 목을 축이는 것, 새들이 배고프면 고양이 사료도 먹는 것을 살피게 되었다.


  하루하루 애쓰며 살아가는게 나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많다! 오늘은 나무 베란다에 살고 있는 모든 나의 친구들에게 애쓴다,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름도 없이 스쳐 지나갔던 길고양이 까망이, 노랑이, 나비, 순둥이, 까망이의 아기, 노랑이의 아기, 몬순이, 몬순이의 아기, 치즈와 아기 고양이의 이름도 나지막히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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