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흥미로운 주제였다.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구매 한지는 꽤나 지났지만, 엔간해서 읽을 시간이 나지 않았다.
헬스를 다녀오고 나니 문뜩 그런 생각을 했다. 나름 나를 관리한다고 운동을 다니고 있는데, 그러고 보니, '생산적인 일'과 '소비적인 일'을 모두 하는 '나'라는 존재에서 '생산성의 저하'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했던 '운동'을 보면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산'을 하는 게 '나'일까?
'생산력'이 떨어진 나의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운동을 한다는 것에 헛웃음이 나왔다. 돌아와 보니, 마침 읽어야지 싶었던 책인 '에이트'가 내 눈에 보였다.
내가 하는 일을 인공지능이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용자'이기도 하면서, 경쟁자이기도 한 묘한 감정의 혼돈이다.
책을 펴고, 2시간 정도 되니 완독 되었다. 나는 사실 '작가'의 책에 대한 편견이 있다.
사업에 관련한 책은 '사업가'가 쓴 책을 읽는 편이고, 역사에 관련한 책은 '역사가'가 쓴 책을 읽는 게 좋고, 천문학에 관련한 책은 '천문학자'가 쓴 책이 신빙성이 간다.
사실 에이트라는 책은 그 내용에 있어 깊이가 있지는 않다. 사실 이 분야에 전문가가 쓴 책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얇은 깊이가 곧 책이 나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고. 따지고 보면, 학창 시절 내가 고심하던 문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경우는 잘 나간다는 학원강사들 보다 나보다 조금 더 낫은 옆자리 친구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은 상당히 마음에 들긴 하다. 하지만 가볍게 읽어보는 정도로 좋은 것 같다. 인공지능이 우리를 대체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스스로 보호해야 하고, 그 방법에 대해 설명한 책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생각을 했다.
기술의 발전이 곧 모든 사회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스마트폰처럼, 급격하게 다수에게 퍼지는 혁신적인 기술도 있다.
하지만, 사회는 그렇게 낭만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완벽한 탈중앙화 블록체인 기술이라는 비트코인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비트코인 창시의 이론처럼, 이는 이론만으로 완벽한 기술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기술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 기술은 단순히 고도 기술이라고 다수에게 보급되지 않는다.
인류가 달여행을 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온다고, 모든 이들이 달로 신혼여행을 갈 수 없는 것과도 같다.
시장은 기술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술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시장성과, 사업성이 있어야 한다. 또한 정치적인 이슈도 적절하게 타고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단순한 논리는 '시장 논리'를 상당하게 벗어난다.
시장경제는 '생산'과 '소비'의 균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방적기와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인간이 가내수공업으로 생산해내던 방식으로부터 '공급 폭발'이라는 현상을 만들어 냈다.
공급 폭발은 자국 내에 생산된 물품을 판매하고, 그리고 남은 것은 공동의 투자로 제조한 거대한 배에 실어 '공급 폭발'이 일어나지 않은 제3 국의 수요에 맞춰 판매되었다.
자국에서 폭발적으로 생산되는 물품을 들고, 대양을 넘어, 이 나라와 저 나라를 헤집으며 다니는 대양의 시대를 넘어, 생산 물품의 원료까지 저렴하게 얻어오고,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용병을 고용하기 시작한 유럽은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 식민지 확장을 통해 '제국주의'라는 시대를 만들어냈다.
제국주의는 바로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공급력 폭발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유럽 내에서 상대적으로 뒤늦게 공급력 폭발이 일어난 독일과 같은 나라는 자신이 진출할 '식민지'가 없음을 인지하고, 1차와 2차 대전을 일으켰다.
나치는 유태인들을 이용하여,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고, 프랑스와 폴란드 등을 침공하여 자신의 국가에서 생산된 생산물을 판매할 판매처를 확보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산'뿐만 아니라 '소비'이다.
누구나 물건을 하나씩 들고 있을 때, 내가 팔아야 할 물건이 있다면, 상대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부숴버리고 내 것을 파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은 현재의 대형 중공업회사들을 탄생시켰다.
이처럼 산업혁명 이후의 근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체제로 돌아가고 있다. 이는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자신들의 폭발적인 공급력을 감당하기 위해 서유럽에 마셜 플랜을 통해 아낌없는 지원을 쏟아부었고, 이라크 전쟁, 베트남 전쟁 등을 통해 적절하게 상대국의 생산성을 부수고, 소비력을 부추겼다(전쟁으로 인한)
하지만, 우리에게 미국의 지배하는 세계가 이토록 평화롭게 보이는 이유는, 미국이 생각해낸 '생산'과 '소비'의 균형 찾기의 정답에 있다.
공장에서 물건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모든 이들이 이미 물건을 하나씩 가지고 있을 때, 독일은 상대의 물건을 부수고, 자신의 물건을 판매하는 전력을 세웠다. 하지만 미국은 달랐다. 미국의 판매 전략은, 한 개를 가지고 있으면 2개를 갖고 싶게 만들고, 이미 두 개를 갖고 있으면 4개를 갖고 싶게 만드는 전력이다.
즉, 과소비라고 부르는 '마케팅'의 시대가 열렸다.
때문에 우리는 100만 원을 주고 산 핸드폰도 2년 뒤 지루해졌다는(유행이 지났다거나, 배터리가 약해졌다는 ) 이유로 바꿔 버리기도 하고, 멀쩡하게 잘 나가는 3000만 원이나 주고산 자동차를 15~20년 타고 새 차고 바꿔 타기도 한다.
하나를 갖고 있다면, 버리고 두 번째 것을 사게 하거나, 이미 하나를 갖고 있으면 두 개를 갖고 싶게 만드는 이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다.
이런 시장경제의 원리는 근대부터 현재까지 꾸준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생산력이 뛰어난 인공지능이 생긴다면, 우리의 일자리를 잃고 난민이 된다는 설정은 몹시 잘못되었다.
생산과 소비에서 생산력만 뛰어날 경우는 시장경제가 큰 타격을 받는다. 대표적인 것이 20세기 초 미국의 대공황이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뛰어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인간이 3일 걸리는 일을 20분 만에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만약, 그로 인해 인간이 일자리를 잃어버린다면, 생산력이 뛰어났던 인공지능의 사업성은 크게 줄게 된다.
소비는 인간이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소비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으로부터 '부'를 쓸어가 버리면, 인공지능이 부를 축적할 대상이 사라진다.
때문에 이런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꼭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할지라도, 인공지능이 당장 수년 내에 들이닥치지는 않는다.
다만 일부 직업군에 대한 변화를 가져올 순 있다는 말에는 공감을 한다.
요즘 미국의 대형주들의 주가 성장세가 무섭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모든 주식이 성장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보면, 미국의 모든 주식들의 성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중소형주는 성장세가 멈추었다.
요즘 미국의 다우지수나 나스닥의 성장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들에 자본이 몰리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4차 산업 기술들은 자본력이 튼튼한 '대기업'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전 세계 대부분의 글로벌 회사들의 주식이 급등하는 것이고, 다만, 대형 글로벌 회사가 모여있는 미국의 급등세가 두드러져 보일 뿐이다.(삼성의 급등도 연관)
1. 우리나라에 넘쳐나면, 다른 나라에 판다.(제국주의)
2. 다른 나라도 넘쳐나면, 깨부수어 다시 판다.(세계대전)
3. 그도 아니면, 2개, 3개, 4개씩 과소비하게 한다.(현대 마케팅)
인류는 1번과 2번, 3번으로 이어지면서, 폭발한 생산력을 소강시킬 소비방법을 찾아왔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으로 인해 다시 한차례 폭발하게 될 생산력에서 인간이 찾을 답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복지'라고 본다. 생산성이 없는 인간에게 대기업의 세금으로 얻어진 '복지'를 쏟아부어, 또 다른 소비를 부 축이는 것이다.
사실 이것 또한, 이미 21세기 타 선진국들이 시작한 부분이다.
나는 결국 이런 생산과 소비의 균형이라는 체제를 기반한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인공지능의 폭발적 성장은 힘들다고 생각한다.
혹여, 북한이나, 구소련 같은 사회주의라면,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생산력이 인류에게 좋은 영향을 줄지도...
그렇다면 앞으로 다가올 인류의 미래의 체제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인공지능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가, 단순 실업률 증가로 한정하는 것은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