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렸다. 말랑 말랑한 팔뚝이 머리와 다리를 감싸고 거침 숨소리가 들렸다. 어렴풋 보이는 달빛에 정신이 반쯤 돌아왔다 나간다. 더 깊이 잠든 듯 두 눈을 질끔 감았었다. 어차피 눈을 떠도 달라질 게 없다. 찐득찐득한 피부에 시큼한 냄새가 면티를 뚫고 심장 소리에 증폭됐다. 그런 기억이 있었다. 아버지와 밤늦은 시간까지 외출을 할 때면 나는 차에서 잠들었다. 아버지는 잠든 나를 두 팔로 안고 거침 숨소리를 뿜으며 침실에 눕혔었다. 잠깐 들어왔다 나가는 정신에 기어이 기억해 낸 건 그 정도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셨다. 아버지는 농사를 지셨다. 해가 질 때까지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동생과 내가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볼 때쯤 집으로 돌아오셨다. 어머니가 시집을 오실 때 해오셨다는 벽걸이 시계 촛침이 바윗 소리처럼 커졌다. 조용한 방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작은 초침이 벗어날 수 없는 공포로 들렸다. 그것이 '공황'이란 걸 크고 나서야 깨달았다. 무한대로 주워진 시간에 홀로 집을 지키는 일은 어린 나에게 감당하기 어려웠었다. 유일한 벗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된 농사일을 마치시고 좀처럼 기운이 없으셨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말랑말랑한 다리와 목이 팔에 걸쳐져 있다. 어렴풋 비치는 달빛에 혹시라도 잠에 깰 까 봐 아이의 눈 주위를 살피며 달빛이 들지 못하게 한다. 찐득 거리는 피부와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아이를 가슴에 안았다. 두 팔로 아이를 안고 대충 한쪽 발로 현관문을 열고 방문을 연다. 겨우 아이를 침대에 눕힌다. 깨우지 않고 겨우 눕혔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인다. 땀에 찌든 아이들의 옷을 보니 내심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불필요한 듯 하지만 필요한 일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다. 몸이 두 개라면 좋으련만..., 둘 인 아이들에게 서로를 맡긴다. 금방 처리를 해놓고 아이를 보겠다고 다짐한다. 정신없이 할 일들을 마무리되면 아이들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그때서야 곰곰하게 생각해 본다. 몇 분 전까지 같이 놀자고 칭얼거리던 아이들이다. 꼭 뒤늦게 장면들이 떠올랐다. 가슴이 메여온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아버지는 친구 같은 분이셨다. 어느 날 잠을 자다, 집 채만 한 바위가 내 쪽으로 굴러가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집 천장을 '피융 피융' 하고 날아가는 레이저들도 보였다. 바윗 소리는 증폭되고 더 증폭되며 나의 얼굴과 숨통 전체를 조여왔다. 점점 크게 들리는 바윗 소리를 도망쳐 부모님께 갔다. 울면서 부모님과 함께 자겠다고 졸랐다. 촛침이 움직이는 '짤각'의 소리도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아이들에게 혼자 있는 시간을 두게 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데리고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아이가 지쳐 잠드는 순간까지 만사를 제쳐두고 함께 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방에서 잠들었다. 돌이켜보니, 함께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지도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육아라서 그런지, 사랑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항상 지나고 나서야 정답이 보이는 것만 같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그러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