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 내 결핍은 누군가에게 채워질 축복의 빈자리

by 오인환

몇 달 전 우연히 한 에세이를 읽었다. 모두 읽지 않고 수개월이 흘렀다. 말끔히 방을 청소했다. 깔끔한 방에서 마치 모든 것이 새로워진 듯 누워 수개월 전 멈추었던 책을 읽는다. 물리적 시간은 이 만큼이나 흘렀지만, 책 속에 가둬진 시간은 거기서 멈춰 있었다. 새로운 마음으로 읽는다. 거실에 있던 쓰지 않는 커다란 스피커를 침실로 옮겼다. 깨끗한 방에 적적한 공기를 잔잔한 피아노 소리가 채운다. 멈추웠던 책도 읽는다. 모든 걸 새롭게 바꾸려 해도 마음을 잔잔하게 해도 새롭지도 잔잔하지도 않다. 몇 달 전 우연히 읽던 에세이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오래된 방과 적적한 공기를 기억하게 만들었다. 그때 그 공기와 감성이 되살아난다. 멈추웠던 책 속의 시간이었지만, 빠르게 오늘의 감성으로 읽힌다. 책의 내용이 달라진다. 이런 책이 아니었는데 싶다. 책을 덮는다.

세상을 살다 보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기 마련이다. 오늘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하루였다. 막상 침대에 누워 피아노 소리를 듣는데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난다. 아무렇지 않았던 하루가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 듯하다. 눈을 뜨면 살아가고, 하루를 마치면 다시 눈을 감는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사는 마냥 정신이 없다. 정신없이 살다 잠에 들면, 다시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문뜩 내가 어떤 존재로 존재하는지 의심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한 번도 내가 누군지 돌이켜보지 않았다. 너무 정신없이 너무나도 빨리 수개월이 지난다.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조차 가늠하지 못하고 전력질주를 하는 느낌이다. 방향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후회를 할 수도 없고 만족할 수도 없다. 애매한 마음을 갖는다. 내가 산 세월은 실재하는 것들이 었을까?

문뜩 그런 생각이 든다. 후회는 돼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이미 출발한 버스를 바라보며 조금만 더 빨리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자괴감은 그 버스에 다시 올라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야 한다. 그 버스가 나와 연이 닿아 있다면 어쩌면 바보 같아도 그냥 멍하니 생각하는 것도 해 볼만 하다. 어차피 정신없이 사는 거... 그 와중에 그냥 그 정도의 짬은 줘도 되는 듯하다.

진심은 항상 그대로다. 누군가가 알아봐도, 알아보지 않더라도 변하지 않는다. 그건 그들의 시선일 뿐이지, 그대로다.

책을 읽는데 이런 구절이 있었다. '부모의 가난은 자녀의 행운'이라는 말이 있었다. 사랑은 상대적이다. 부모가 가난하게 자랐기 때문에, 자녀로서 혜택을 받는다. 가난이 한에 맺힌 부모는 자녀에게 자신이 누리지 못한 걸 누리게 한다. 누군가의 결핍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축복일 수도 있다. 나는 어떤 축복을 받고 살고 있는가? 결핍하다고 투정될 뿐이 었는가. 내 결핍이 누군가에게 채워질 축복의 빈자리라면 기꺼이 웃으며 받아들여야 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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