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언제나 같은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by 오인환

하루는 대략 같다. 방의 3분에 2나 트여있는 동쪽에 난 창이 침대 위를 비춘다. 일출 시간에 맞춰 눈이 뜨여진다. 맞추어 두었던 알람 예정시간보다 5분 먼저 눈이 떠지면 스마트폰 알람을 해제한다. 얼굴에 있는 근육으로 쓸 수 있는 오만상을 다 쓰며 화장실로 들어간다. 화장실에 들어서면 바로 나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 있다. 내가 짓고 있는 하루의 첫 표정이다. 평소에 없던 주름이 깊게 파인다. 거울을 보면 대략 이런 표정으로 하루를 시작하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억지로 얼굴을 피어 본다.

잠에 덜 깬 채, 위로 쏟아지는 물로 샤워를 한다. 샤워를 마치면 샤워가운을 입고 침실로 들어간다. 가운을 걸친 채로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전날 밤 읽던 책들을 정리한다. 그중 서너 권을 책가방에 쑤셔 넣는다. 얼굴을 겨우 비추는 거울을 보며 스킨과 로션을 바른다.

침실에서 나와 서재로 들어간다. 서재에는 헤어드라이어가 있다. 헤어드라이어가 있는 자리로 의자가 있다. 의자에 털썩 앉으면 머리를 말리는 동안 읽을 책의 페이지가 펼쳐져 있다. 머리를 말리면서 책장을 대략 넘긴다. 헤어드라이어 때문에 건조해진 손끝을 덜 말려진 머리카락 사이로 푹 쑤셔서, 물기를 묻힌다. 페이지를 넘긴다.

다시 머리에 덕지덕지 왁스를 하고 헤어스프레이를 뿌린다. 간단한 외출복을 갈아 입는다. 책가방 속에 넣을 다른 책들을 가지러 서재로 들어간다. 한참을 책장 앞에 서 있다가 하나를 골라 넣는다. 핸드폰으로 자동차 공조기능을 켜 둔다. 내가 준비를 하고 있는 사이 자동차는 미리 시원하게 해 둔다.

스케줄표를 살펴본다. 대략 오늘 할 일이 무엇인지 상세하게 나와있다. 아이들에게 간단한 인사를 하고 양말을 골라 신는다. 별 의미 없이 집 안을 그윽하고 살펴보고, 시계를 한 번 쳐다본다. 몇 초를 의미 없이 서있다가 신발을 신고 나간다.

차문을 열면 차 안이 시원하다. 조수석에 책으로 가득한 가방을 털썩하고 놓는다. 하루가 시작이다. 마음이 든든하다. 책가방에는 보고 싶은 책들이 가득하고 스케줄러에는 해야 할 스케줄들이 이미 상세하게 적혀 있다. 나는 스케줄러가 지시한 명령에만 복종하고 책가방에 내어주는 책들만 읽으면 된다. 나의 하루가 안정감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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