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떤 모습이든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2

소설 <아몬드> 읽고 토론후기

by Book lilla

연구회 토론을 마치고


책 읽은 소감 나누기로 서두를 열었다. 김중미 작가의 ‘곁에 있다는 것’ 책이 생각난다는 분도 있었고, 아몬드가 작은 윤재가 부럽다는 분, 아몬드가 큰 사람들(불안, 공포)에 대한 이야기는 많았는데, 작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 흥미로웠다 라는 분도 있었다. 대체로 충격적이면서도 슬펐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흥미로웠던 책인 만큼 소감과 느낌이 다양했다.


첫 번째로 사랑이라는 말이 흔히 쓰이는 것에 대해 토론을 했다.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에서 사랑은 필요하지만 이 사랑이 쉽게 생기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사랑하게 될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사랑한다'라는 말이 넘쳐나는 요즘 이 '사랑한다'라는 말이 과연 사람을 사랑을 하게 해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토론주제로 꺼내 보았다.


175, 사랑이라는 말이 저렇게 흔하게 쓰여도 되는 걸까?

176, 그러니까 내가 이해하는 한 사랑이라는 건, 어떤 극한의 개념이었다.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간신히 단어 안에 가둬 놓은 것. 그런데 그 단어가 너무 자주 쓰이고 있었다. 그저 기분이 좀 좋다거나 고맙다는 뜻으로 아무렇지 않게들 사랑을 입 밖에 냈다.


영혼이 없지만 많이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과 영혼이 없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좋다는 의견에 찬성하는 분들은 대체로 말은 생각과 습관을 지배한다는 생각이다. 현재는 사랑이 없지만 사랑한다고 자꾸 외치면 사랑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다 보면 자연스럽게 행복해진다는 논리이다.

처음에는 가식적인 말은 안 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사용하는 게 좋다는 분들의 의견이 논리적이어서 점점 설득되고 나중에는 이 의견이 지배? 하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말의 어감도 좋고, ‘사랑합니다’라는 말에 존중을 담아서 이야기하면 사랑하게 될 수 있다로 결론?을 내리고 마무리했다.


두 번째는 믿는다는 것과 교육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믿음'은 '사랑'과 더불어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고 흔히들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믿음은 과연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

먼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교육이 학생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에 무게를 두었고, 이 전에 여러 가지 전제를 두었다. 진정성, 믿음, 온기 있는 사랑, 부모님의 관심과 돌봄이 필요하다고 했다. 존중을 기본으로 하고 관심을 갖고 세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모두 의견을 모았다.


마지막으로 ‘이 아이가 어떤 모습이든 변함없이 사랑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가가 던진 질문이기도 하다. 내가 윤 교수라면 곤이를 어떻게 대했을까?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남자 회원들은 대부분 윤 교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했다. 다만 아내가 죽어갈 때 곤이 대신 윤재를 아내에게 아들이라고 소개한 것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을 가지고 있다. 윤 교수의 결정적 실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회피했다는 것이다. 힘든 상황이지만 받아들이고 어려움을 헤쳐 나갔어야 하는데, 현실을 피하고 빠져나가려는 얄팍한 시도가 오히려 아들 이수와 갈등을 더 크게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그 상황이라면 쉽지 않았을 선택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171-172,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 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소설은 ‘아이가 어떤 모습이든 변함없이 사랑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결국은 인간에 대한 존엄을 지키면서 관심을 가지고 세밀하게 아이들을 관찰하고 돌보며 온몸으로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로 결론을 맺었다.

요즘 사건 사고 소식을 보면 인간으로는 차마 할 수 없는 끔찍한 사건들이 많고, 그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 끔찍한 현실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사회와 시대가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연구회 회원들과 ‘아이가 어떤 모습이든 변함없이 사랑을 줄 수 있을까?’ 라는 작가가 던진 질문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했던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참여 인원이 많지 않아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오히려 몰입하고 집중하면서 토론 했던 것 같다.


168, 삶이 장난을 걸어올 때마다 곤이는 자주 생각했다고 한다. 인생이란, 손을 잡아주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잡으려해도 결국 자기는 버림받을 거라고.

-너랑 나, 누가 더 불행한 걸까. 엄마가 있다가 없어지는 거랑, 애초에 기억에 없던 엄마가 갑자기 나타나서 죽어 버리는 것 중에서


아이들이 절규하는 것 같다. 지금도 이런 절망감을 느끼면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지 않을까?


우리도 이렇게 바라봐주면 안될까?

252, 사람의 머리란 생각보다 묘한 놈이거든. 그리고 난 여전히, 가슴이 머리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란다. 그러니까 내 말은, 어쩌면 넌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란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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