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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괜찮아

1인 가구의 재배치

by Lena Cho

오늘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 집이

좀 낯선 느낌이 들었다, 집 정리를 하고,

몇 개의 가구 배치 하나 했을 뿐인데 왠지

다른 집에 이사를 오고 나서 첫 밤을 지낸 후

첫 집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뭔가 어색한

기분...


우리 집은 좁기도 하고, 내가 큰 가구를

이리저리 옮길 수도 없어 이사할 때

아니면 큰 가구를 재배치하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 집도 작지만 왠지 대한민국

90% 이상이 하고 있을 거 같은 거실

한쪽 벽면은 소파, 반대쪽은 TV가

배치되어 있는 구조였다.


그런데 작은 집크기에 비해 큰 TV가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해 검은 물체가 꽤나 답답해

보였다. 잘 보지도 않는 TV가 차지

하기엔 아까운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TV를 방으로 옮기니 거실

공간을 훨씬 자유롭게 쓸 수 있을 거 같아

소파를 벽면에서 떼어 테라스

방면을 바라보도록 재배치를 하였다.

테라스에 식물들이 있을 땐, 식물들로

눈을 정화하고, 또 비나 눈이 내릴 땐,

그것을 한 없이 바라볼 수 있는 뷰...

한강뷰는 아니지만 만족이다.

TV가 있던 자리에 여행중에 사온 시드니 포스터

가구 하나 바꿨을 뿐인데도,

왠지 집이 새롭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갖고 있던 물건도 정리를

하게 되었는데, 몇 전부터 옷이나

가방을 거의 사지 않았는데도 옷장마다

비슷한 옷들이 가득가득 차 있었다.


웃긴 게 옷이 약간씩 디자인만 다를 뿐,

언뜻 보면 거의 똑같다 싶을 정도의

옷들이었다.

난 참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구나란 생각이

들었고,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비슷한 옷만

구매했는지 그때의 나의 생각이 궁금해질

정도였다.


비슷한 것들 중 좀 더 낡은 옷을 과감히

버리고, 갖고 있던 물건들도 용도나,

기능이 비슷한 건 버리기로 마음을

먹고 버리다 보니 그나마 집이 좀

숨통이 트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반면에 한쪽 짝을 잃은 듯한 기분도

들면서 슬퍼지기도 했다...


내가 물건 하나하나에도 이렇게 정말

슬퍼질 정도로 정을 많이 두고 있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맥시멀리스트도

되었겠지만 말이다...


심지어 지금은 그 물건이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짐을 정리하면 발견되는

물건들을 보며, 내가 왜 이 물건을

구매했고, 또 그걸 여태까지 갖고

있었는지 알 거 같고, 그때의 감정들이

되살아나는 기분마저도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필요가 없는 그런 물건들과

작별을 하려고 하니 그때의 나와

이별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참 물건이든, 사람과의 이별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이런 성격 때문에 사회생활이

힘들기도 하겠구나란 생각...

요즘 사회와 맞지 않는 거 같은 성격, 쉽게

정을 주고 또 거기에서 쉽게 상처받는

성격...... 지금은 좀 많이 변하기도

거 같긴 한데, 아직 갈 길이

멀다.....


아무튼 물건을 생각보다 많이 정리를

하고 나니, 복잡했던 머리가 좀

단순해지는 거 같기도 하고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거 같은 기분전환도

충분히 되었지만, 이곳저곳 가득했던

물건들을 보다가 어렵게(?) 마련한 집안

곳곳에 빈 공간을 보는게 뭔가 낯설기도

하다.


왜 진작에 하지 않았을까, 슬프지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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