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는
이제 존재한다.
하지만 아직
잘 알지는 못한다.
자신이 과연
이곳에 존재해도 되는지,
아닌지.
아니, 어쩌면—
이후의 세상이
너무 두렵기도 하다.
누군가 말해줬으면 좋겠다.
“네가 살아도 된다고.
태어나도 좋다고.
네가 살아나갈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곳이라고.”
그렇게,
오늘도 아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존재해도 되는지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