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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감정을 돌봐야 한다

그늘이 짙을수록, 빛은 더욱 선명해진다.

by 호연 Feb 10. 2025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 옆으로 

기다란 그림자가 드리운다. 


발아래 깔린 

짙은 그림자를 보며 생각했다.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 생긴다.

내 안의 어둠도 그런 걸까?


나는 내가 짜증 내는 모습이 불편했다.

화를 내면 후회가 남았고 

아이들에게 쉽게 상처 준 것 같아 불안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한숨을 쉬는 나를 보며 괜스레 눈치 보게 만든 건 아닐지 신경이 쓰였다. 


6일째, 아픈 아이들을 돌보며 하루 종일 부엌과 거실을 오갔다. 

끼니를 차리고 치우고 병치레로 토하는 아이의 이불과 옷을 빨기를 반복하며 

끝없는 반복 속에서,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간식을 챙기고, 심심하다는 아이들과 만들기 놀이를 하면서도,

나는 머릿속으로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떠올렸다.

여유롭게 책도 읽고 글을 쓰고 싶었지만,

집 안 곳곳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나를 그 순간에 붙들어두었다.


"엄마, 나 이거 해줘!"

"엄마, 나 배고파!"

"엄마, 나 심심해!"

"엄마, 풀 어딨어?" 

"엄마 테이프 어딨어?" 


잘 놀다가도 싸우고, "엄마 엄마"를 외치며 나를 찾는 아이들. 

조여 오는 듯한 감각 속에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드디어, 저녁까지 먹이고 

마지막 설거지를 끝내며 

이제 오늘 주방은 마감이다-!!

속으로 외치던 때


"엄마, 나 단감 먹을래!"

첫째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겨우 숨 돌릴 수 있는 순간이었는데.

순간 온몸이 굳었다.

속에서 뭔가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가 자를게!"

첫째가 조그만 손으로 단감을 들었다.

작은 손에 쥐어진 칼날이 아슬아슬했고 

아이의 손이 위험하게 칼 옆을 스쳤다.


"그렇게 하면 위험하잖아!!!"

순간적으로 날 선 목소리가 나갔고 

놀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첫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순간, 적막이 흘렀고, '아 이게 아닌데'싶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이전이라면 아이에게 차갑게 말해 미안하다며 다시 알려주겠지만 

이 순간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색해진 적막을 뚫고 천천히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내면에 있는 화. 지침. 슬픔을 느끼며

앉아있는데 거실에서 작은 움직임이 들렸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조심스레 방문이 열리더니 둘째가 다가왔다. 

작은 두 팔로 내 몸을 꼬옥 감싸안으며

'엄마 괜찮아' 해주는 아이.  


가볍지만, 온몸을 감싸는 듯한 온기였다.

아이의 뺨이 내 어깨에 닿았다.

작은 숨소리에 마음이 아렸다. 

말없이 안아주는 작은 천사의 품. 


잠시 후, 첫째가 단감을 작게 잘라 수북이 쌓인 접시를 조심히 들고 다가온다. 

자신이 하나하나 낑낑거리며 자른 단감을 내 입에 넣어준다. 


"엄마, 엄마가 나를 사랑해서 그런 거잖아.

내가 위험할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알아."

찡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이를 바라봤다.


"힘들면 화가 난다."

"지치면 짜증이 난다."

이 믿음이 내 안에 깊이 자리 잡고,

마치 자동반응처럼 내 감정을 조종했다.


나는 내 감정을 돌볼 시간이 없었고,

충분히 쉬지 못했고, 

결국 쉽게 화를 냈다.

지친 감정을 돌보지 못해 화가 났던 거였다.


나는 아이들을 품에 안았다. 

"아까 너무 차갑게 말해서 미안해.

엄마가 화를 낸 건 너를 미워해서가 아니야.

엄마 안에 '힘들면 화가 난다'는 마음이 있어서 그래. 

감정을 돌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너에게까지 화를 내버렸어.

미안해. 엄마를 이해해 줘서 고맙고… 사랑해."


브런치 글 이미지 2


거실로 나가보니, 창가에 길게 드리운 그림자가 보였다.

나는 천천히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빛이 있기에,

그림자는 존재하는 법이었다.


나는 내 안의 어둠을 떠올렸다.

화, 짜증, 지침, 무기력.

그것들은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돌봐주어야 할 마음이었다.


그늘이 짙을수록, 빛은 더욱 선명해진다.

그러니 내 안의 어둠도 결국 빛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화가 나도 괜찮다.

지쳐도 괜찮다.

그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고, 돌봐주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 나는 그 그림자를,

이제는 제대로 바라보고 있다. 

그늘이 짙을수록 빛은 더욱 선명해진다. 

어둠이 스며든 마음도 결국 빛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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