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미널', 제가 직접 경험해 보았습니다
"이제 곧 볼 수 있겠다, Ju! 가족들하고 크리스마스 휴가 보내니까 어땠어?"
Zoom을 통해 들리는 레비의 목소리가 밝았다. 그녀는 휴가 때도 내가 너무 일만 한 것이 아닌지 걱정했다. 스위스 국민답게 크리스마스 휴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레비.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겐 휴가를 맘껏 즐길 여유가 없었다. 가족들의 얼굴을 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스위스로 돌아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일단 학장님이 잡아놓은 특별 세미나 때문에 우리 과 학생들은 평상적인 개학일 보다 2주 정도 먼저 학기를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스타트업에서 하는 일의 특성상 (그때 YV는 이미 스타트업에서 점점 벗어난 '영 컴퍼니 Young Company'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급한 일들을 처리하며 휴일을 반납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권 다 챙겼지? 비자는 대사관에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됐고." 목록을 하나 둘 체크하며 트렁크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왠지 한국을 다시 떠나려니 슬픔이 밀려들어왔다. 몇 년 전 처음 스위스로 향했던 날보다도 더 큰 감정의 쓰나미가 몰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공항에서 손을 흔들어주시는 부모님을 돌아보는데, 주책맞게도 마음이 자꾸만 울컥했다.
꾹꾹 참아왔던 감정은 결국 활주로를 질주하는 비행기를 따라 눈물로 흘러내렸다. 이제 또 시작이구나. 머나먼 그 나라에서 또 한 해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한참 우수에 잠긴 눈으로 창 밖을 바라보던 중, 위로라도 건네는 듯 기내식이 나왔다. 맛이야 어떤지 잘 모르겠다만, 눈물을 훔치며 먹는 내 모습이 그저 우스웠다. 역시 나의 생존 본능은 감정을 앞서는 것인가.
그렇게 열몇 시간을 날아서 지구 반대편에 도착했더니 늦은 밤이었다. 하지만 나의 '집님'에 도착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스위스에서 항상 다른 사람들과 공동생활을 하며 힘들었다가, 드디어 얻은 나만의 원룸. 100년도 더 된 건물이기에 연세를 존중해 '집님'이라고 불렀다.) 피곤에 절은 뼈마디가 삐그덕거렸지만 힘을 내서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등장한 입국심사의 관문. 몇십 분을 넋 놓고 기다리자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스위스에는 왜 왔습니까?" 심사관의 물음에 잠시 생각했다. '만료된 학생 비자는 출국 전에 대사관에서 연장 처리했고, 출국 시 문제없을 거라고 들었으니 늘 했던 대답을 하면 되겠지.' 그래서 어리석게도 이실직고가 몸에 뱄던 나는 이렇게 당당하게 답했다. “저는 여기서 디자인 공부하는 대학생이에요. 공부하러 왔어요.”
그러자 심사관은 내 비자를 달라고 했다. 난 그에게 대사관에서 말해준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그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문제가 있군. 잠시 옆에서 기다리쇼." 나는 그의 말에 순간 당황하여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심사관은 다른 사람들을 먼저 통과시킬 뿐이었다. 나는 멀뚱멀뚱 그 앞에서 몇 분이고 서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경찰관이 왔다. 옆에 무기를 차고 있는 경찰관이 나를 훑어보더니 알 수 없는 말을 건넸다. '뭐지? 따라오라는 건가?' 스위스에서 살며 독일어는 늘지 않았지만 눈치가 늘었던 나는 그 말 뜻을 넘겨짚어서 알아 들었고, 잔뜩 긴장해서 그 경찰관을 따라갔다.
경찰관은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낡고 기다란 의자에 나를 앉히더니, 서투른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네 비자에 문제가 있다. 여기서 기다려라." 아니, 그러니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야? 그리고 얼마큼 기다리라는 건데? 그는 내가 물을 새도 없이 다시 사라져 버렸다. 주변에 있는 다른 경찰관에게 다가가자, 이 일이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그냥 잠자코 있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렇게 무서운 분위기에서 삼십 분 남짓이 흐르자, 아까 왔던 경찰관이 다시 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부리나케 그를 붙잡고 물었다. "아니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요? 제 비자가 왜요? 대사관에서 다 확인하고 온 건데!"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학생 비자가 서류상으로는 등록이 되어 있지만, 아직 스위스 이민국 측에서 물질적인 형태(카드)로 발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너를 이 나라에 들여보내 줄 수가 없다."
뭐시라? 이거 꿈이겠지? 그럼 나는 어떡하라고? 경찰관은 나에게 주한 스위스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보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한국은 새벽 다섯 시예요. 그리고 심지어 토요일이고요. 대사관에서 전화를 받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요…." 그래도 전화 해 보라는 경찰관의 지시에, 나는 부질없는 국제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받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 대사관에도 연락 안 되는 걸로 알겠다. 이제부터 넌 이 공항을 벗어나는 순간 불법 체류자가 되는 것이다. 네 나라로 돌아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라." 경찰관은 이 말을 남기고 다시 사라졌다. 알고 보니 그는 그냥 매뉴얼을 따라 대사관에 연락을 취해 보라고 시킨 것뿐이었고, 연락이 닿지 않는 것으로 체크해 버린 후 나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던 것이다. 항의할 기회조차 없었던 나는 텅 빈 하얀 방으로 이송되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처음 보는 경찰관이 들어와서 서류를 한 장 내밀며 말했다. "서명해라." 그건 내가 불법 체류를 할 의사가 없으며, 스위스 공항을 상대로 소송을 취하지 않겠다는 각서 같은 내용이었다. 나는 혹시 몰라서 그 종이를 사진 찍어두었고, 경찰관은 내가 서명한 서류를 챙겨 들고 또 사라져 버렸다. 그놈의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또 삼십 분쯤 지났을까. 이윽고 내가 타고 온 비행기의 항공사 직원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그리고 매우 불쌍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제가 설득해 보려고 했는데 이쪽 경찰들이 영어도 잘 안 되고 워낙 고집을 부려서 한국으로 돌아가셔야 할 것 같아요. 돌아가는 비용도 고객님이 다시 부담하셔야 한다네요. 부치신 짐도 지금은 찾으실 수가 없어요. 돌아가시는 비행기에 바로 실릴 거래요. ”
내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와…. 하며 쳐다보자, 그녀는 설상가상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냥 아무 비행기만 타고 가실 수가 없다는 거예요. 여기 오실 때 사용하셨던 항공사를 이용하여, 똑같은 노선으로만 출국하셔야 한다네요. 직항으로 오셨으니 경유 루트로 가실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럼 다음 주 월요일 밤까지 여기서 기다리셔야 하는데, 어쩌죠?”
"네에? 그럼 제가 이 공항에서 꼬박 3박 4일을 만땅으로 채우고 나가야 한다고요?"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항공사 직원의 안타까운 눈빛.
정말 패닉이었다. 한국은 꼭두새벽, 스위스는 한 밤중이었기에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대사관과 영사관은 연락이 되지 않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은 도와주실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주위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 경찰관들이 마치 위험한 사람을 보듯 나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완전히 고립된 느낌과 생전 느껴보지 못한 당황스러움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항공사 직원은 미안한 표정으로 떠나갔다.
기진맥진한 나는 ‘임시 숙소’라고 불리는 곳에 수용되었다. 스무 개 정도의 칸으로 구성된 그곳은 문도 없고, 각 공간마다 얇은 커튼으로만 가림막이 되어 있었다. 남녀의 공간 구분도 없었고, 누가 부지불식간에 들어와도 전혀 방어할 수 없는 곳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라고는 노트북과 핸드폰, 충전기뿐이었는데 그마저도 간이 수납공간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것도 제공되지 않는 그곳에서, 간단한 샤워 용품마저 사비로 구입해야 했다. 손바닥만 한 여행용 파우치에 들어 있는 니베아 샴푸, 바디 워시, 로션이 한국 돈으로 8천 원이 넘었다. 거스름돈을 주는 데스크의 남자 직원이 나를 딱한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얼마나 머무는 거예요?"
“3박 4일이요.”
"아이고, 이런. 여긴 보통 길어야 하루 정도 있는 곳인데."
그렇다. 나는 ‘장기 죄수’에 속했던 셈이다. 어두침침한 공동 샤워실로 들어가자 진짜 수용소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일단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따뜻한 물이 나온다는 사실. 10분 있다가 자동으로 갑자기 모든 불이 꺼져서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겁먹지는 않았다. 어둠조차도 무섭지가 않을 만큼 내가 처한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으니까.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에 허기가 져서 취침실 돌아오는데, 깜짝 놀라서 넘어질 뻔했다.
북적거리며 소란을 피우고 있는 못 보던 사람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쾌하고 희한한 냄새. 시끄러운 언쟁 소리. 침침한 불빛 속에서 보니 파키스탄계로 보이는 남자 어른 셋, 여자 둘, 아이가 둘이 있었다. 아이들은 앙앙대며 울고, 어른들은 서로 뭔가 옥신각신하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오자 위아래로 훑더니 다시 자기들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들은 밤새도록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새벽 다섯 시쯤이 되어서야 그들의 말소리는 심한 코골이로 바뀌었다. (하필이면 내 옆 칸에 있던 아저씨가 방귀쟁이 뿡뿡이의 후손이었던 모양이다. 밤새 그분이 엉덩이골 사이로 울리는 경적 소리를 견디기가 심히 힘들었다.)
영혼이 파스스 부서지는 것을 느끼며, 결국 뜬 눈으로 그 밤을 지새웠다.
시간을 알 수 없는 새벽. 그러다 나도 모르는 사이 깜박 선잠이 들었다. 안 그래도 긴 비행시간에 지쳐있던 몸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의 피로에 굴복했던 것이다. 그런데 몇 시간 후, 눈을 뜨니 소름이 돋았다. 분명 닫아서 묶어 놓았던 내 칸의 커튼이 반쯤 확 젖혀져 열려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왔다 간 것이 분명했다. 누가? 왜? 나는 덮고 자던 패딩을 제치고 일단 사라진 물건이 없나 확인했다. 노트북은 베고 있었고, 핸드폰은 쥐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아랫배에 감돌았다. '앗, 이것은 필시?' 불안한 예감에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는데, 이런. 하필이면 지금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대자연의 마법에 걸렸다니! 한숨 섞인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원망이 들었다. 나는 왜 여자로 태어났는가, 왜…. 당연히 나한테는 여성용품이 없었다. 공동 샤워실에도 그런 것은 비치되어있지 않았다.
결국 급한 대로 데스크로 향했다. 혼자 앉아 있는, 어제 나에게 여행용 파우치를 팔았던 남자 직원. 그는 내 이름을 기억하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Ju. 어젠 편히 주무셨나요?" 아무렴요. 죽는 줄 알았지요. 내게 유일하게 친절했던 그 사람에게, 민망함을 무릅쓰고 이렇게 물었다. “저기요, 혹시 여기 생리대 있나요?” 그러자 미소 짓던 그의 얼굴이 곧 당황스러움으로 굳었다. 잠시 나를 쳐다보던 그는 목청을 가다듬고 기다리라고 했다. (이놈의 스위스는 맨날 ‘기다리라고’ 한다. 지긋지긋 해!)
카운터에 얼마간 서 있으니 그가 조그만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긴 여성용품을 들고 총총 걸어왔다. "여기서 맘껏 골라서 가져가세요." 선심은 고마웠으나, 대부분 몸속으로 완전히 넣어야 하는 탐폰 밖에 없었다. (그것도 너무 무섭게 생긴 것들….) 나는 무슨 시장통에서 물건을 뒤적거리는 사람처럼, 그의 앞에서 패드형 용품들을 골라서 최대한 많이 챙겨 들었다. 부끄러운 것은 나중 문제였다. 일단 급하면 철면피가 될 수밖에 없었으므로.
"저어, 그리고 혹시 더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자유 빼고는 구해드릴 수 있어요." 직원이 애써 겸연쩍은 표정을 숨기며 농담조로 말했다. 그는 내가 불쌍했는지, 샌드위치와 바꿔 먹을 수 있는 조식권과 3시간짜리 무료 와이파이 이용권을 몰래 건네주었다. 나는 그의 명찰을 쳐다보았다. J. 모히또 씨 (물론 본명과 비슷한 가명). 은혜로운 사람이군. 내게 조식권을 준 건 당신이 처음이야.
정신을 좀 차리고 영사관에 전화를 걸려고 하는 순간 두통과 요통이 몰려왔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생리통까지 겹치니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공항 안을 자유롭게 다닐 수도 없었기에 먹을 것을 살 수도 없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그냥 굶을 판이었다. 그나마 구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는 손바닥 반만 한 빵 조각이 전부였는데, 그 마저도 한국 돈으로 만원이 훨씬 넘었다.
결국 J. 모히또 씨에게 받은 조식권을 목숨줄처럼 들고, 근처 카페테리아를 찾아 나섰다. 마실 물을 구하기 힘든 것도 문제였는데…. 망연자실한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니, 아무 걱정 없다는 듯이 푸른 하늘 위로 비행기가 한 대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왈칵 차오르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 엄마 보고 싶다.'
이런 초유의 사태 한복판에서 갑자기 핸드폰 문자 알림이 울렸다. 릴카였다. '안녕 Ju, 스위스에는 잘 도착했어? 사무실에는 언제부터 나와?' 나는 떨리는 손으로 통화 연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얼마 동안 신호음이 가더니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 Ju! 전화를 다 했네? 지금 어디야?"
"으헝헝-"
아아, 나에게 구원과도 같았던 그 통화의 순간이란.
다음 글에서는 내가 어떻게 공항에서 인생에 길이 남을 ‘여행’을 하며 생존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내 삶의 철학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보겠다. 나의 상황을 들은 릴카는 공항에 쳐들어올 작전을 세웠는데….
다음 글: 21. 공항 수용소에서 인생 여행을(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