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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연필 Oct 12. 2024

2부, 詩가 된 율의 가시 3

*     

 퇴원하고 이 주가 지났는데도 엄마는 큰 차도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아빠를 추궁했다. 그제야 입을 연 아빠가 토해낸 말은 절벽 같았다. 종양, 뇌종양. 내게 고백하는 순간 아빠 목구멍에 걸려있던 종양 덩어리 하나가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얼결에 받아 든 말은 액체도 고체도 아니었다. 나와 종양을 나눠 든 아빠는 그제야 비스듬히 생겨난 틈으로 꺼이꺼이 숨을 몰아쉬었다. 종양의 출처를 아니, 행방을 알 길 없어 방황하는 사이, 엄마의 머리를 비집고 들어선 종양 덩어리가 야금야금 엄마를 갉아먹는 중이다. 

그날 이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수시로 떠올랐다. 엄마를 잃어버릴까 두려운 나에게 비롯되는 건지. 이 땅에서 지워져 가는 자신을 목격할 엄마의 두려움이 전해진 건지. 알 수 없는 번지수의 두려움이 나를 휩쓸었다. 할머니는 어땠을까? 엄마를, 딸을 두고 떠나야 했을 할머니는. 나처럼 두려웠을까? 죽음은 떠나는 이, 남겨진 이 모두를 굴절해 다시 내게로 오는 것만 같았다. 

 엄마는 힘껏 아파하지도 못했다. 마음 편히 아파하지도 못하는 엄마를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뭉개졌다. 당장 건너 방으로 튀어가 다 알고 있으니 끙끙 앓으라고 소리 소리치고 싶었지만, 무서웠다. 그러다 정말 호되게 앓으면 어쩌나. 엄마가 붙들고 있던 그 한 줄을 놓을까 봐 두려웠다. 이불로 입을 틀어막았다. 벽을 타고 들려오는 축축한 엄마 목소리가 점점 번져 벽지를 덮었다. 

마음 편히 아파하지 못하는 엄마는 간밤에도 아빠와 내 걱정을 베고 누웠다. 시시 때때 곁을 맴돌며 들려줘야 할 마음을 제때 전할 수 없음에 대하여. 앞으로 아빠와 내게 피어날 그 시절, 마디마디 추억을 함께 하지 못함에 대하여. 그 가운데 엄마가 스스로를 떠올렸다면, 다시 만날 할머니와의 날들이 고작 다였다. 무슨 말로도 엄마의 걱정을 재울 수 없다는 걸 아는 아빠. '내가 더 잘할게' 정성을 담아 묵직하고 담담하게 엄마를 다독였다. 

     

 이즈음 엄마는 내 넋을 종종 앗아갔다. 엄마 생각에 내려야 할 정거장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서둘러 다가오는 아무 정거장에 내렸다. 거슬러 걸었다. 묵직해야 할 어깨가 허전했다. 그러느라 가방을 두고 내린 거다. 멍하게 가방이 떠난 자리에 한참을 섰다. 두고 내린 줄 알았는데 어쩌면 영 쓸데없는 주인을 알아차린 가방이 나를 두고 갔을지도 모른다. 저 혼자 먼 종점을 향해 가 버렸을지도. 풀어야 할 문제를 잔뜩 짊어진 가방이 떠났다. 그러자 세상이 가방이 된 것만 같았다. 가방이 떠난 자리도 이리 큰데. 엄마가 떠난 자리를 떠올리는 건 엄두도 나지 않았다. 걸리버처럼 부푼 답 없는 문제가 하늘에 자욱했다 시커먼 문제가 둥둥 떠 다가오고 있다.

 ― 엄마 나 왔어.

 ― 율아, 아유, 이 땀 좀 봐. 가방 아빠가 찾아오고 있어. 바로 연락해서 다행이지 뭐야.     

 어쩌다 가방을 두고 내렸는지 엄마는 묻지 않았다. 나도 엄마도 온전히 자신일 수 없는 시간을 겅중겅중 건너는 중이다.      

 ― 나 스카 다녀올게.

 ― 율아, 머리 묶어 줄게. 옛날에 엄마가 묶어줬던 것처럼. 여기 잠깐 앉아 봐. 

 ― 우리 딸 정말 예쁘다.

 ― 어디가 예쁜데?

 ― 묶은 머리가 정말 예뻐.

 ― 묶은 이라 말하는 엄마 입술이 더 예쁘네.

거울 속으로 달싹이는 엄마 입술이 실로 더 그랬다.

 ― 그 말이 시네. 그게 시야. ‘내가 어디가 예뻐? / 묶은 머리 / ‘묶은’이라 말할 때 엄마 입술을 봤어 / 머리 묶을 적마다 뭉텅뭉텅 웃음이 나 / ‘묶은 머리’라는 말 자국이 내게 빨갛게 물들었어.’     

 엄마는 특이했다. 순간을 순간으로 두지 않는달까. 암튼 내가 본 엄마는 처음부터 그랬으니까. 크게 특별하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돌아보면 순간이 호사였던 걸 말이다. 그렇게 소소한 일상인데. 이렇게 주고받는 말 모두가. 가슴을 후벼 파는 통증이 돼버렸다. 엄마가 붙든 소소한 일상이 빠진 날을 견딜 자신이 없다. 덩달아 마음이 약해진다. 그렇다 보니 엄마의 일상적이지 않은 특별한 행동 하나하나가 무언의 펀치 되어 눈물보 터뜨리는 데 일조했다. 본의 아니게 눈물을 길어 올리는 마중물이 되고 말았다. 엄마가 아프지 않았다면 '엄마, 또!' 하며 그녀에게 건네는 핀잔 끝에 행복하다는 마음이 번질 텐데. 그 모든 게 사라지겠지.

 ― 율아, 울지 마. 기운 빠져. 시간도 없는데 우느라 아까운 시간 놓치면 아깝잖아. 엄마 율이한테 남겨 줄 자국이 너무 많아. 우는 걸로 쓰기에는 너무 아까워. 아빠가 옆에 있어도, 율이 옆에 아빠가 있어도 각자 외롭다고 느끼는 순간이 자주 올 거야. 그런데 율아. 그건 나쁜 게 아니야. 그럴 땐 외로움을 가슴에 더 꼭 끌어안아. 밀어내려 말고. 서로의 외로움을 감당하지 못해 서로에게 퍼붓는 건 어리석은 거야. 그러니 자신의 외로움을 귀하게 귀하게 여겨. 외로움을 가슴을 꼭 끌어안으면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두면 분명 쓰일 곳 있을 거야. 그러니 외로움을 아끼고 잘 담아 두어야 해 율아. 아빠도 그럴 수 있도록 율이가 잘 매만져야 하고. 우리 딸 잘할 수 있지?     

 난 아직 그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엄마가 급하게 그러라 하는 까닭을 알아, 무섭고 겁나는 그 일을 꼭 해내야 할 것만 같았다. 파고든 엄마 품만은 병들지 않았는지 여전히 따뜻했다.      

 ― 율아, 인디언들 알지? 인디언들은 마을 타고 달리다가도 부러 중간에 한 번씩 멈췄다 간다고 해. 너무 빨리 달리면 영혼이 몸을 미처 따라오지 못할까 봐 그러는 거지. 영혼은 걸음이 느리거든. 엄마는 가끔 형용사가 영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어른이 되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고 나면 꼭 어떤 형용사가 진하게 남아. 그럴 때면 분명 내가 알고 있다고 느꼈던 형용사가 낯설고 다르게 보이는 거지. 제대로 힘든 일 겪고 난 후에 마주하는 형용사는 특히 더 축축하고 쓸쓸해. 형용사가 비로소 내 안의 말이 되는 순간, 송곳처럼 까칠하고 예민해져. 그런데 그 순간을 지나면 내 안에 형용사가 만들어 놓은 어떤 마음이 더 생겨나는 기분이야. ‘보고 싶다, 그립다’가 심장을 파헤치고 들어와 방을 만들어버린 기분. 형용사가 낸 상처가 아물 무렵이면 그다음의 마음이 생겨나더라고. 할머니 떠나보내고 ‘보고 싶다’란 말이 그랬어. 한참 ‘보고 싶다’ 형용사 앓이를 하고 나니 볼 수 있는 것들을 후회 없이 돌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달까? 

 ― 맞아, 엄만 그랬어. 그전에도 그랬지만 할머니 돌아가시고 더 잘하려고 해서 아빠가 걱정 얼마나 했는데. 근데 후회 안 하려고 그런 거야….

 ― 그래도 후회가 남아. 후회는 담을 수 없는 바다 같다니깐. 울이랑 아빠만 돌봤게? 엄만 엄마도 돌봤어. 스프링 공책도 사고, 엄마를 위한 필통도. 이 책상도 말이야. 볕살 좋은 자리에 형용사가 주고 간 마음을 쪼로록 적는 시간이 좋아. 눈물이 드나들던 그 자리 위로 문장이 남거든. 그러니깐 형용사는 나를 괴롭히러 온 게 아니라, 도와주려고 친해지려고 와 준 거야. 암튼 할머니를 보내고 나서야 엄마는 ‘보고 싶다’는 형용사와 친구로 지낼 자격을 얻은 셈이지. 이젠 제법 잘 통해.

 ― 나보다 더?

 ― 그럴 리가요, 아가씨~! 율아. 율이한테 엄마 부탁할 게 있어.

 ― 얘기해.

 ― 아빠 와이셔츠는 율이가 맡아주라. 월화수목금 닷새 동안 입을 옷 토요일에 미리 빨아 두면 되거든. 월요일엔 하얀 화요일엔 흰 수요일엔 뽀얀, 흰옷이라도 날마다 달라. 월요일을 빨고 화요일을 빨면 까만 물이 쏙 빠져나오는데. 힘들었을 아빠의 고단함이 개운해지는 것만 같거든. 마당에서 빳빳하게 마르는 빨래가 얼마나 예쁘게. 우리 율이 기저귀도 그렇게 걸어 말렸는데. 마르는 빨래를 보면 팔랑이는 바람의 무늬가 보여. 빠작빠작 볕살 아래 물기를 덜어내는 빨래를 보면 눈물로 젖은 속도 함께 마르는 것 같고. 빨래만큼 혁신적인 수양의 도구가 있으려고. 아빠도 율이도 바쁜 아침 허둥거리다 엄마 빈자리 마주하지 말았으면 해 그러는 거야. 하루가 얼마나 힘들 거야. 보살핌 한 자락 얹어 두면 조금 덜 하지 않을까 싶고…….

 ― 엄마처럼 손으로 빨아?

 ― 아니, 그건 엄마가 그러고 싶어 그랬던 거고. 율아 세탁기로 해. 율이 교복도 함께 빨아서 널을 때는 힘껏 탁탁 털어 너는 거 알지?


         

*     

 엄마가 아픈 뒤로 아빠는 서둘러 퇴근했다. 학교로 출근하는 비교적 자유로운 직업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낯가림 심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선생님이 아빠라 생각하면 단전에서 묵직한 답답함이 밀려오곤 했다. 담임과 소통이 중요한 고교 시절, 아빠 같은 담임을 만난다면 그냥 망한 거다. 내 아빠지만 그게 사실이다. 누구보다 제자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지만 21세기 말하지 않으면 대체 누가 안단 말이냐. 다 자라오지 않고 덜 자라 온 것만 같은 아빠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엄마 고생시키는 것만 같아 더욱 더.

 ― 일찍 퇴근하니까 좋다. 날마다 토요일인 것 같아. 아프니까 좋네. 이렇게 듬뿍 시간 보내고 말야. 율이 아빠 나 부탁이 있는데…….

 ― 응

 ― 서넛 앉을 수 있는 벤치 하나 만들어 주라.

 ― 벤치는 무슨 벤치야.

 '셋이 앉을 수도 없는데'하는 아빠 마음이 들리는 것만 같아 화가 치밀었다.

 ― 아빠! 그냥 알았다고 하면 되잖아. 다른 건 다 만들면서 엄마가 의자 하나 만들어 달라는데 그게 어려워!

 ― 율아, 아빠 만들어 줄 거야. 알잖아. 말만 그러는 거.

 ― 그러니깐, 그게 문제라고. 만들어 줄 거면 기분 좋게 어떤 스타일로 만들까? 색도 칠할까? 이렇게 박자 정도 맞춰줄 수 있는 거잖아. 

 성이 잔뜩 나 있는데 아빠는 주섬주섬 옷을 걸치더니 나갈 준비를 하는 거다. 화를 돋우고 수습도 않는 아빠의 몸짓에 더 분통이 터졌다. 

 ― 어디 가려고요?

 ― 목재상 다녀올게. 저녁 준비하지 마. 나가서 먹자. 율아, 미안해. 뭐 먹고 싶은지 엄마랑 상의하고 있어. 

 ― 다녀와요.     

 엄마는 나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다리처럼 이 마음 저 마음 건너다니느라 바쁜 엄마는 콧노래를 불렀다. 좋은 것도 없는데 말이다. 저녁을 먹으며 엄마는 아빠한테 반주를 권했다. 술 마실 상황이 아니라 생각했는지 아빠는 거절했지만, 엄마는 기어코 소주 한 병을 시켜 아빠 잔을 채웠다. 엄마와 마주 앉아 종종 소주잔을 기울이던 아빠의 표정이 오늘따라 도 황망했다. 투명한 소주처럼 넋이 나간. 이미 술친구를 잃어버린 듯, 부표 잃은 손짓만이 허공으로 포물선을 그었다. 그런 아빠가 가여웠다. 공연히 성을 냈나 싶었다. 간신히 밥을 먹고 돌아온 엄마는 오늘치 힘을 다 썼다는 듯 침대로 스며들었다. 아빠는 엄마 곁에 주저앉았다. 불도 켜지 않은 채로. 어두운 방을 지그재그 가로지르는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 율이가 제일 힘들 거야. 알잖아, 그럴 거라는 거. 이제 내가 당신 마음 번역해 줄 수 없어. 당신이 전해야 해. 당신 똑 닮은 거 알아? 율이도? 마음이 얼마나 단단하고 다정한데. 왜, 율이 열 살 땐가? 충주 호암지 걷고 와서 쓴 시 기억나? 

 ― 무궁화 꽃잎은 안쪽이 가장 찐하다 / 무궁화 꽃잎을 먹어 보니, 안쪽이 가장 달다 /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 안쪽이 가장 따뜻하다. / 그래, 그 시. 정말이지 우리 율이는 달랐어. 당신 또렷하게 기억하네. 이것 봐. 당신 그런 사람이야. 여보 우리 율이 마음 식지 않게 해 줘. 말해야 해. 마음은 전해야 해. 나야 당신 마음 훤히 알지만 율이한테 그걸 봐달라면 무리야. 따뜻한 아이가 식으면 답 없는 거 알잖아. 이젠 당신이 나여야 해. 당신 자신한테도 그렇고.  알았지?

  ― 알았어, 애쓸게.

책상에 앉았지만, 다가오는 밀물의 시간이 몸을 조여 오는 것만 같아 정박한 활자가 도무지 눈에 들지 않았다.  알 것도 모를 것도 같은 어떤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잠드는 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

'엄마는 기억을 지우기 시작했다. 밥하는 법도 잊었다. 내가 라면을 끓여도 말리지 않는다. 실내화를 두고 가도 창에 걸린 구름 보느라 가만가만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좋아하는 붕어빵을 샀다. 헤엄치던 기억을 지운 붕어, 움찔, 붕어 꼬리가 움찔거렸다. 가끔 나를 볼 때면 엄마도 움찔거린다. 두 손에 든 따뜻한 붕어빵처럼. 우리 엄마 손도 여전히 그렇다. 엄마 옷 방엔 겨울에 사 둔 청자켓이 걸려있다. 청자켓 곁으로 벌써 봄이다. 쑥부쟁이처럼 핀 찢어진 청자켓은 지체할 수 없는 젊음이다. 아프지만 말고 언제나 무럭무럭 엄마의 계절이 봄이면 좋으련만. 애타는 눈으로 청자켓은 엄마를 기다리는 중이다. 새봄을 다시없을지 모를 그 봄을.'

 도통 시인지 일기인지 모를 것을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금이 간 심장이 산산조각 날 것 같은 기분을 꺼내 적으면 통증이 조금 가라앉는다. 내 몸 안에서 내가 빠져나간 사이에도, 1교시는 6교시를 향해 쉼 없이 달렸다. 

 ― 율아!

 교실 문을 연 담임 얼굴이 벌겋게 익었다. 다급한 외침에서 직감했다.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담임의 표정으로 이미 충분했다.          

 ― 마음의 준비하십시오.

 의사는 네모 같은 표정으로 ‘마음의 준비하세요’란 말을 찍어냈다. 마음도 준비하세요. 마음만 준비하세요. 마음도 마음만도 아닌 마음의 준비하세요, 란다. 외할머니를 보내던 그때도, 엄마랑 우리는 마음의 준비라는 마법을 걸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사람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고 떠나지지 않았다. 눈물이 덜 나지도 마음이 덜 아프지도 않았다. 떠나보내는 마음을 준비한다는 건 일요일 한낮 실내화 빨아 널고 다음 주 준비하듯 그리 한가로운 게 아닌데. 아무리 해도 소용없는 걸 자꾸 준비하라 한다. 젠장, 십팔 젠장이다. 갈가리 찢어질 것 같다. 산산조각 난 내 안의 것들이 눈앞의 것들을 마구마구 할퀼 것만 같다.      


 엄마는 혼자 떠났다.     

‘엄마 어디야? 얼마큼 갔어? 하늘에 도착했어?’  

‘엄마 나 이렇게 방황하는데 걱정 안 해? 나 찾으러 와. 나 엄마 올 때까지 계속 걸을 거야.’ 

오늘도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끝까지 걸으면 내 걱정에 돌아온 엄마가 이 길 끄트머리에 두 팔 벌리고 서 있을 것만 같았다. 밤을 떠도는 내게 사람들은 하나같이 슬퍼 말라 했다. 슈퍼할머니, 세탁소 아저씨, 희진언니, 담임선생님 모두 말이다. 그러고 있으면 엄마가 홀홀히 떠나지 못한다고. 내가 바라는 게 그거다. 바로 그거란 말이다. 납득할 수 없는 그런 말 따위를 받아들여야 어른이라면 난 온몸으로 아이일 테다. 엄마를 보내주라 말하는 입을 죄 모아 모조리 강물에 던져버릴 테다.

'한 마디만 더 해봐, 어디!'

그때였다. 다미와 효석이 앞을 가로막았다. 작정하고 방황을 막으려는지 좌우 밀착 태세를 갖췄다. 

 ― 오늘은 환할 때 집 가자. 어떻게 한 달 내내 걸어. 

속이 상해 어쩌지 못하는 다미가 걱정 타박을 한다.

 ― 전화 좀 봐.

효석이가 툭 친다. 주섬주섬 찾아 꺼내 든 전화. 부재중 3통. 아빠다.      

 그제야 물집투성인 발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몰려왔다. 운동화 끈을 느슨하게 하니 조금 옅어지는 것도 같았다. 그 무렵 걷는 것의 부질없음에 지쳐갔다. 때마침 알아차린 두 녀석이 내 길을 막아 세워 줬다. 스스로 제동을 걸 수 없을 때가 있다는걸. 그래서 나를 잘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는걸. 의지의 마음이 내 양 가에 딱 버티고 있으니, 피로가 몰려왔다. 씻고 잠들고 싶었다.

못 이기는 척 다미와 효석의 보호를 받으며 느리게 천천히 걸었다. 보름쯤 떠났다 돌아온 것 마냥 익숙한 골목이 영 낯설었다. 골목이 낯선 건지 이른 시간이 낯선 건지 쨍한 햇살이 그만 생각을 멈추라는 듯 빗금으로 내게 곤두박질치는 것만 같았다. 어느새 봄이라니. 

 문 열린 정육점으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다미와 효석은 아빠에게 나를 건네고 말없이 퇴장했다. 

 ― 잘 드셔야 해요. 율이도 잘 먹이시고요!

엄마를 잘 아는 정육점 사장님의 그리움은 또 나와 다른 무늬인 듯했다. 엄마의 마음을 한 줄이라도 받았던 이들은 엄마 대신의 자리를 자처했다. 문 앞까지 나와 돌아가는 아빠의 등을 오래 매만지는 폼이 그랬다. 아빠는 나를 발견하지 못했고, 나도 그런 아빠를 불러 세우지 않았다. 가만히 뒤따랐다. 아빠의 등에서 고개를 거두던 정육점 사장님과 눈이 딱 마주쳤다. 벌게진 눈을 못 본 척 목례를 건넸다. 아저씨는 내 등을 두어 번 쓰다듬고는 서둘러 아빠를 따라가라 손짓했다. 정육점 안에서 밖을 내다보던 아주머니는 돌아서 고기 창고로 쏙 몸을 숨겼다. 차마 건네지 못한 말이 골목 위로 투명한 거미줄을 쳤다. 집 앞 벤치에 아빠는 검정 봉다리와 나란히 앉아있다. 그 곁에 가만히 앉았다. 아빠는 아빠의 오른손으로 내 왼손을 폭 감쌌다. 거칠고 따뜻했다. 이내 아빠는 무릎을 꿇더니 느슨해진 내 신발 끈을 제대로 동여매고 자리로 올라앉았다. 둘은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었다. 노을이 골목에 차오르는 내내.    


       

*     

 ― 요즘 어때?

 ― 그냥, 똑같지. 참 다미 유혹했어. 학원 가지 못하게. 그리곤 한강으로 끌고 갔어.

 ― 왜 그랬어.

 ―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는 푹 땅만 보고 걷는 거야. 그래서 어디 가냐 물었는데 하관 간다는 거지.

 ― 하관?

 ― 응, 학원이라고 한 걸 거야. 그런데 나한텐 그 말이 하관으로 들리는 거지. 왜 엄마 땅속에 묻을 때 하관한다 했잖아. 다미가 학원이라 하는데 땅 속에 묻힐 것만 같았어. 이렇게 학원 갔다가는 끝내 땅속으로 끌려 들어갈 것만 같았어. 그래서 막았어. 하관 가지 말고 한강 가자고.  

 ― 끌려 들어가면 안 되지, 그럼 그럼. 잘했네 우리 딸.

 ― 한 시간 넘게 걸었지. 한강까지 가려니깐. 한강이 보이는 의자에 딱 앉았는데. 갑자기 다미가 우는 거야. 나도 힘들 텐데 자기가 울어 미안하다고 계속 미안하다고 하면서 우는 거야. 그래서 꼭 안아줬어.

 ― 왜 우리 율이한테서 엄마가 보일까?

 ― 그래? 그럼 좋은 거지?

 ― 좋은 거지. 그럼 좋고말고. 아빠는 아빠는 어때?

 ― 엄마가 쓴 글 책으로 엮어보려고. 

 ― 필요 없다고 다 버릴 거라며, 피이~

 ― 엄마 글 속에 동네 사람들이 다 보이더라고. 구둣가게 아저씨도 열쇠집 사장님도. 정육점 김 씨도 말이야. 이번 달부터 동네 모임도 나가보려고. 전에 김 씨가 나오라 하더라고. 그리고 학교에서 해야할 일도 생겼고.

 ― 학교?

 ― 학폭위로 결정된 것들이 가해자, 피해자의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리고 이해하는 구조가 아니라서. 반성을 끌어내지 못하는 처벌이랄까. 그래서 학교에 빈 자투리 공간을 꾸미는 중이야. 텃밭도 가꾸는데 심하게 체질에 맞달까. 암튼 ‘아Z트’제대로 꾸며보려고. 놀러 와. 초대할게.

 ― 아빠야말로 엄만데?

 ― 그래? 영광이지. 엄마 반만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면 말야.

 ― 엄마가 없으니깐 더 엄마처럼 살게 되는 것 같아. 엄마라면 이럴 때 이렇게 했겠지, 하는 마음이 자꾸 생겨. 

 ― 아빠도, 아빠도 그래. 이 벤치도 만들라 한 이유가 있었잖아. 뒤늦게 알아 그렇지. 

 ― 셋이 무인도에서 살겠다더니, 동네 모임 괜찮겠어?

 ― 행복해지려고. 사람들 속에서. 엄마는 없지만 우리 둘이 이렇게 봄밤 벤치에 앉아 이야기 나누는 것도 행복이니까. 찾자, 우리 둘이서 셋인 듯. 

 ― 뭐야, 어디 엄마 있어? 엄만 줄!

 ― 자식, 율아 아빠가 더 잘할게. 서툴 거야. 조금만 기다려줘. 노력할게. 저… 그리고 순간순간 율이 보고 싶을 때가 많아. 허허 허허허. 그나저나 나이 드나 봐. 자꾸 춤이 흘러.

 ― 춤? 침이지, 춤은 이렇게 엉덩이 흔드는 거고.

 ― 그래, 췸

 ― 아니 침이라니깐, 침!

 ― 그러니까 췸!

 ― 아니 흔드는 춤 말고 흘리는 침!

 ― 흔드는 춤이나 흘리는 췸이나 그게 그거지. 율아 너 너무 빡빡하다. 학교서 그리 배웠냐. 살살 해 살살.       엄마 말대로 나를 할퀴고 간 형용사는 내 안에서 나답게 피어나는 중이다. 보고 싶다, 그립다는 마음이 일렁이는 상황은 시시 때때 다르게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끄적이고 끄적이며, 무언지도 어딘지도 모르는 미지의 날들을 유영했다.      

  

  ― 율아, 교무실 담임 호출!

  ― 왜?

 백일장 날 시제는 ‘마음’이었고, 엄마를 떠나보내던 날 대학병원 복도에서 의사에게 들었던 그 말이 떠올랐다. 하여 시가 맞는지도 모르겠는 글을 시 인척 써냈다. 그렇게 써낸 시가 교내백일장 장원이 되었단다. 담임의 어깨는 교무실 천정에 닿을 듯 말 듯 철썩이더니, 탄산수 같은 청량한 미소를 팡팡 피워냈다.      


 ‘엄마 나 상 받는데. 장원이래. 글 쓰는 엄마가 신기했는데, 내가 쓰고 있어. 엄마 참 이상한 게, 시를 쓸 때는 내가 아닌 것만 같아. 시 쓰는 동안 엄마가 내게 머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무엇보다 신기한 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마음이 막 떠올라. 난 잘 모르던 마음인데 마치 그렇게 살았던 것만 같기도 하고. 그래도 엄마 나 여전히, 엄마 만지고 싶어. 그저 내 옆에 있는 것 같은 마음으로는 부족해. 안고 싶고. 부비부비 하고 싶어. 그게 제일 힘들어, 엄마. 울지 말라고? 응, 그럴게. 아빠도 나도 눈물 꼭지 잘 접고 지내. 엄마 마음 안 좋을까 봐. 아직도 엄마 잘 가도록 날려주라고 하는 사람들 가끔 있어. 특히 가깝지도 않은 먼 친척들이 그런다. 막 때리고 싶지만, 내가 참는 다 이거야. 무엇보다 그런 말 들으면 진짜 엄마랑 떨어진 것만 같아 외롭고 슬퍼지고 그래. 다가올 수 없는 영역의 거리가 느껴져서 더. 아주 가끔이지만, 엄마 따라가고 싶다는 마음도 들어. 그러지 말라고? 엄마 목소리 들린다. 엄마, 가슴이 꼭 귀가 된 것만 같아. 소리 아닌 것들의 목소리가 가슴에 남아. 그런 것들을 꺼내서 쓰면 조금 후련해져. 땀 뻘뻘 흘리면서 울고 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말야. 엄마 그래서 말인데 나 문학 전공할까 생각 중이야. 본격적으로 시공부 해보려고. 엄마 지금 덩실덩실 춤추지? 보인다, 우리 지아씨. 아… 오늘은 별이 많다. 나 어제 새벽에도 시 썼는데 엄마 들어 봐 줄래?'

    

비밀     


누워서 흘린 눈물은

비밀이다     


모르게 모르게 

가로로 짧게 흐르곤     


귓속으로

슥 사라진다     


귀는 뻔히 듣고도

모른 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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