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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연필 Oct 05. 2024

2부, 詩가 된 율의 가시 2

*     

 뒤늦게 냄새를 수습하겠다고 달려 들어가던 엄마가 푹 스러졌다. 찰나였다. 키다리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허물어진 엄마에게서 엄마가 쑥 빠져버린 것만 같았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려다, 119로 노선을 바꿨다. 엄마를 똑바로 눕혔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문을 열어두었고. 골목과 엄마 사이를 쉼 없이 오갔다. 시간이 제 자리에 멈춘 것 같았다. 바람마저도. 다다다닥 달려오는 발소리에 마당을 가로질러 골목으로 튀어 나갔다. 

 ― 여기요! 빨리요!

그리곤 먹통이 되었다. 정신이 들었을 땐 병원 복도였다. 저만치서 아빠는 간호사와 얘기 중이었다. 하루 사이 부쩍 수척해진 것도 같다. 얘기를 마친 아빠가 내게로 다가왔다. 

 ― 율아, 괜찮아? 놀랐지?

 ― 아빠,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엄마는?

 ― 엄마 지금 검사 중이야. 율이가 응급처치를 잘했어. 

 ― 구급대원이 율이 칭찬하더라. 가스 불 끄고. 문단속까지 오 초도 안 걸렸다고.

 그래, 그랬지. 고구마 탄 냄새. 엄마가 불을 끄러 들어가던 찰나 마당에 쓰러졌고. 난 119를 불렀고. 그리고 구급대원들이 마당으로 달려 들어왔던 것도 같다. 그리고는 도무지 기억나질 않았다. 가스 불도, 문단속도, 병원에 어떻게 왔는지조차 모두 기억에 없다. 

 ― 율아, 아빠가 집에 데려다줄게. 너 내일 학교도 가야 하고. 아침은 어쩌지?

 ― 내가 알아서 할게. 아빠 그냥 여기 있어. 엄마 옆에. 나 버스 타고 갈게.

 ― 너무 늦었어.

 ― 아냐, 나 갈 수 있어. 엄마 옆에 있어.

 ― 그럼, 도착해서 전화해.

 마음이 시린 건지 밤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엄마 아빠가 부부 동반 일정으로 집을 비우는 경우는 간혹 있었다. 그래봤자 길면 이틀이다. 그런 날이면 공간이 온통 내 차지인 게 좋았다. 평소에도 마음 가는 대로 지냈지만, 온전히 혼자인 경험은 또 달랐다. 내게 부여된 자유를 고즈넉하게 누리겠노라, 다짐하며 세팅하는 기분이 통쾌했다. 라디오 볼륨도 높이고, 침대 머리맡에 새우깡도 뜯어놓고. 밤의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훑겠노라, 다짐했지만 다짐이 무색해지는 경험. 번번이 버티지 못하고 곯아떨어졌으니 말이다. 하여 허무한 아침을 찌뿌드드하게 맞이하는 것까지. 어느 하나 완벽하지 않은 미완성 냄새 폴폴 인 것도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홀로 보내야 하는 밤도. 낯선 빈집도. 어제와 다른 공기로 가득한 집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 자유? 이런 자유는 성가실 뿐이다. 성가시고, 성가시니 다시 원상복구 해달라고. 원상복구 될 거라고. 내 불안마저 재워야 했다. 뒤척이는 사이 어찌어찌 밤이 가버렸다. 내가 캄캄한 먹통이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해가 떴다. 전화벨이 울렸다. 아빠다.

 ― 여보세요. 아빠. 엄마는?

 ― 율아, 엄마야!

 ― 엄마!

 와락 눈물이 났다. 걱정이 붙들고 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 것 같았다. 엄마라는 말이 이토록 슬픈 말일 줄이야. 

 ― 엄마 안 아파? 괜찮아?

 ― 엄마 멀쩡해! 

 ― 그럼, 오늘 퇴원해?

 ― 그러고 싶은데. 병원서 이것저것 검사받으라고 하잖아. 엄마 진짜 괜찮은데, 아빠가 고집부린다고 무섭게 눈 떴어. 너도 알지 그 표정? 병원비가 어디 한두 푼이야. 율이 밥은 어떡하고. 

 ―  아빠 말 들어. 나도 그게 좋을 것 같아. 얼마나 놀랐다고. 

 ―  알았어, 율아 밥은?

 ―  나, 애 아니야. 학교 끝나고 들를게. 

 ―  그래, 이따 봐 율! 학교 잘 가고!

 거짓말 같은 어제를 지나 엄마는 엄마로 돌아온 것 같았다. 해프닝이었다는 듯. 별일 아닌 말간 아침처럼. 수화기 너머 노랗게 물든 엄마가 만져졌다. 


*     

 ― 역시 집이 최고야. 우리 집, 내 침대. 히히. 

 우리 셋 중 언제나 엄마의 표현이 압도적이다. 일주일 만에 돌아온 엄마의 흥은 거의 폭주 수준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호화로운 엄마의 액션이 이토록 반가울 줄이야. 차갑게 식었던 집 구석구석 엄마가 다시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집에 와 마음이 놓여선지 오색 풍선이 된 엄마는 거실로 방으로 둥둥 떠다녔다. 

 ― 율아, 간호사들이 환자복 입었는데도 이쁘다고. 엄마랑 아빠랑 잘 어울린다고. 하하하. 딸이 고1이라니까, 아무도 안 믿는 거 있지. 

 ― 여보, 내가 꿈을 꿨는데. 꿈에 엄마 나무에 가 앉아있는 거야. 나 꿈에서도 엄마를 그리워했나 봐. 이렇게 엄마 나무에 기대앉았는데. 어디서 왔는지 새 한 마리 날아와서는 나무랑 내 주변을 뱅그르르 도는 거야. 그러더니 내 머리를 콕, 콕 연달아 두 번을 쪼고는 날아가는 거 있지. 내가 나문 줄 알았어 봐. 꿈에서 깼는데도 여기 새가 쪼고 간 곳을 만지면 아픈 것만 같아. 별일이지. 

 ― 새가 머리를? 

 ― 어, 머리를! 신기하지? 왜 당신 예전에 어머님 살아계실 때 아버지 산소 벌초 갔을 때 꿈 말고 말이야. 실제로 새가 날아왔다면서. 어머니 옆구리를 쪼고 날아갔다 하지 않았어?

 ― 그랬지. 어머니가 웬 새가 옆구리를 쪼고 가냐고. 희한하다 하셨지. 옆 산소에서 가만히 그걸 지켜보던 어르신이…….

 ― 어르신이? 어르신이 뭐랬는데? 

 아빤 입을 닫았다. 집에 돌아온 게 신난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계속 장난을 걸었다. 말없이 일어선 아빠는 목공 장갑을 챙겨 들었다.

 ― 아빠는 왜 대답을 안 해. 엄마가 저렇게 애타게 묻는데. 몇 마디 하는 게 그리 어렵나? 엄만 답답한 아빠가 어디가 좋아서 결혼한 건데. 진짜 분위기 못 맞춰!

 워낙 말이 없지만. 좋아 어쩌지 못하는 엄마 흥 하나 못 맞추나 싶어 부아가 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빠는 슬며시 마당으로 나갔다. 

 ― 율아, 아빠 대답했어.

 ― 하긴 뭘 해. 저것 봐. 화난 것도 아니요. 못 들은 것도 아니요. 저 애매한 태도를 보시라고요.

 ― 어, 이상하다. 엄만 들었는데, 안 들렸어? 

 ― 또, 또, 아빠 생각 지어 말하지. 

 ― 아니다, 아니다. 그런 거 아니다. 조율!     

 엄마는 때때로 내 엄마가 아닌 아빠 엄마인 것 같을 때가 있다. 동등한 남과 여가 아닌 언제나 아빠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아빠의 보호자처럼. 평등하다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좋아 그러는 것 같아. 그저 우리 집 문화려니 했다.      

 ― 조 빼고 말해. 율아 하고. 성 붙이는 거 싫어.

 ― 푸하하, 따뜻한 지지배. 알았어. 율아, 오래 살면 들려. 잘 알면 보이고. 우리 율이 마음도 들리고 보여. 엄마한테는 다. 

 ― 네, 어련하시겠어요. 

 ― 효식이랑 다미나 데려와. 한 달 안에 다미 생리대 줘야지.

 ― 엄마 오지랖 주사는 없데? 내 보기엔 엄마 병은 오지랖이야. 약도 없지, 암, 없고 말고.

 ― 시끄러, 그게 얼마나 좋은 건데. 세상에 오지랖 없으면 마음이 안 붙어요. 아가씨. 그러면 얼마나 삭막할 거야. 아유,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율아 우리도 마당 나가자. 아빠 뭐 만드는지 구경하자.

 ― 지안 씨는 참 속도 없지.    

 ― 아이, 가자. 율아 율아.     

 무색무취의 아빠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엄마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마당으로 나갔다. 늦여름 밤의 공기 사이로 가을 맛이 얼핏 얼핏 스쳤다. 가을이 오려나 보다며 엄마는 텃밭이며 마당 구석구석을 눈으로 매만졌다. 엄마의 책상은 얇고 기다랬다. 엄마 공책과 내 문제집을 나란히 두어도 좋을 품을 지녔다. 구석에 쪼그려 앉은 아빠는 여전히 입은 다문 체 목공 작업에 열중이었다.

 ― 여보, 이번에 만드는 건 뭐야?

 ― 작업할 때 노래 듣고 싶다며, 스피커 만들려고. 

 ― 목공으로 스피커도 만들어? 이야, 어마어마하다. 멜로디가 나무속을 막 돌아 나올 것만 같아. 노래에서 자작나무 향도 나려나? 자작자작 자작나무 향 멜로디. 어쩜 좋아. 생각만 해도 감미롭다. 당신 어쩜 그런 생각을 했니? 기특해라. 

 ― 아빠, 책상에 세울 수 있는 미니 사다리도 하나 만들어 줘.

 ― 사다리?

누구랄 것 없이 엄마 아빠 둘이 동시에 물었다.

 ― 눕히면 기찻길 되고 세우면 사다리 된다더라. 어떤 시에서 봤어. 엄마 할머니 그리워하니까. 할머니 보고 싶을 땐 세워놓고. 바다 보고 싶을 땐 바다 쪽으로 눕혀놓으면 되잖아. 꼭 몸이 가야 가는 건 아니잖아. 사다리 타고 다녀오는 상상만으로도 이미 다녀온 것 같은 기분 들 수 있고. 나도 답답할 땐 우리 여행 갔던 사진 꺼내서 싹 돌려보거든. 몸은 책상에 이렇게 있지만 마음만은 그곳에 다녀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그럼 한결 후련해져. 그러니까 엄마도 사다리 하나 쟁여 놔.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울지 말고. 

 ― 어쩌면 좋아, 여보 우리 율이 다 컸어. 바다 바다 노래하는 엄마 이제는 사다리 눕혀놓고 바다 사진 올려두면 되는 거지? 

 ― 어디서 읽었는데, 우울이 수용성이래. 그래 우울한 사람들이 물을 찾는 거래. 엄마 웃고 있어도 슬퍼 보일 때 있어. 그래서 자꾸 바다 찾는 것 같아.

 ― 나도 들은 것 같아. 우울이 수용성이라는 말. 참 신기해, 마음이라는 게. 마음의 소리가 쌓이고 쌓여 무언가 하고 싶다는 욕구로 피어나는 것도 그렇고. 율아, 여보 나 사다리 필요해. 꼭 만들어 줘! 

 ― 바다 바닷소리 자꾸 들으니, 물 보고 싶네.

 ― 한강 갈래? 

 ― 둘이 다녀와. 

이때다 싶은 엄마가 나랑 아빠를 엮으려고 안달이다.

 ― 고만 좀 싸우고. 난 혼자 조금 쉬어야겠으니. 나 편히 쉬도록 둘이 저녁도 해결하고 와.

 ― 컵라면!

 ― 콜

 ― 치킨두!

 ― 콜

 ― 닭발도!

 ― 콜

 ― 맥주도?

 ― 콜, 야야, 아니 아니, 그건 아니지!

 콜콜콜! 가지도 않을 엄마가 대신 대답하는 동안 아빠는 못장갑 벗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 맥주도 없이 무슨 맛으로 닭이랑 닭발을 먹나!

 ― 아유, 입으로 한강 다 갔다 오겠네. 어서 가!          


분명 퇴원했는데,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갔다.

퇴원이 아닌 퇴출이었다는 걸 그땐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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