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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로 Sep 16. 2024

결혼과 이혼사이 - 착한 사람

부부클리닉 상담일지

착한 사람이란 무엇일까? 


남에게 잘해주는 사람

배려와 양보가 몸에 익은 사람

누가 뭐라고 해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허허 웃는 사람

노약자를 보호하는 사람

싫은 소리 못하는 사람


이 중에 정답이 있을까? 


나는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모르겠는 그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이상하게도 성인이 되고

나이가 들면서 더 커져만 갔다. 

지난날의 이기적인 내가 너무 후회됐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나는 간단하게 말해 그냥 나댔다. 

낯가림의 ㄴ 도 없는 나는 어느 무리에서나 나댔다. 

여기저기 모든 친구들에게 말을 걸고 시끄럽게 떠들고 친한척하며

모두를 웃기고 재밌게 하고 싶었다. 

내 마음대로 떠들어 재끼고 나면 분위기는 좋고 친구들은 깔깔깔 신나게 웃었지만

몇 개월이 지나고 나면 내 주변에 남은 친구는 몇 없었다. 

내 문제를 깨닫는데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대학교 1학년때부터 나를 안 좋아하는 한 무리가 있었는데

눈치가 빠른 나는 그 친구들이 날 안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이유를 몰랐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이유는 나의 무례함이었다. 

나는 MT나 OT, 개강파티 같은 곳에서 항상 분위기를 주도하며 노는 걸 좋아했는데

그때 내가 분위기를 띄우려고 아무렇게나 뱉은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야야 나 아까 매점에서 인우 만났는데ㅋㅋㅋㅋ인우 오늘 입은 옷이 완전 무슨 오랑우탄 같지 않냨ㅋㅋㅋ

  개 똑같아 이 짤이랑 똑같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선후배 할거 없이 모두가 공감하며 빵 터져 웃었고 본인 또한 발끈하며 웃었지만 

이후 그 친구의 별명으로 자리 잡힌 오랑우탄은 졸업할 때까지 그 친구의 꼬리표가 되었다. 

나는 사랑받는 개그맨이 되고 싶었지만, 실제로는 돌려 까기로 상처를 주며 웃음을 사는

저급한 소재를 일삼는 개그맨일 뿐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면서 이런 식의 발언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자꾸 생각의 흐름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이 그런 것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 템포 멈춰 내가 말하는 이 말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 그 사람의 기분이 어떨지 생각했다. 

남자친구가 없는 자리에서 내 친구들에게 남자친구와 있었던 에피소드를 얘기할 때,

남자친구가 내가 이 얘기를 친구들한테 말한 걸 안다면 기분이 나쁠까? 생각했었고

남자친구에게 친구 얘기를 할 때도, 친구에게 친언니 얘기를 할 때도, 직장 동료에게 남자친구 얘기를 할 때도

참 적용할 곳이 많았다. 


가만 보니 내가 말이 많은데, 그 말의 대부분은 다 남의 얘기였다. 

남의 얘기일 수밖에 없었다. 


주말에 나 친구 만났었는데, 그 친구가~

나 며칠 전에 남자친구랑 싸웠는데 뭐로 싸웠냐면~

나 아침에 지하철에서 옆자리 앉은 사람이~

나 어제 언니옷 입고 나갔다가 집에 갔는데 언니가~


얼핏 보면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대화의 화법만 1인칭 일뿐

이야기의 주인공은 무조건 둘이다. 나와 그 누군가. 

이렇게 남의 얘기를 수도 없이 말하는데, 과연 그 당사자들이 이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안 나쁠까? 

그래서 최소한 험담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다짐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지켰냐고 나에게 스스로 물어본다면

응 지켰어.라는 확답은 못하겠다. 

그만큼 쉽지 않은 다짐이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의식하고 있다는 게 예전보다는 낫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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