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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로 Sep 23. 2024

결혼과 이혼사이 - 대상포진

부부클리닉 상담일지

나는 회사 생활이 즐거웠다. 

회사 다니는 게 스트레스받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내 옆자리 직원과 사이가 소원해지더니

곧 그녀는 나를 싫어하는 티를 팍팍 냈다. 


묘하게 나한테만 인사를 안 하는 유치한 행동으로 시작했던 그녀의 태도는

상사가 시켜서 행했던 나의 업무를 비난하고

곧 나의 업무 태도까지 공론화시키는 행태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내 회사생활을 엉망진창이 되었다. 


업무에 대한 성취감과 뿌듯함 대신

기싸움과 업무시비를 받아내는 날 선 감정과 스트레스가 나를 지배했다. 


회사 생활이 이러니 집에 가면 남편한테 하소연하기 바빴고

내 기분은 항상 다운되어 있고, 머리가 아프고 피곤했다. 


나는 그냥 졸렸다. 


상태가 안 좋으니 남편이 나를 좀 더 배려해 주고 

내 기분을 신경 써주고, 집안일을 좀 더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똑같았다. 


똑같이 집안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똑같이 핸드폰만 했다. 

똑같이 피곤해했다. 


그래서 나는 우울했다.


"여보.. 나 진짜 기분 안 좋아... 피곤해... 여보가 설거지 좀 해주면 안 돼?"

"...... 나도 피곤해......"


기분이 안 좋았지만 남편 하고까지 싸우고 싶지 않았다. 


우리 남편은 내가 웃으면 같이 웃고 내가 화내면 같이 화를 낸다. 

고로 나만 화를 안내면 된다. 

그래서 나는 애써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평소랑 똑같이 집안일을 하고 강아지를 돌봤다. 


5시 반 기상, 강아지 산책 30분. 

6시 출근 준비, 강아지 밥 주고 조금 놀아주기

7시 출근 

9시 업무 시작

6시 퇴근

7시 반 집 도착, 저녁준비

8시 반 저녁 먹고 치우기

9시 강아지 산책 한 시간

10시 강아지 저녁 주고 설거지, 집안 정리

11시 샤워+ 잘 준비

12시 취침 


나는 잠시도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을 시간이 없었고

남편은 피곤하다며 같이 가던 저녁산책도 나 혼자가게 했다. 


하루에 5시간 반, 적을 때는 5시간도 못 자며 이런 생활이 반복되었고

어느 주말 나는 감기에 걸렸다. 


감기에 걸린 내가 

"여보,, 나 추워서 산책 못하겠어.. 여보가 산책해 주면 안 돼?"라고 말하자

남편은 "나도 아파.. 추워"라고 똑같이 말했고 

또 결국은 강아지를 포기할 수 없는 내가 감기약 먹고 목도리 칭칭 감아 완전 무장하고 산책을 나갔다. 


감기랑 씨름한 지 일주일, 몸에 수포가 생겼다. 

병원에 가보니 대상포진이라고 한다. 

피곤하고 스트레스받으면 생기는 병이라고 했다.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요새 내 일상이 매우 피곤하고, 회사 때문에 매우 스트레스받는 게 맞지..

대상포진 걸렸다는 게 가족들에게 알려지자 돌아가며 전화가 왔다. 

언니, 엄마, 아빠 순으로 각자 나에게 전화를 걸어

괜찮냐고, 그거 아프다던데 많이 안 아프냐고, 강아지 산책 좀 그만하라고, 당장 쉬라고 언성을 높였다. 


나는 웃으며 "에이 별로 안 아파~ 약 먹고 있어~ 우리 강아지한테 왜 그래!!" 장난치며 안심시켰다. 


사실 나 회사는 너무 스트레스받고, 남편은 집안일도 안 도와주고,, 산책도 같이는커녕 대신도 안나 가줘..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말하면 억장이 무너질 가족들 생각에 거짓말로 둘러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저렇게 말한 걸 알면 우리 남편이 싫어하고 기분 나빠할 것 같았다. 

하지만 가족들의 위로 아닌 위로와 걱정을 듣고 나니 

으휴 내 걱정하는 건 가족들 뿐이네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갑자기 남편에 대한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평소에 컨디션 좋을 때는 군말 없이 다 하잖아..

내가 좀 안 좋고 아플 때는 여보가 해줄 수 없는 건가? 

아닌가 남편은 평소랑 똑같으니까.. 평소처럼 피곤하니까 전혀 못한다는 건가...

그럼 나는 아프나 피곤하나 그냥 무조건 다 내가 해야 하는 건가

이게 진짜 맞아? 우리 가족들은 다 내 걱정하는데 

왜 지금 나랑 진짜 같이 살고 있는 우리 남편은 내 걱정을 안 하는 거지?


그때부터 내 마음속의 불만의 소리가 자꾸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우리 남편은 내가 웃으면 같이 웃고 내가 화내면 같이 화를 낸다. 

그날부터 우리는 계속해서 싸웠다. 계속해서.


-


연애할 때는 결혼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인생이 결혼할 반려자를 찾는 긴 여정 같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 사람이 나랑 결혼할 사람인가? 탐색하고 헤어지고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되었다. 


나랑 결혼할 사람은 없었다. 


1년 정도 연애도 썸도 타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새로운 사람 만나기를 포기할 때쯤

그를 만났다. 


이 친구면 결혼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우리는 결혼했고 나는 인생의 큰 과제를 해결한 것처럼 뿌듯했다. 


이제 끝났다. 

다른 예쁜 동화 속 이야기처럼 결혼한 두 사람은 평생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로 당연히 이야기가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결혼은 끝이 아니다. 


그럼 끝은 무엇일까? 


죽음일까? 

아니면..

이혼일까? 


난 지금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 걸까 

내 흘러가는 시간들의 최종 도착지는 어디일까


무서웠다. 


도착지가 이혼일까 봐

도착지에 가까워져 있는지, 아주 멀리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끝이 이혼이라는 건 싫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 마치 늪에 빠진 듯 누군가에 떠밀려가는 것처럼

이혼이라는 곳에 도착한다면

내가 아무리 싫다고 해도 주변사람들은 이 또한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하겠지

다시 시작인 거겠지


어쩌면 나는 지금 결혼과 이혼 사이에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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