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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로 Oct 07. 2024

결혼과 이혼사이 - 남편의 어린 시절

부부클리닉 상담일지

남편 또한 그만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있었다. 


심하게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이던 아버지와, 너무나 희생적이면서도 단호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자유가 없었고, 남편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의견이 누구에게도 통하지 않음을 깨달았기에

자기 생각, 자기의 마음을 말하지 않는 게 익숙했다. 


아니 오히려 표현하는 법을 전혀 몰랐다. 해본 적이 없기에.


생각해 보면 연애할 때도 우리 남편은 나에게 편지를 써주고, 자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하고 

고맙다고 눈을 보며 얘기해 주는 것보다 

깜짝 선물을 하고, 하트가 그려진 이모티콘을 보내고, 갑자기 보러 오는 등 

직접적인 말보다는 간접적인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런 간접적인 행동들은 결혼하고 3년이 지나니 당연하게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자기 전에 카톡을 하지 않으니까 하트 이모티콘이 날아올 일이 없었고,

용돈생활을 하니 서프라이즈 선물도 준비할 수 없었고, 

매일 같이 있으니 갑자기 날 보러 와 놀라게 할 수도 없었다. 


이제는 남편이 할 수 있는 애정 표현 방법 중에서 하나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것이다. 


집안일 또한 그렇다. 


남편은 집에서 어머님께 집안일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 당연히 어머님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어머님은 지금도 항상 밖에서 일하다오면 얼마나 힘드냐고 가만히 있으라고 나를 꼼짝 못 하게 하신다. 

그런 따듯한 마음이 너무 감사해서 에이 괜찮아요~ 제가 수저라도 놓을게요!라고 하지만

어머님의 배려가 너무나도 익숙한 나의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 바닥에 누워 핸드폰을 한다. 


아버님도 아주버님도 각자의 방에서 식사 준비가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남편과 나의 집안일 능력치의 차이도 매우 크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집안일을 하며 자란 나

엄마가 모든 집안일을 하셨기에 집안일하는 걸 본 적도 없는 남편


이걸로도 신혼 때는 정말 많이 싸웠었는데..

어찌 되었던 상담을 하면서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 

결혼생활에서의 모습은 어린 나일지 어른의 나일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는데, 이는 남편도 똑같았다. 


우리 둘 다 어릴 때 기억하는 사건이나 에피소드를 연애 때부터 꾸준히 서로에게 

얘기하고 공유해 왔었지만, 그 사건을 기억하는 이유가 단순히 기억나서. 가 아니라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기에 기억하는지를 몰랐다. 


상담 때 선생님께 우리의 어린 시절을 털어놓듯 얘기하면 

선생님이 그때 어떤 느낌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때요? 아내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질문을 주시면서 우리에게 사건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셨다. 


남편이 어릴 때 집 앞에서 혼자 놀다가 놀이터 기구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때 엄마한테 얘기하면 혼날까 봐 집에서도 말 안 하고 안 아픈 척하다가

행동이 수상해서 엄마한테 걸렸다고 웃으면서 얘기했었다. 

예전에는 남편이 저 얘기를 하면 나는 맥락 상 자기는 고통에 강하다. 다쳐도 그러려니 한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이런 뉘앙스로 얘기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가 미래에 아기를 낳는다면, 그 아기가 자기를 닮는다면 저렇게 다쳐도 말 안 하고

도망 다닐 수도 있다고 키우기 힘들 거라고 웃으면서 얘기했었다. 


근데 선생님은 저 얘길 듣더니 그 어떤 때보다 슬픈 표정을 지으셨다. 


"남편분,, 어릴 때부터 아픈 것도 제대로 말 못 하고 지내셨나 봐요

심지어 아프다, 속상하다, 그런 감정이 아니라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라고 말하는 게

본인 감정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것처럼 보여요..

남편분 만약에 남편분이 아기를 낳았는데 그 애기가, 7살짜리 작은 아기가

학교에서 다쳐서 왔는데 남편분한테 말도 안 하고 혼자 낑낑대고 있으면 어떨 것 같아요..?"


그때 남편 동공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아.... 음......."


저는 괜찮았는데요? 전 딱히 상관없는데요??

이런 답변만 줄곧 하던 남편이 처음으로 대답을 못하고 흔들렸다. 


그리고 며칠 후 남편은 같이 강아지 산책을 시키며 얘기했다. 


"여보 내가 더 잘할게,, 나도 표현하려고 많이 노력할게.. 우리 행복하게 살자"


그 한마디가 어찌나 내 마음을 든든하게 했는지 모른다.

진짜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여보,, 나도 진짜 잘할게,, 우리 행복하자 진짜 우리 서로 사랑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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