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클리닉 상담일지
이후 우리는 '싸움'에 지지 않았다.
싸우면 몇 시간씩 싸움에 얽매여 화내고 울고 소리 지르지 않았다.
싸우면 우린 멈췄다. 잠깐만 이게 지금 의미가 있나? 단순무식하게 사과했다.
최대한 분위기를 풀고 공기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거짓말처럼 3시간씩 새벽까지 싸우다가 울다 지쳐 잠들던 날들이
10분 만에 으휴 됐어! 말장난하며 웃으며 다시 티브이나 보자~ 산책이나 가자~ 로 바뀌었다.
사람이 바뀐 게 아니다. 우리 생각도 바뀐 게 아니다.
그냥 깨달은 거다.
저 사람은 악의적으로 저렇게 행동한 게 아니다.
지금 나만 기분 나쁜 게 아니다, 저 사람도 진심으로 기분이 상했다.
이렇게 했어야지 하는 비난이 담긴 과거형 발언은 어차피 지금 통하지 않는다.
결론은 그냥 서로 단순하게 사과하는 것이다.
기분 상했어? 알았어 그건 내가 사과할게, 앞으론 그럼 이렇게 할게 괜찮아?
대신 나도 이런 점이 기분 상했어 여보도 앞으로 조심해 줘..
응 미안..
그래 밥이나 빨리 먹자
서로가 서로를 이해시키려 하고, 반박하고, 답답해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이해가 안 가더라도)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넘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일상생활에서, 특히나 연애할 때는 잘못한 사람 = 사과하는 사람, 잘못하지 않은 사람 = 사과받는 사람
구분이 아주 명확했다.
왜냐하면 싸우는 이유가 뻔했기 때문이다.
뭐 늦게까지 술을 먹어서 연락이 안 됐다거나, 약속을 어겼다거나
그런 연인들의 뻔한 싸움들 말이다.
그래서 항상 나는 싸움이 나면 내가 사과하는 사람이 아닌 네가 사과하는 사람이야.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네가 잘못한 거니까.
여기에 엄청 매달렸다. "네가 왜 기분이 나쁘냐고!! 네가 잘못한 거라니까? "
남편이 좀 제발 순순히 인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나가는 사람 100명한테 물어봐 네가 잘못했다고 말하지, 제발 인정 좀 해!"
하지만 결혼은 그렇지 않았다.
만약에 부스러기가 많은 과자를 소파에서 먹은 경우, 사람마다 행동은 다 다르다.
A - 과자를 다 먹고 과자봉지를 소파 옆에 내려둔다.
B - 과자를 다 먹고 과자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C - 과자를 다 먹고 소파를 털고 봉지는 쓰레기통에 버린다.
D - 과자를 다 먹고 소파를 털어 청소기를 돌리고 봉지는 쓰레기통에 버린다.
E - 애초에 부스러기가 많은 과자를 소파에서 먹지 않는다.
여러분은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
A랑 B가 결혼한다면 B는 A에게 말할 것이다.
-쓰레기는 좀 쓰레기통에 버려.
C는 B에게 말할 것이다.
-과자 먹고 나면 소파 좀 털어.
D는 C에게 말할 것이다.
-소파 털고 나서 청소기 좀 돌려.
E는 D에게 말할 것이다.
-애초에 그런 과자를 왜 소파에서 먹어??
여기에 정답이 있나? 잘못한 사람이 있나?
E가 정답이고 A~D가 다 잘못한 사람이라 사과해야 하나?
아니면 C가 정답이고 D, E는 너무 과한 사람인가?
정답이 없다. 부부는 이런 걸로 싸운다.
"내가 몇 번을 말해, 변기 뚜껑 닫으라고 "
"내가 몇 번을 말해, 설거지하고 물기 닦으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 우산 말려서 접으라고"
정말 일상생활 작은 것조차 사람마다 처리 방식이 다르다.
그리고 정답은 없다. 그래서 싸운다.
또한 부부 두 명은 언제라도 다른 상황에서는 서로의 상황이 역전될 수 있다.
1의 상황에서 남편이 A 아내가 B였다면,
2의 상황에서는 아내가 A 남편이 C 일수도 있다.
그러면 남편은 화가 날 것이다.
"나한테 과자봉지로 맨날 잔소리하더니 자기는 이런 것도 안 하면서"
이 얘기를 들으면 아내도 화가 날 것이다.
"너는 과자봉지 하나 제대로 안 버리면서 나한테 이런 걸로 뭐라고 하는 거야?"
사람은 다 자기 기준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지금 싸우고 있는 부부가 있다? 그들은 부부라서 싸우는 게 아니다.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싸우는 거다.
부모님, 친형제, 동성친구 그 누구였어도 같이 살면 싸울 수밖에 없다.
세상에 모든 상황에서 나와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은 절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