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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A Oct 30. 2022

너의 줄 맞춤을 응원해

자폐를 품고 살아가는 방법 (11화)

얼마 전 유튜브에서 자폐에 관한 1분 남짓의 영상 하나를 만났다. 이름 하야, ‘자폐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자폐스펙트럼 장애 (ASD, Autism Spectrum Disorder)을 겪고 있는 아동이 실제로 두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그들의 시점에서 담아낸 풍경이었다. 일반인에게는 들릴까 말까 싶을 정도로 소소한 동전 부딪는 소리가 ASD아동의 귓가에는 엄청나게 큰 ‘댕그랑댕그랑’으로 번져나갔다. 쇼핑몰 곳곳의 희미한 불빛은 거대한 네온사인처럼 휘황찬란하게 번쩍거렸고, 흔히 마주하는 색깔과 모양, 옷에 그려진 각종 문양들은 오버스러울 정도로 큼직하고 선명하게 부각되어 잠깐 스치듯 보기에도 피곤한 자극이었다. 아니, 자폐를 갖고 있는 아동이 실제로 이렇게 세상을 보고 있다고? 그것도 매일매일! 사소한 자극을 몇 백 배는 큼지막하게 느끼고 정보가 과다 흡수되다 보니 그 누구라도 초예민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 자폐 협회 (The national autistic society)에서 제작 배포한 이 영상은 짧았지만 볼 때마다 충격이었다. 내 아이가 자폐스펙트럼 징후를 가지고 있다면, 그게 결국에는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결론 나기를 바랐을 뿐, 그게 아이를 왜 힘들게 할 것인지, 살아가는 데 구체적으로 어떤 불편함을 주게 될 것인지, 사실상 ‘안’ 고민해봤던 거다. 쿨하게 일찍이 ‘자폐 징후’를 인정하고 조기 중재하자고 나섰음에도, 아이의 센터 스케줄 짜는 데나 혈안이 되어있었지, 아이가 그 비싼 수업들을 받고 있음에도 종종 왜 심각한 텐트럼을 보이는 건지, 그 빈도와 강도가 왜 갈수록 세지기만 하는 건지 각종 질문들에 대한 뿌리 깊은 대답을 찾을 준비가 안 돼 있었던 셈이다. ‘내 아이의 눈에는 세상이 저렇게 비칠 수도 있겠구나. 정말 많이 힘들겠구나.’ 아이의 시선에서 자폐를 바라봐야겠다고 결심한 첫 단추였다. 아이가 자폐 진단을 받으면 엄마 아빠만 힘든 줄 알았다. 아이도 힘든 거였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공포를 왕창 느끼고 있는 거였다.


내 아이의 눈에는
세상이 저렇게 비칠 수도 있겠구나
정말 많이 힘들겠구나


극 속에 등장하는 자폐인들은 어떨까.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는 비뚤배뚤 하게 붙여져 있는 포스트잇을 따박따박 떼어내 행과 열을 맞춰 반듯하게 정리한다. “우영우, 꼭 그렇게 해야 해?” 영우의 특이한 행동을 꼬집으며 툴툴거렸던 봄날의 햇살 친구. 그러자 그 옆에서 우영우는 조곤조곤 대답을 읊조린다. “응, 그러지 않으면 불편해.” 우영우의 말과 행동이 귀여워서 ‘피식’ 웃으며 지나쳤던 장면이었지만 돌이켜보자면 영우는 ‘불편했다’. 나란히 정렬돼 있지 않은 자극들을 자신만의 규칙으로 줄을 세우고 틀에 맞추려는 행동들, 참 유별난 강박이라고만 생각했지,  ‘얼마나 힘들고 불편하게 느껴지면 저렇게 행동할까’라고 물음표를 품지 못했던 날들이었다. 동그란 김밥이 자신만의 규칙에 맞춰 나란히 자리 잡고 있어야 비로소 우영우는 평화를 찾는다. 너저분하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서류들은 영우를 ‘힘들게’ 하는 자극이다. 그들의 시선에선 세상에 힘들고 불편한 자극이 너무 많다.


아이가 화장대 위에 있던 스킨로션 샘플과 각종 공병들을 나란히 세우기 시작했을 때, 아차 싶었더랬다. 아이의 두 돌 무렵, ‘기어코 얘가 줄을 세우는구나’ 싶어서 뒤통수가 서늘해지던 느낌. 흐트러진 배열을 정리하고 나름의 기준으로 정렬하는 것이 자폐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라고 어렴풋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기묘한 행동을 믿고 싶지 않아서 아이 옆에서 괜히 심술을 부렸던 적도 있음을 고백한다. “줄 맞추지 마. 이렇게 있는 게 더 예쁜데?” 아이가 정렬하고 있는 자동차를 고약하게 흐트러뜨리고 줄을 세울 기회조차 주고 싶지 않아서 미니카 여러 개를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올려두기도 했다. 자폐를 연상케 하는 행동이 싫어서 일단 막고 싶었던 초보 엄마의 서툰 대처.


“자동차 줄 세우지 마” 자폐의 대표적 조짐이라 들었던 행동들이 나오면서 막연히 외면하고만 싶었던 마음 불쑥.


얼마나 힘들고 불편하게 느껴지면 저럴까
물음표를 품지 못했던 날들


다시 우영우로 돌아와서… 우영우의 친구 서수연은 친구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을 한번 흘겼지만 이내 영우의 행동을 도와준다. 비뚤배뚤 하게 붙여져 있는 접착 메모지를 함께 줄 맞춰 나란히 정렬해주는 것. 영우가 ‘불편하다’고 하니 그 거슬리는 자극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자 애를 쓴 거다. 전지적 자폐 시점. 자폐스펙트럼 위에 선 자에게는 세상 불편한 자극, 힘들게 하는 상황이 많다는 사실을 발 벗고 나서 이해해 준 것. 아이가 느낄 자극의 ‘불편함’보다는 자폐의 징후 자체부터 먼저 ‘불편해’ 했던 내가 새삼 부끄러웠다. 나는 아이의 기준에서 견디기 힘든 자극을 덜어주려 함께 해준 적이 있던가. 나는 아이의 자동차를 함께 줄 맞춰 줄 자신이 있는가. 그 준비가 되어 있는가.


TMI (Too Much Information). 국제 자폐 협회가 배포한 이 영상 속 아동은 마지막 순간 이렇게 말한다. 자기에게는 너무나 과한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고. 실로 1분만 지내더라도 너무나 많은 자극 정보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채 흡수되고 있다면, 그 순간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면 자폐아동들은 ‘괴롭고 또 외로울 것이다’. 엄마 아빠 동생과 다른 정보 흡수가 괴로울 것이고, 나에게만 TMI 자극이 쏟아지니 ‘유별난’ 스스로가 외롭게 느껴질 테지. 그러니까 자신만의 방식으로 흐트러짐 없이 ‘줄 맞추기’를 고수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행과 열을 똑바르게 놓아야만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인 건 아닐지. 아들의 뇌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정렬을 택하는 건 힘든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나름의 똑똑한 방식, 스트레스 해소법, 불안 낮추기 전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느낄 자극의 ‘불편함’보다는
자폐의 징후 먼저 ‘불편해’ 했던 내가
새삼 부끄러웠다


오늘은 아이의 줄 맞춤을 응원해주기로 한다. 함께해주기로 한다. 과한 정보의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아이의 선택이니까. 자폐스펙트럼이 의심되는 아이의 대표적 증상이라고 해서 그저 외면하고만 싶었던 마음은 잠시 접어두는 걸로. 자폐 아이의 맘들에게 정신적 지주라는 소아정신과 천근아 교수님의 책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이는 언제나 옳다”고. 아이가 줄을 세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약 정보처리가 어려운 뇌의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게 바로 이 행동이라면 난 아이의 유별난 몸짓을 응원할 의무가 있다. 어렵고 불편한 상황을 함께 해주는 우영우의 ‘봄날의 햇살’ 친구처럼 봄날의 햇살 닮은 부모가 되고 싶다고 가슴에 또박또박 적어본다. 그렇게 나는 오늘 아이의 줄 맞춤을 응원하기로 한다. 세상 복잡한 자극들에 대처하려 애쓰는 너만의 강박적인 정렬 습관, 그 애씀의 손짓을 응원한다.


네가 어떤 방식으로 자동차를 줄 세우든, 높이높이 탑을 쌓든, 복잡한 자극들에 대처하려 애쓰는 너만의 방식을 응원해
“아이는 얼마나 불편할까, 얼마나 어려우면 오죽 이럴까” 자폐아이를 이해하는 첫 단추, 첫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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