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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레미 작가 Mar 26. 2022

엄마를 가르치는 아이

학습기로 연산공부를 하던 아이가 눈동자에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머금고 제 앞에 쭈뼛거려요. 


오랜만에 홈트 영상을 켜놓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둔한 몸을 이리저리 흔들거리던 저는 '또 눈물이야' 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힐끗 쳐다봅니다.

"엄마, 또 학습기가 멈췄어"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학습기가 멈출 때 마다 와서 징징거리는 모습에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죠.


"그럼 기다렸다가 다시 하면 되잖아"

"기다려도 작동이 안돼"

"그럼 껏다 다시 키면 되잖아?"

"그럼 앞에 푼 문제 다시 해야된단 말이야"

"그거 다시 푸는게 아까워?"

운동할 마음이 싹 사라져, 신경질 적으로 리모콘을 들고 티비를 꺼버려요.

"넌, 왜 안 될때 마다 쪼르르 달려와 엄마한테 화풀이 하는거야? 그럼 오늘은 연산 문제는 풀지 말라는 말이 듣고 싶은거야?"


여기서 눈물을 흘리면, 더 혼난다는 것을 아는 듯 아이는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며 울음을 꾹 참아요. 벌떡 일어나 와이파이 설정을 다시 하고 거실로 학습기를 들고 나왔더니 문제는 생각보다 빨리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쉽게 될 것을..)

그런데, 어쩌죠. 제 마음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끝나버렸어요. 아이는 나한테 화풀이를 한 적도 없고, 연산을 풀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제 생각으로 북치고 장구치고 떠들면서 아이를 혼내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자 부끄럽고 후회가 들더라구요. 


부모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기분파는 언제나 저였어요. 그래서 아이가 헷갈렸는지도 모르죠. 기분이 좋을 때는 "그럼 오늘은 연산 하지 말고 내일해" 라고 말하고 기분이 나쁠 때는 "넌 맨날 연산 문제는 안 풀려고 하냐?" 라고 신경질 내죠.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만큼 아이에게 대하는 태도도 시시각각 변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아야 하는데, 아이에게 대하는 태도는 언제나 저의 기분이 반영되어 있었던 거죠. 


아이의 순수함에 배운다. 


아이를 키우면서 서서히 제 민낯이 드러나는 기분이 들어요. 때로는 이런 스스로에게 화가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죠. 화를 쉽게 내기도 하고 줏대가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내 말이 옳다고 우기는 모습을 보면 과연 나는 어른다운 부모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그런 부족한 엄마인 제 말을 그렇게나 잘 따라주고, 수용해주고, 잘못은 사과할 줄 알며, 지나간 일은 다시 문제삼지 않고 훌훌 털어내고 나를 향해 씽긋 웃어줄줄 아는 멋진 아이더라구요. 

그런 아이의 순수함을 통해 살아가는데 필요한 양식들을 어른이 되어 다시 배운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아이는 내가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도움을 주러 온 천사가 아닐까 싶어요. 


방법을 배우다. 


화부터 내려하지 말고, 대화를 통해 방법을 찾는거야

좋지 않은 지난 감정은 잊어버리고 웃어보는 거야

한번 말한 것은 지킬 줄 알아야 하는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법을 아는 거야. 

엄마를 가르치는 아이. 


실컷 화를 내고 방에 들어와서는 감정을 추스리고 있는데, 아이는 거실에서 뚱땅뚱땅 학습기를 두드리며 언제 혼이 났냐는 듯 공부를 하고 있어요. 간간히 들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니 그제야 눈이 녹듯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아이를 통해 매 순간 사랑을 배우고, 겸손을 깨닫고, 감정을 알아가는 것 같아요. 아이를 통해 제 어린시절의 상처를 보기도 하고, 나약한 마음을 알게되기도 하고요. 

 젓가락 제대로 쥐는법,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법, 옷 예쁘게 입는 법 가르치는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으시대고 있었나 싶어요. 정작 저는 그 보다 더한 사랑을 배우고 있는데 말이에요. 


어쩌면, 신은 아이를 통해,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기회를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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