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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이름을 다정히

독서일기 『더 셜리 클럽』 (박서련, 민음사)

by 서정아 Dec 22. 2024

오랜만에 메일함을 뒤적여보았다. 받은 메일 중 폴더를 따로 만들어 보관해둔 오래된 편지들이 모니터에 펼쳐졌다. 대략 내가 이메일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2000년도부터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사용이 활성화되기 전인 2010년도 즈음까지의 편지들이었다. 지금은 업무와 관련된 문서, 원고청탁서, 각종 고지서나 스팸 메일이 전부이지만 그때만 해도 이메일에는 제법 긴 사연과 전하고 싶은 마음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아버지가 내게 보낸 메일 중에는 ‘비행기를 타는 요령’이라는 제목의 편지도 있었다. 나는 당시 멀리 살고 있던 아버지를 보러 가기 위해 비행기표를 예매했었는데, 비행기를 생전 처음 타게 된 나를 위해 아버지는 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장문의 메일을 작성해 보내주었던 것이다. “정아야, 이번감기가 무척이나 독하구나. 갑자기 감기가 와서 밤새 앓고 오늘 병원에 들렀단다. 건강 조심하고. 비행기를 처음 타니까 절차를 알려줄게.”로 시작하던 그 이메일 속에는 공항의 구조, 탑승권 발권 방법, 보안 검색, 게이트 찾기와 탑승, 기내의 서비스와 시설 이용 등의 내용이 아버지만의 언어로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 메일의 마지막은 이랬다. “우리 정아가 처음 비행기를 타보는구나. 즐거운 마음으로 올라오기 바란다. 아빠가.”


아버지의 편지를 시작으로, 친구들의 편지, 선생님들의 편지, 그리고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그 당시 마음을 나누었던 이들의 편지를 줄줄이 읽다가 어쩐지 뭉클해졌다. 메일함 속에는 그 시절 내가 받았던 따뜻한 마음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실은 내게 조건 없는 따뜻함을 건네준 사람들이 훨씬 많았는데 나는 어쩌다 그런 걸 모두 잊고, 나를 차갑게 대한 사람들과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만 오래 기억하게 되었나 싶었다.


『더 셜리 클럽』의 ‘셜리’는 워킹 홀리데이로 호주에 가 있다. 그곳에서 그녀는 ‘셜리’라는 이름을 가진 할머니들과 만나면서 작은 선의와 연대의 힘을 얻고, 자신이 겪은 상처와 차별과 폭력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와 사랑을 찾게 된다. 우리가 쉽게 잊거나 지나쳐버리는 것들, 그러나 좋은 것들. 실은 우리 모두에게도 서로의 이름을 다정히 불러주는 클럽이 있지 않을까?


* 2023년 6월 부산 연제구청 소식지에 수록했던 글을 일부 수정하여 게재합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책 속에서


- 여러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은 그 문화적 배경에서보다 그들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 안에서 정체성을 찾게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안에서 우리가 된다. 네가 찾고 있는 사람에게 네가 주는 사랑이 그 사람을 완성해 줄 거다. (1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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