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꼭지, 시도와 실패: 지능의 사생활/지능의 역설
방구석 서평단, 서평으로 글쓰기 1년 보고서
호곤 배서연
3. 시도와 실패: 지능의 사생활/지능의 역설(The intelligence paradox)_18
우리가 아는 지능의 역설을 파헤치는 <지능의 사생활>
머리가 똑똑한 게 좋은 것 아니었나, 내 지능은 어디쯤일까?
'지능의 사생활(The intelligence paradox)' 은 후에 '지능의 역설'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다. ‘지능의 사생활'은 웅진 지식하우스에서 출판했고, '지능의 역설'이라는 제목은 연필 출판사에서 나왔다. 책의 내용은 비슷하지만 '감사의 말'이 ‘지능의 사생활’에는 뒷부분에 수록된 반면, '지능의 역설'이라는 책에서는 맨 앞부분으로 편집 순서가 변경되었다.
지능의 사생활은 '연애에서 식성까지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는 IQ의 맨얼굴'이라는 부제를 달고 '웅진 지식하우스'에서 나왔다. 나는 도서관에서 '지능의 역설'이라는 책을 먼저 구해 읽었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앞으로 빼둔 '감사의 말'이 너무 어려워 본론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책을 덮었다. 그 뒤로 처음 나왔다는 '지능의 사생활'을 구해 읽게 되었다. 한 번 읽어봐서인지 더욱 쉽게 읽혔다. 개인적으로 노란색을 좋아해 처음에 나온 '지능의 사생활'로 끝까지 읽게 되었다. 오늘은 '지능의 사생활'이라는 책으로 리뷰를 한다.
지능과 지능이 높은 사람들을 보는 당신의 관점에 어떤 변화를 원한다면 추천하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과 달리 읽고 난 뒤에 사람을 보는 새로운 눈이 생겼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한 가지 주제는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 흔히 부자연스러운 일을 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의식적으로는 지금이 2021년이고 자신이 서울에 사는 증권 중개인, 수원에 사는 화가, 용인에 사는 주부, 또는 부산에 사는 학생임을 알 테지만, 당신의 뇌는 그것을 모른다. 당신의 뇌는 은연중에 무의식적으로, 당신이 아직도 1만 년 전의 아프리카 사바나에 살던 수렵채집인이라고 생각한다. 텔레비전이나 심리학 실험이나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이 거의 없었던 시절을 말이다. '지능이 높은 개인일수록 진화가 우리에게 설계해 놓지 않은 부자연스러운 선호와 가치관을 갖고 지지할 가능성이 더 높다.' 여기에 이 역설의 본질이 놓여 있다. 부자연스러우면서 생물학적으로 흔히 바보 같아 보이는 선호와 가치관을 갖는다. 그렇다. 지능이 높은 개인일수록 더 바보 같으며, 바보 같은 일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 믿을 수 있겠는가. 이 책을 끝까지 읽는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진화심리학의 입장에서 살펴보는 지능에 대한 책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요즘 진화심리학에 대한 책이 재미있어지고 있다. 인간은 역시 동물이라는 데서 시작하는 진화심리학은 '모든 사람은 동물이라는 어쩔 수 없는 동일함이 있고 약간의 차이는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지능의 사생활에서는 그 차이를 '지능'으로 보고 있다. 지능이 높은 사람들의 두 가지 특징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지능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높은 지능을 숨기지 않고 알리는 신호로 터무니없이 복잡한 생각들을 지지하기도 한다. 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 봐. 나는 남아도는 지능을 가지고 있어서, 상식이 제공하는 명백하고 단순한 답을 택할 필요가 없어. 만약 그 답이 맞을지라도 선택하지 않아. 내가 불합리하지만 이렇게 복잡한 생각을 만들 수 있는 건 내가 가진 높은 지능 덕분이라고!"라는 속마음이다.
둘째, 많은 정치적 진보주의자들 중 할리우드와 학계의 진보주의자들은 부자이다. 그들은 사회복지 수준을 높이는 진보주의 정책으로부터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이득을 얻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보라고, 난 아주 부자라서 나하고 아무 관련 없는 다른 사람들한테 내 돈을 마구마구 쓸 수가 있다고!" 하지만 하나가 옳다고 해서 다른 하나가 반드시 틀린 건 아니다. 둘 다 옳고, 부분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임을 잊지 말자.
지능의 사생활의 저자인 '가나자와 사토시(Kanazawa Satoshi)는 런던대학교 정치 경제대학 경영학과 부교수이자 버크벡칼리지 심리학과의 명예연구원이기도 하다. 지능의 사생활 (The intelligence paradox)이라는 책에서 그는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지능을 탐구한 새로운 시도로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국 종합사회조사 GSS, 미국 청소년 건강 연구 Add Health, 영국 어린이 발달 연구 NCDS 등의 대규모 실증 사례를 바탕으로 한 이 연구는 지능을 문제 해결 능력 같은 학습의 측면으로만 바라보던 기존의 시각을 넘어, 취향과 습관 등 일상생활과 지능의 관계를 설명한 최초의 시도라 할 수 있다. 역자 김영선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를 수료한 뒤 현재 출판 기획 및 번역일을 하고 있다.
진화적으로 '자연스러운 것'과 '부자연스러운 것'
순수하게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때 자연스러운 것이란 "진화가 그 생물에게 설계해놓은 것"을 뜻한다. 부자연스러운 것이란 "진화가 그 생물에게 설계해놓지 않은 것"을 의미할 뿐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생물은 인간뿐이다. 우리가 말하는 자연스럽다는 건 '좋은 것', '가치 있는 것', '바람직한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으며, 부자연스럽다는 것 역시 그 반대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 포인트다. 그래서 이 책을 관통하는 한 가지 주제는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 흔히 우리가 아는 부자연스러운 일을 한다는 것이다.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 왜 부자연스러운 일을 할까. 궁금해졌다. 저자는 왜 그런지 이유가 궁금해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일을 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지능이 높은 사람이라니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 함께 읽어보자.
사바나 원칙에 서서 드러나는 진화심리학의 핵심 통찰은 우리가 여전히 우리 조상들이 살던 아프리카 사바나에 살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뇌가 새로운 환경에서도 그대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의식적으로는 지금이 21세기이고 자신이 서울에 사는 증권 중개인, 수원에 사는 화가, 제주도에 사는 주부, 또는 부산에 사는 학생임을 알 테지만, 당신의 뇌는 그걸 모른다. 당신의 뇌는 무의식 속에서 당신이 여전히 텔레비전이나 심리학 실험이나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던, 1만 년 전의 아프리카 사바나에 살던 수렵채집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중요한 진화심리학의 관찰 결과가 우리의 현대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의미심장하고 광범위하다. 우리의 뇌는 무의식적으로 1만 년 전의 아프리카 사바나에 살던 수렵채집인이라고 생각한다니, 뇌는 진화하지 않는 걸까. TV를 보면서 생생하게 움직이는 연예인을 보고 친구라고 생각한다는 우리의 뇌, 우리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 같다.
지능의 역설
지능이 높은 개인들은 지능이 낮은 개인들보다 진화적으로 새로운 선호와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지지할 가능성이 더 높다. 높은 지능은 우리 조상들의 환경에는 존재하지 않아서 우리 조상들은 가지지 않았던 현대 환경에 아주 느리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일반 지능은 진화적으로 익숙한 선호와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지지하는 데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우리 조상들의 환경에도 존재해서 우리 조상들도 가졌던 환경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능이 높은 개인일수록 진화가 우리에게 설계해 놓지 않은 부자연스러운 선호와 가치관을 갖고 지지할 가능성이 더 높다.' 여기에서 지능의 역설에서 말하는 본질을 살필 수 있다. 지능이 높은 개인일수록 자신의 생물학적 설계를 거슬러 뇌가 가진 진화적 제약과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 많다. 덕분에 부자연스러우면서 생물학적으로는 한참 바보 같아 보이는 개인의 선호와 가치관을 갖는다. 지능이 높은 개인일수록 더 바보 같고, 바보 같은 일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
지능이 높다는 것은 자신의 생물학적 설계를 거슬러 가는 일을 즐긴다는 말과 같다. 남아도는 지능이 있어 진화적으로 익숙한 일은 거부한다는 것이다. 진화적으로 익숙한 일의 예는 바로 번식이다. 그래서 지능이 높은 사람들일수록 아이를 적게 갖거나 갖지 않는다고 한다. 인류의 지능이 너무 높아지면 인류는 종말 하게 될까? 아니면 지나친 비약일까? 나의 지능은 인류의 번식을 위해 지나치게 높게 설계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높은 지능은 공작의 꽁지깃과 같다?
장애의 주요한 예는 공작새의 멋들어진 꽁지깃이다. 용인 에버랜드 옆 호암미술관 마당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작새의 꽁지깃을 기억할 것이다. 1982년 4월 개관한 호암미술관은 대한민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에버랜드로 562번 길 38에 있다. 호암미술관은 삼성그룹의 창업자인 이병철이 수집한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곳에 왜 공작새가 노닐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길고 복잡하며 화려하게 장식된 공작 꽁지깃은 적응상 아무런 가치도 없다. 공작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명백하고 유용한 용도가 공작 꽁지깃에는 없다. 하지만 볼거리는 제공한다.
사실 공작 꽁지깃은 공작의 생존 가능성에 해를 끼칠 뿐이다. 공작 꽁지깃은 비용만 많이 들고 이점은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바로 요점이다. 수컷 공작은 암컷 공작에게 이렇게 어필한다. "봐, 나는 유전자적으로 아주 적합한 엉덩이에 이 거대한 꽁지깃을 매달고도 아주 빨리 달려. 거추장스러운 꽁지깃을 달고도 나를 잡아먹으려는 포식자를 피할 수 있다고! 다른 친구들은 그렇게 적합하지 못한 유전자를 갖고 있어. 그들은 꼬리가 짧아야만 포식자를 피할 수가 있다고. 만일 꼬리의 꽁지깃이 내 것만큼이나 길면, 그들은 포식자들을 피해 갈 수 없을 걸! 그럼 이제 넌 누구의 유전자를 너의 자식한테 전해주고 싶어?"
그리고 실제로 암컷 공작들은 생물학적으로 유지 비용이 많이 들고 생존 가능성을 크게 해칠 수 있는, 더 길고 복잡하며 대칭적인 꽁지깃을 가진 수컷들과의 짝짓기를 선호한다. 암컷은 자신의 수컷 새끼 역시 길고 복잡한 꽁지깃을 자랑스럽게 내보여 그 세대 암컷들의 마음을 끌 수 있도록 꽁지깃이 긴 수컷을 선호한다.
'한 팔을 등 뒤로 묶고 싸우기'라는 표현에서도 동일한 생각이 포착된다고 한다. 한 팔을 등 뒤로 묶은 채로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전사를 생각해보자. 싸울 때 두 손이 모두 필요한 사람보다 당연히 강하고 유전자적으로 적합해야 한다. 지하비와 다른 생물학자들은 공작의 긴 꽁지깃처럼 소용없어 보이는 특성들이 짝이 될 가능성이 있는 상대에게 자신의 유전자적 적합성을 알리는 기능이 있을 거라고 말한다. 자연선택이 아닌 성선택을 받는 이런 특성은 숨기지 않은 장애로서 진화했으리라고 제안한다. 이런 숨기지 않은 장애는 그 유전자를 보유한 개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지 않기 때문에 자연선택을 받지는 않지만, 번식 성공률을 높이기 때문에 성선택을 받는다.
장애 원리를 활용해 설명해 보겠다. 첫째, 지능이 높은 개인은 높은 지능을 숨기지 않고 알리는 신호로서 터무니없이 복잡한 생각들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제안해 보자. 상식은 진화적으로 익숙해 모든 인간이 상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쉬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상식이 제공하는 '단순화된' 해결책이 대부분 정확한데도 그것을 거부한다. 대신 불필요하게 복잡한 생각을 선택하는데 지능을 사용한다. 단지 그들의 지능이 그런 복잡한 생각을 품을 수 있게 해 준다는 이유만으로, 심지어 그것이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알맞지 않거나 쓸모없을 때도 말이다.
이 부분은 '욕망의 진화'라는 책에서 다루는 공작새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예뻐 보이지만 번식이나 다른 데서는 아무 쓸데없는 공작새의 꽁지 깃털을 예로 들어 이야기한다. 하지만 장애 원리를 적용하면 이렇게 큰 꽁지깃을 가지고 있으면서 적에게도 달아날 수 있고, 평상시에는 잘 달린다면, 그 유전자를 나의 새끼에게도 전해주고 싶다면? 그런 일이 지능이 높은 이들이 많은 학계에서, 정치적 진보주의자와 부자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이런 장애 원리는 그 유전자를 보유한 개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데는 도움을 주지 않아 자연선택을 받기는 어렵다. 그러나 번식에 성공할 확률을 높이기 때문에 다른 성으로부터 성선택을 받아 유전되어 간다. 지능이 그런 것이라면? '에이, 그런 게 지능이라면 나는 안 가질래.' 하고 생각한 나는 지능이 낮은 걸까? 이렇게 지능은 유달리 특별한 것이 아니라 키, 몸무게 등과 같이 우리가 지닌 한 특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에필로그: 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이제 저자는 지능과 지능이 높은 사람들을 보는 당신의 관점이 이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과는 아주 달라져 있기를 바라고 있다.
번식에 성공하는 것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 진화는 모든 인간이 번식을 하도록, 당신이 그 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설계해 놓았다. 그게 우리 인생의 의미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자식을 갖지 않는 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가장 큰 범죄인데, 바로 그 이유로 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 자연을 거스르는 가장 큰 범죄를 저지르는 경향이 어떻게 인간 가치의 궁극적인 기준일 수 있을까?
하고 책의 에필로그는 끝을 맺는다. 지능이 높다는 것은 진화에 역행하는 것인데 왜 우리는 지능이 높은 사람을 좋아할까.
'지능의 사생활'은 취향과 습관을 결정짓고 운명을 좌우할 새로운 열쇠가 바로 지능이라고 말하는 책이다. 인간의 지능은 앞으로 진화할까 퇴보할까. 이 책은 진화심리학과 지능 연구가 크로스 오버되어 IQ에 대한 통념을 뒤집고 사람들이 무엇을 왜 원하는지 새로운 기준으로 설명한다. 진화는 왜 모든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바로 번식을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진화라는 것은 성선택을 통해 번식에 유리하면서도 인류의 발전을 위해 변화를 요구하는 우리의 모순된 동물스러운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번식도 해야 하고 발전도 해야 하는 동물적인 인간에게 있어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바로 지능이 아닐까. 지능이 높은 사람에게 끌리지만 우리는 여전히 지능이 높은 사람이 하는 결정보다는 진화적인 관습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많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절대 자연스럽지 않은 결과를 도출해내는 우리의 지능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계속 나타날까.
<함께 읽으면 좋은 글>
https://blog.naver.com/zest/222404044224
다 읽었다고 좋아했는데, 정리하다 보니 머릿속이 다시 안개로 뿌옇게 되는 느낌이다. 좀 걸으면서 머릿속의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려야겠다.
지식의 사생활(지식의 역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