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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곤 별다방 Apr 29. 2024

서울의 대학에 모두 떨어지고 붙은 지방대 안경광학과

ep.02. 할머니의 안경사(眼鏡史), Spectacles history

#2. 2040년 4월 12일 오후 7시/ 서울 강남의 한적한 안경원/ 프랑스 안경 안


손님(김은정)

얼마나 걸릴까요?


주인장

시력이 많이 나쁘지 않아서

바로 돋보기를 만들 수 있겠어요.

30분 기다리면 바로 완성되는데

기다리시겠어요,

내일 찾으러 오시겠어요?


김은정

30분 정도면 여기서 기다릴게요.


주인장

저희 집은 안경렌즈 종류가

한 종류뿐이라서 뿔테를 골라오시면

안경렌즈까지 3만 원이고,

다른 금속테를 고르시면

가격이 조금 더 올라가요.

테를 골라보시겠어요?


김은정

그냥 뿔테로 할게요.


주인장

(맞은편 안경 진열장을 가리키며)

그럼 저기에서 마음에

드시는 테를 골라보세요.


(주인장은 조립실 안으로 들어간다. 칸칸이 안경렌즈가 가득한 서랍을 뒤져 손님의 도수에 맞는 렌즈를 꺼내온다.)


김은정

(진열된 안경테를 요리조리 관찰하며 10개가량의 뿔테를 거울 앞에서 써보더니 안경테 2개를 골라 주인장 앞으로 온다.)

이 2개 중에 어떤 게

어울리는지

봐주시겠어요?

(검은 뿔테를 쓰고 주인장 앞으로 온다)


주인장

(유심히 테와 손님을 번갈아 보며 둘의 조화를 살핀다)

다른 건 어떤 거 고르셨어요?


김은정

(검은 뿔테를 벗고 투명과 갈색이 그라데이션 된 테를 쓰고 주인장을 바라본다. )

이거예요.


주인장

둘 다 잘 어울리는데요.

검은 테는 차분한 느낌이고,

투명한 테는 발랄한 느낌이 들어요.

어떤 느낌을 원하세요?


김은정

저는 차분한 게 좋겠어요.


주인장

그럼 검은 뿔테로 하세요.

이걸로 만들어 드릴게요.


김은정

렌즈는 블루라이트 차단되는

걸로 해주세요.


주인장

네, 알겠습니다.

사실 저희는 기본으로

블루라이트 차단 렌즈로 해드려요.

요즘 휴대폰 다들 갖고

다니셔서 필수예요.


김은정

감사합니다.

(소파에 등을 기대어 앉으며)

근데 질문이 있어요.

할머니는 언제부터 안경을 하셨어요?


주인장

나? 나요.

안경일은 20대 때부터 했지요.

96학번이에요.

지방 전문대학 안경광학과를 나왔어요.

사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가고 싶었는데,

지방에 있는 고등학교라

서울대 갈 정도로 뛰어난 실력이 아니면

담임 선생님이 지방에 있는

국립대하고 지방대만 원서를

써준다는 거예요.

얘기하다 보면 길어져요.

잠깐만요.

안에서 손님 안경 좀 만들고 올게요.

기다려주세요.


김은정

(양팔로 소파를 짚고 엉덩이를 소파 깊숙이 더 넣으며)

네네, 천천히 하셔도 돼요.


주인장

(조립실로 들어가 손님의 안경렌즈에 인점을 찍고, 취형기에 안경테를 넣어 렌즈모양을 자동옥습기-patternless edger-에 입력한다. 자동옥습기에 오른쪽 안경렌즈를 넣고 윙~ 돌아가는 기계음을 확인한 후 자동옥습기가 돌아가는 시간 동안 다시 수다를 떨러 매장으로 나온다. 안경테가 진열된 매대에 서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고3 수능 보고 저 혼자 서점에 가서

대학입시책을 뒤져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수능성적만 맞으면

여기저기 원서를 냈다가

다 떨어지고 엄마가 알음알음

알아온 전망 좋다는 과,

안경광학과에 들어가게 됐어요.


김은정

(소파에 앉아있다가 주인장의 말소리가 들리자 안경테가 진열된 매대에 있는 주인장을 쳐다보며)

아, 그렇군요.

그럼 서울에 있는 안경광학과로

가신 거예요?


주인장

아니요,

그렇게 공부를 잘 한 건 아니어서

지방에 있는 전문대학

안경광학과를 나왔지요.

입학해서 우리 선배들 얘기 들어보니까

원래 안경은 금은방 옆에서

사람들이 알음알음 배워서 했대요.

(윙~ 계속 돌아가던 자동옥습기 기계음이 멈추는 소리가 들린다.)

오른쪽 안경알이 모두 완성됐네요.

왼쪽 안경알 좀 기계에 바꿔 넣고 올게요.


김은정

(웃으며 입을 가리고 말한다.)

제가 자꾸 말 시켜서 죄송해요.


주인장

아뇨, 옛날 생각도 나고,

다시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저도 얘기하면서 기분이 좋아져요.

금방 올게요.


김은정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주인장

(조립실의 자동옥습기에서 테모양에 가깝게 작아진 오른쪽 알을 꺼내고 버튼을 몇 번 조작한다. 준비해 두었던 손바닥만 한 왼쪽 알을 자동옥습기에 넣는다. 윙~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작아진 오른쪽 안경렌즈를 수동옥습기-hade edger-에 살짝 대어 날카로운 가장자리를 매끄럽게 다듬는다. 안경테에 오른쪽 안경렌즈를 맞춰 넣고 다시 손님이 있는 매장으로 돌아온다.)

한국에서는 처음에

안경이 특별한 교육기관 없이

사람들 어깨너머로 배워서 했대요.

그랬던 안경업계에

1987년 11월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안경사 면허 제도가 생겼어요.

그게 벌써 53년 전 일이네요.

전문대학 이상의 학교에서

안경광학분야의 학과를 졸업하고

안경사 국가고시를 합격한 사람들에게

나라에서 안경사 면허증을 줬어요.

그래서 저도 1998년 대학을 졸업할 무렵

안경사 국가고시를 봤고

그 해에 안경사 면허증을 땄지요.


김은정

아, 안경사도 국가고시를 보는군요.

간호사나 의사 면허시험 같네요.


주인장

맞아요. 안경사도 국가에서

면허를 받은 사람만 할 수 있어요.

모든 국민의 건강,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보건복지부 관할이에요.

매년 안경사 면허 합격률이

65%~75% 정도 대라서

그때 동기들 중에서도 여럿 떨어졌어요.

다행히 다음 해에 재시험 봐서

다시 붙더라고요.

저는 운 좋게 한 번에 붙었어요.


김은정

공부 잘하셨네요.


주인장

그건 아니고요.

제가 고등학교 때

이과(자연계)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떨어진 친구들은 문과였거든요.

사실 20대에 대학을 졸업하고

안경사로 취업해 보니

주말도 없이 일해야 하고,

근무시간도 하루 12시간으로 길어서

젊은 시절에는

안경일이 하기 싫었어요.

한 달에 4번, 평일에만 쉬었으니 말 다했죠.

그렇게 일하고 초보때

첫 월급이 30만 원이었어요.


김은정

정말이에요?


주인장

도제식이라 안경사면허가 있어도

실무에서 배워야 할게 더 많거든요.

사장입장에서도 초짜는

안경사 면허증만 있지

써먹을 수가 없으니

이제는 조금 이해가 돼요.


(윙~ 기계음이 멈췄다.)


주인장

안경알이 모두 완성되었네요.

금방 테하고 안경렌즈 조립해서

가져올게요. 잠시만요.

(이번에는 조립실의 자동옥습기에서 테모양에 가깝게 작아진 왼쪽 알을 꺼낸다. 안경테에 남은 왼쪽 안경렌즈를 맞춰 넣기 전에, 수동옥습기-hade edger-에 작아진 왼쪽 안경렌즈 테두리를 살짝 대어 가장자리를 매끄럽게 다듬는 작업을 반복한다. 만족스러운 상태가 되자 안경테에 왼쪽 안경렌즈를 마저 넣고 다시 손님이 있는 매장으로 돌아온다.)


김은정

네네


(주인장은 조립실에 들어가서 자동옥습기에서 완성된 왼쪽 안경렌즈를 꺼내어 안경테의 왼쪽에 맞추어 넣는다. 안경테 균형과 좌우 피팅을 확인하고 초음파세척기에 안경을 담근 다음 안경수건으로 안경테를 꼼꼼하게 닦는다. 손님이 기다리는 매장으로 완성된 돋보기안경을 가져간다.)


주인장

손님, 안경이 완성되었습니다.

여기서 한 번 써보실게요.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김은정

(앉아있던 소파에서 일어나 진열대 앞에 있는 거울 옆 주인장 앞으로 다가가 얼굴을 내민다.)


주인장

(안경을 머리 위에서부터 내려 안경다리가 손님의 귀에 잘 안착되도록 살포시 씌워본다.)

그래서 젊을 때는 주 5일 근무하는

다른 일도 해보다가

결국 나이 들어 안경으로 돌아왔어요.


(고개를 돌려 손님의 귀 양쪽을 잘 살피며 안경테가 잘 맞는지 확인한다.)


주인장

귀는 편하세요?


김은정

네, 괜찮아요.


주인장

(새로 만들어진 안경을 담을 안경케이스와 안경닦이를 챙기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세월이 지나니까 그렇게 싫던

안경일이 편하더라고요.

퇴직하고 이 자리로 온 지 이제 3년 됐어요.

20대 젊은 시절 배운 거라 그런지

금방 손에 익더라고요.


김은정

저는 지나가다 여기를 보기만 했어요.

원래부터 안경이 있던 자리 아녔어요?


주인장

맞아요. 오래된 할아버지가

이 안경원을 운영하셨는데

은퇴를 결심하시고 고맙게도

저에게 넘겨주셨어요.

제가 직장 생활하면서

여기서 가끔 아르바이트를 했었거든요.


김은정

아, 그러셨구나.

안경 잘 쓸게요.


주인장

네, 3만 원입니다.


김은정

삼성페이로 할게요.


주인장

네, 여기에 대시면 돼요.

결제되셨어요. 감사합니다.

영수증 드릴까요?


김은정


주인장

영수증 여기 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김은정

네, 감사합니다.

(완성된 돋보기안경을 들고 매장 문을 나선다)


요즘 돋보기안경




 https://blog.naver.com/yunsoo6525/222493083606


https://blog.naver.com/lens114/10014105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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