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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곤 별다방 May 06. 2024

대학병원에서 3년 묵은 귀지 빼기

ep03. 코로나 검사비용 포함 11만 원짜리 귀지 빼기

때는 2021년 12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둘째가 태어난 2020년 1월부터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더니 2년이 되어가도록 한창 코로나 팬데믹이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다. 12월 31일 금요일 밤에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밤 10시에 졸리다는 23개월 아이를 데리고 자려고 안방에 아이와 함께 누웠다. 베개를 베고 눕더니 아이는 귀가 아프다고 했다. 아직 23개월 아기라 문장이 아닌 단어만 구사하던 시기였다.


하루종일 잘 놀고 이제 자려고 베개를 베고 누웠던 아이가 "쥐(귀)~"라고 말하며 일어나 앉아 자신의 오른쪽 귀를 가리켰다. 귀가 아프다는 뜻이었다. 열을 재어보니 정상이었다. 엄마가 누운 오른쪽으로 돌아눕지도 못하고 아프다는 귀를 엄마가 보려고 하는데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새벽 내내 뒤척이며 두세 번 깨고, 안아주면 잠들고를 반복했다.


결국에 엄마는 앉아서 귀가 아프다는 아이를 양손에 안고, 새벽까지 등을 벽에 기대고 앉아서 재웠다. 새벽 6시에 아이의 열을 재니 38도, 발열이 시작되었다. 12월 31일의 다음 날은 신정이자 토요일이었다. 자주 다니던 소아과, 이비인후과 모두 휴무라서 2022년 1월 1일 새벽 6시부터 준비해 아주대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잠든 남편에게 첫째를 맡기고 둘째 아이를 차에 태워 출발하니 오전 7시,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2022년 1월 1일 새벽, 아주대학교 응급실 입구 야외 대기실


2022년 1월 1일 겨울의 썰렁한 야외 대기실에는 장례식을 치르려는데 무슨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전화통화를 하며 대기하던 남자 어른 2명만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귀가 아프다는 아이의 증상을 말하고 응급실 진료를 받으려고 하니 환자의 폐사진을 찍어야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치료비보다 더 비싼 11만 원을 추가해 환자의 폐사진을 찍고, 판독결과를 기다려 코로나 증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 진료가 가능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날이구나 싶었다.


2022년 1월 1일 오전 7시 대학병원 야외 대기실, 밤새 아파서 지친 23개월 아기, 우리 집 둘째


밤새 아픈 아들은 기운 없이 축 쳐져있었다. 다행히 폐검사 결과 정상소견으로 응급실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드디어 만난 응급실 의사는 아이가 아프다는 오른쪽 귀를 살펴봤다. 오른쪽 귀에 엄청 큰 귀지가 있다고 했다. 간호사는 엄마가 안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잡아주었다. 응급실 의사는 살짝 고민하다가 긴 가위로 아이의 3년 묵은 듯한 큰 귀지를 빼주었다. 진료결과는 오른쪽 귀에 중이염이 발생했다. 3일 치 항생제 처방을 받아왔다. 휴일이 지나 평일에 소아과나 이비인후과를 방문해 약처방을 더 받으라고 했다.


진료 후 커다랗고 딱딱해 보이는 귀지를 빼낸 아이는 편안해졌는지 엄마품에서 잠이 들었다. 조심스레 귀지를 빼내어 아이를 편안하게 해 준 응급실 여의사가 고마웠다. 약처방을 받고 귀가하려는데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가서 소독을 해야 한다고 20분을 병원에서 더 머물다 왔다. 23개월이 된 둘째 아이에게 생애 첫 중이염이 발생한 날이었다.


둘째를 밤새 괴롭힌, 딱딱하고 큰 23개월 묵은 귀지


1월 1일 아주대 응급실에서 3일 치 항생제 처방만 받고, 1월 4일 화요일 집 근처 이비인후과에서 항생제와 콧물이 흐르게 하는 약을 처방받았으나 항생제 외에 다른 약은 아이 입에 많이 쓴 지 모두 뱉어냈다. 며칠 뒤 다시 병원에 다녀오니 중이염이 낫지 않아 10일 치 약을 더 받아왔다.


1월 11일 아이들이 많이 가는 다른 가정의학과에 갔더니, 아팠던 오른쪽 중이염은 낫고 반대쪽에 중이염이 생겼다고 했다. 남은 약을 모두 먹으라 하고 별다른 처방을 주지 않았다.


그 뒤로 다 나았는지 확인차 1월 14일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다른 이비인후과에 갔다. 중이염이 심해졌단다. 귀에 튜브를 꽂아야 할 수도 있고 약은 더 이상 없다고 했다. 심하면 청력손상이 될 수 있으니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소견서를 작성해 줬다.


다시 아주대 이비인후과를 예약해 다녀왔다. 추천해 준 아주대병원 태교수는 진료대기가 2달 이상으로 길었다. 오래 두면 병을 키울 것 같아 빨리 진료가 가능한 다른 의사로 예약을 잡았다. 1월 25일 아주대병원 이비인후과 장교수에게 예약을 잡고 진료를 받았더니 양쪽 귀가 깨끗해져서 별다른 수술과 시술이 필요 없다는 말을 해줬다. 대신 감기에 걸리면 중이염이 없는지까지 확인하라고 했다.


의사는 중이염이 자주 생기는 아이에게 잠자기 전에 콧물을 빼주고, 평소 샤워를 자주 해서 콧속을 촉촉하게 해 주고, 평소에는 옷을 따뜻하게 입히라는 말을 남겼다.

2022년 1월 1일, 응급실에서 크고 딱딱한 귀지를 빼고 편안해진 아들은 진료실 문을 나서자 곧 잠이 들었다.


이 경험 때문인지 아이는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귀를 잘 보여주지 않는다. 원래 귀가 예민한 건지도 모르겠다. 둘째 아이는 태어나서 23개월 동안 귀지를 파려고 하면 굉장히 싫어했다. 면봉도, 귀지파는 도구도 무엇이든 귀에 넣는 것을 무진장 싫어했고, 지금도 싫어한다. 샤워하고 둘째의 귀를 한 번 청소하려고 하면 굉장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울고불고 눈물콧물에 그보다 더 슬픈 신파극이 없다.


그래도 엄마는 응급실까지 가지는 않으려고 한 달에 한 번은 울며불며 매달리더라도 아이의 귀지를 파낸다. 커다랗고 딱딱한 노란색 귀지가 나오면 속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파낸 귀지를 보여주면 아이도 이제 그 기분을 아는지 울먹거리며 "엄마, 귀 파주세요."하고 엄마 옆으로 온다. 제 딴에는 큰 결심을 한 것이다. 아직도 울며불며 한 번에 해내지 왜 자꾸 파냐고 울고 불며 귀를 후비지만, 가끔씩 귀청소를 하고 있다. 그 뒤로 52개월이 되는 지금까지 응급실에 다시 가서 커다란 귀지를 파는 일은 없었다.


요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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