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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곤 별다방 Apr 22. 2024

올리브영에 진열된 과자봉지 뜯어내기

ep01. 어른의 잘못: 큰 과자를 작은 공간에 구겨 넣은 직원

Look at what he is doing.

#barbarism #야만 #미개 #만행




‘만행’이라는 뜻의 사전적 의미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만행은 '야만스러운 행위'가 바로 '만행'이다. 두 번째 만행은 불교사전에 나오는 의미로 '여러 곳으로 두루 돌아다니면서 닦는 온갖 수행'을 말한다. 두 번째 '만행'은 이 얼마나 멋진 일일까.


여기서 말하는 만행은 꼭 두 번째 의미라고 말하고 싶다. 2020년에 태어난 우리 아들이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온갖 수행을 하다가 발생된 일들을 글로 담아보기로 했다. 글로 적으면서 그 당시 분노했던 엄마의 감정이 조금 차분해지고 아들을 다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아이의 변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이의 부족한 점보다 아이가 갖고 있는 것을 먼저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튜브 '최민준의 아들 TV']


유튜브 '최민준의 아들 TV'의 도움을 받아 우리 아들의 만행을 낱낱이 고발하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사전적 의미의 '만행'이 불교 사전적 의미의 '만행'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살펴보는 행운을 얻어가는 것이다.




첫째인 딸이 몇 달 전 학원에서 상장과 함께 받아온 5천 원짜리 문화상품권 2장을 쓰겠다고 했다. 온라인에서 바꾸면 수수료가 5% 정도 떼고 사용이 가능했다. 오프라인에서 사용하면 100%를 쓸 수 있는 금액이라 쓸 수 있는 곳을 찾아봤다. 집 근처 올리브영에서 문화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단다. 그래 올리브영을 가보자. 딸은 좋아하는 건조 사과칩을 사겠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생과 미취학 아동이라 올리브영에서 화장품을 사기보다는 과자나 음료수를 사는데 더 익숙하다. 킥보드를 타고 간 아이들에게 매장에 먼저 들어가서 사고 싶은 물품 1개씩을 고르라고 했다. 엄마는 입구에 킥보드를 나란히 정리해 두고 들어가다가 입구에 진열된 화장품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었다.


첫째가 엄마를 다급하게 찾는 모습을 보았다.


”튼튼아, 엄마 여기 있어! “


“엄마, 씽씽이가 사고 쳤어. 이리 와봐 “


첫째가 내 손을 잡고 둘째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아들 씽씽이 옆에는 파란색 팝콘 과자봉지 하나가 입구 한쪽이 찢어진 채로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그 안에서 나왔을 법한 팝콘알 10개 정도가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아들이 그 옆에 서있다. 아이가 먹고 싶은 과자봉지를 확 낚아챈 듯한 느낌이었다. 딸아이의 목소리를 들은 직원 2명이 곧 내 뒤를 따라왔다. 내가 떨어진 팝콘알을 모아 직원에게 주니 받아 들고, 과자봉지를 든 다른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이 과자는 먼저 카운터로 가져갈게요."


직원은 둘 다 카운터로 갔고, 옆에 서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왜 그랬어?"


"과자 꺼냈는데"


나는 보호자가 미취학 아동 옆에 없었던 터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아이를 보호할 의무를 하지 못했으니 사과칩을 계산할 때 찢어진 팝콘 과자봉지를 내밀던 직원에게 새 걸로 달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첫째의 사과칩과 둘째가 찢어놓은 팝콘 과자봉지를 결제하고 왔다. 심지어 2+1으로 산 사과칩 3개의 가격보다도 비싼 오레오 팝콘 과자봉지를 결제했다.


문화상품권 액수만큼만 사려고 했는데 결국 더 비싼 둘째의 찢어진 과자까지 결제하고, 문화상품권 1만 원을 초과해 3700원이나 추가로 결제하고 왔다. 사건당시 미취학 아동 옆에 보호자로 있지 못했던 엄마의 입장이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왔다. 애꿎은 아들만 눈으로 흘기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들에게 말했다.


"물건은 힘으로 당기지 마, 한 번 당겼는데 안되면 엄마를 불러야지. 그렇게 세게 당기면 어떡해"


아들은 듣고만 있었다. 5살 아이가 아직 그 상황을 조리 있게 설명하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어쩌면 엄마 가방에 들어있는 팝콘봉지만 생각한 아들은 목적달성이 되었으니 아무렴 어때라는 생각이었을까.


엄마는 또래보다 두 살 정도는 더 커 보이는 이 아들의 주체 못 하는 힘을 앞으로 어찌 감당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했다.


우리 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아들에게 등짝 스매싱을 시전 했다.


"그걸 마음대로 뜯어내면 어떡해! 다시는 힘으로 당기지 마. 알았어?"


집에 잘 도착했는데 등짝을 한 대 맞은 아들은 현관에서 신발도 벗지 못하고 울었다. 아빠는 당황했다.


"왜 우리 아들을 때리고 그래?"


"이 녀석이 올리브영에서 과자를 마구 당겨서 찢어졌잖아. 그래서 살 생각도 없었는데 결국 사가지고 왔지 뭐야. 누나 거 사기로 한 거보다 더 비싼 걸 말이야. 결국 힘으로 지가 원하는 걸 해버렸잖아. 그래서 더 속상해."


"에구구, 우리 아들 그랬쪄? 이 과자가 먹고 싶었쪄? 그래그래 먹어"


엄마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더욱 당황하고, 기분이 나빴다.


아들은 눈물을 그치고 손을 씻고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팝콘 먹어도 돼?"


눈을 흘기며 엄마는 답한다.


"그래, 먹어"




어느새 잠잘 시간이 되었다. 첫째와 자기 전에 종알종알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오후에 올리브영에서 있었던 일을 꺼내 이야기했다. 옆에서 듣던 둘째는 피곤했는지 엄마 옆에서 뒹굴뒹굴 거리더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


오늘 오후 첫째는 사과칩이 있던 진열장을 살피고 있는데, 옆에 있던 둘째가 갑자기 과자를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엄마, 있잖아, 씽씽이가 과자봉지 찢을 때 내가 옆에서 다른 과자 고르고 있었거든. 그런데 씽씽이가 과자봉지를 손가락으로 살짝 당긴 건데 그게 찢어지고 떨어진 거야."


"씽씽이가 힘으로 확 당겼던 거 아니었어?"


"아니야, 그냥 손가락 두 개로 잡아당겼는데 그렇게 되더라고?"


"너 그때 옆에 있었어?"


"응"


"근데, 아까 왜 얘기 안 했어? 옆에 있었다고 말이야. 바닥에 떨어진 거만 보고 엄마 부른 줄 알았잖아. 엄마는 아무도 없이 씽씽이 혼자 있는데, 사고 난 줄 알고 직원한테 아무 말도 못 한 거잖아. 네가 옆에 있었다고 말했으면 엄마도 너한테 더 물어봤을 텐데, 다음에 그런 일 있으면 바로 옆에 있었다고 설명해 줘. 알았지?"


어쩐지, 아들이 과자봉지 떨어뜨린 장소에 같은 이름의 다른 과자봉지를 살펴보았는데 엄청 구겨져 있었다. 작은 과자들을 진열할 만한 사이즈에 2배나 되는 부피 큰 과자를 구겨서 넣어 진열했던 것이다. ‘다 구겨지게 무슨 진열을 이렇게 했어.’라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둘째는 구겨진 과자를 당겨서 꺼내려다가 비닐이 위아래 진열장에 부딪혀 쓰윽 찢어진 것이었다.


갑자기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은 그냥 맛있어 보인 과자봉지를 잡아당겨보았던 건데, 과자봉지가 찢어지고 결국 떨어져서 엄마에게 혼나고, 집에 가서는 등짝까지 맞고, 눈물의 팝콘을 먹었던 것이 아닌가. 아들아 미안하다.


무려 7900원짜리 149g 오레오팝콘, 작은 건 아들 손에 쥐어진 비닐


구겨져서 옆으로 누워 있는 과자봉지가 7900원이다.




https://youtu.be/3Av0N-ZTIGQ?si=-HXuEproxpkzIy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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