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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곤 별다방 Apr 29. 2024

의사 안경에 주사방울 튕기기

ep02. 병원에서 예방접종 맞다가 두 번째 주사 거부하기

오랜만에 둘째 아이의 예방접종을 맞을 때가 되었다. 기간이 넉넉하다고 하루이틀 미루다 가는 접종시기를 놓칠 것 같아 매번 예방접종기간이 시작되면 바로 맞히는 편이다. 빠르면 24개월에 시작하는 일본뇌염 예방접종을 25개월쯤 맞고 나니 2년가량은 전처럼 몇 달 간격으로 예방접종 맞을 일이 없었다. 그사이 매년 독감주사만 한 번씩 맞다가 아이가 만 4세가 되면 시작해야 할 예방접종이 3개나 된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가 더 어릴 적 예방접종을 맞을 때 병원에 가기 일주일 전부터 하루 전까지 아이에게 얘기해 줬다.


"더 많이 아프지 말라고 미리 주사를 맞는 거야. 조금 따끔하지만 금방 괜찮아져. 내일 주사 맞으러 가자."


어릴 때 심혈을 기울여서인지 아이는 예방 접종 후에 크게 딱 한 번 울고는 병원 문을 나서기 전 울음이 끝날 정도로 예방주사를 잘 맞는 편이었다.


아이는 지난가을 독감예방접종도 문제없이 맞았다. 문제는 주사가 1대가 아니라 2대를 맞을 때였다. 이번에는 엄마가 느슨해졌다. 하루 전에 예방접종 맞으러 가자고 얘기하고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병원에 가보니 이 연령대에 맞을 주사가 3대라서 오늘 예방접종 주사 2대를 한 번에 맞고, 겨울에 독감접종할 때 독감과 남은 예방접종을 합쳐 2대를 맞으면 된다고 간호사가 말했다. 간호사가 둘 다 생백신이라 오늘은 MMR과 수두예방접종을 맞는다고 설명했다.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때 우리 아들은 오늘 예방주사를 1대만 맞을 거라고 얘기했어야 했다. 예방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다음 주에 한 번 더 오는 것보다 오늘 예방접종 2대를 한 번에 해결하는 게 시간관리에도 좋아 보였다. 간호사의 말대로 알겠다고 하고 아이에게 오늘 주사는 2대라고 말해줬다.


병원 대기실에서 오늘 예방접종은 2대라고 얘기해 주는 순간, 아이는 다시 오늘 주사는 1대만 맞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이를 안고 살살 달래 보는데 대기실 맞은편에 보이는 카운터에 간호사는 벌써 우리 아이의 예방접종 주사 2대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오늘은 엄마도 의사진료가 필요했다. 지난주에 피검사했던 콜레스테롤 수치를 오늘 확인하고 약처방을 바꿀지 그대로 유지할지 정하기로 해서 엄마도 접수를 했다. 이때 엄마는 아이 접종을 먼저 하고 나서 엄마 진료상담을 봐달라고 했어야 했다. 드디어 엄마와 아이의 순서가 되었다. 의사는 먼저 엄마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확인하고 잘 유지되고 있으니 약을 그대로 유지하면 되겠다고 설명했다.


아이는 엄마 옆에서 기다리다가 드디어 본인의 예방접종 순서가 되어 진료의자에 앉을 차례가 되었다. 가끔 혼자서도 잘 앉는 진료의자에 아이는 엄마와 함께 앉아 접종하겠다고 했다. 엄마는 아이를 안고 진료의자에 앉았다. 간호사의 안내대로 의사가 주사를 놓기 좋게 아이의 왼팔이 의사 앞에 가도록 엄마는 의사를 마주 보고 앉았다. 혹시나 아이가 움직여 의사의 다리를 걷어차지 않도록 아이의 다리는 모두 엄마의 오른쪽에 모아 무릎에 앉혔다. 아이의 왼팔이 의사의 앞에 있었다.


의사는 처음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엄마에게 아이의 주사 맞는 팔의 반대손을 잡고 있으라고 했다. 이때 의사는 아이의 힘이 셀 수도 있으니 주사 맞는 반대편 손을 꼭 잡으라고 보충설명을 했어야 했다. 아이는 왼팔에 맞은 첫 예방접종 주사 한 대는 따끔했지만 잘 맞았다. 문제는 두 번째 예방접종이었다.


간호사가 두 번째 예방접종을 맞기 위해 아이의 팔을 반대편으로 바꾸라고 했다. 아이의 다리를 엄마의 왼쪽으로 옮기고, 오른팔을 의사에게 내어주어야 할 아이가 주사 맞기 싫다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아이는 처음 맞은 주사가 아팠는지 다음 팔에 주사를 맞기 싫다고 소리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자꾸 힘을 주며 미끄러지는 아이를 진료의자로 들어 올려 아이를 제대로 앉히려 하면 할수록 아이의 몸은 미꾸라지처럼 아래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생각보다 의지가 생긴 5살 남자아이의 힘이 셌다. 의사와 엄마가 합심해 반대편인 오른팔에 주사 맞을 준비를 하는데, 아이는 계속 버둥거리며 주사 맞기 싫다고 울었다.


의사와 마주 보고 앉아있는 엄마의 눈에는 아이의 버둥거리는 자세를 바로잡으려다가 주사기를 손에 들고 예방접종할 틈을 찾는 의사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아이가 너무 완강하니 다음에 주사를 맞히겠다고 말해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 의사의 주삿바늘이 아이의 오른팔을 찔렀다. 엄마는 아이가 크게 울면서 소리 지르며 버둥거리는 틈에 반대 손을 놓쳤는지도 몰랐다. 아니, 아이의 왼손이 엄마의 힘을 이기고 어떤 찰나에 뻗어 나갔는지도 몰랐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아이의 왼손이 의사의 주삿바늘을 강하게 내리쳤다. 오른팔에 들어갔어야 할 주사액이 하늘로 솟아 뿜어나가더니 의사의 안경알에 5방울 튀었다.


"어머니, 팔을 잡으라고 했잖아요!"


아이의 오른팔에 남은 주사바늘 흔적


의사의 강한 어조의 말이 들렸다. 의사는 주사액이 튄 본인의 안경을 빼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책상에서 두 발자국 옆의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다. 의사는 순간 진료의자에 앉은 엄마의 오른쪽에서 왼쪽 위로 수직이동을 하더니 다시 의자에 앉아 환자와 보호자에게서 등을 돌리고 컴퓨터 모니터만 쳐다봤다. 아이는 억울해 죽는다며 울음소리가 병원 진료실 밖까지 울려 퍼졌다.


의사를 도와 버둥거리는 아이를 온몸으로 방어하느라 엄마는 진이 빠졌는데, 갑자기 의사가 강한 어조로 내뱉은 항의성 말을 듣고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내 아이는 울고 있고, 주사액은 모두 들어갔는지 확실치도 않은데 예방접종에 실패한 의사는 모니터만 쳐다보고 보호자를 쳐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건 무슨 상황일까. 엄마는 정말 아이의 손을 놓친 걸까, 엄마가 잡았던 아이의 강력한 손이 튀어나간 것은 엄마 탓인가. 의사는 두 번째 예방접종 실수의 책임을 전적으로 엄마에게 전가하고 진료실 안의 환자와 보호자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면 나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선생님, 아이가 힘이 센 걸 제가 어떻게 잡아요! 저한테 소리 지르시면 안 되죠."라고 말이다.


둘째가 예방접종을 맞고 이렇게 크게 울기는 처음이었다. 곧 울음을 그쳐야 할 아이가 오늘은 주사를 2대나 맞아 억울하다며 계속 운다. 의사는 평소에 하던 예방접종 후에 목욕은 하루 쉬고 등 주의사항 안내가 없었다. 이미 등 돌린 의사만 쳐다보고 있던 엄마에게 간호사가 의사의 책상에 놓여있던 엄마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적힌 피검사 종이를 들고 가라고 한다.


"엄마, 하나만 맞겠다고 했잖아. 엉엉 누나는 하나도 안 맞는데 왜 나는 두 개나 맞는 거야 엉엉"


진료실에서 나와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도 아이는 계속 울고 있었다. 예방접종 주사를 한 대만 맞아도 아픈데, 두 대나 맞은 본인의 억울함을 계속 하소연하는 중이었다. 엄마는 갑자기 의사에게 한 소리 들은 뒤로 화풀이를 아이에게 하기 시작했다. 그깟 주사 한 대 더 맞는 게 뭐가 힘들어서 의사에게 그런 험한 말을 듣게 한 건지 화풀이가 아이에게로 향했다.


"가만히 있어. 그만 울어!


진료실에 있던 간호사가 아직 대기실로 나오지 않았다. 카운터로 가서 다른 간호사에게 물었다. 방금 예방접종을 맞다가 아이가 거부해서 주사액이 모두 들어가지 않았는데 괜찮은지 물었다. 간호사는 진료실에 본인이 들어가지 않아 잘은 모르겠지만 주사액 용량이 많아서 괜찮을 거라고 했다. 억울하다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여전했다. 엄마는 카운터에서 유료인 2차 수두예방접종비 4만 원을 결제하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문을 나섰다.


3층인 병원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이는 여전히 자기는 누나도 안 맞는 주사를 2대나 맞아서 억울하다고 계속 엄마를 보며 울고 있었다. 엄마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앞으로 힘이 점점 세지면 이 아이를 어떻게 통제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 엄마를 쳐다보며 억울함에 우는 아이를 달래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쏘는 듯이 매섭게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굳은 표정으로 무섭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주사를 놓는데 그렇게 팔로 치면 어떡해! 위험하잖아. 그만 울어."


킥보드를 타고 왔던 아이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징징거림을 멈추고 킥보드를 타고 앞으로 씽씽 간다. 날씨가 좋은 토요일 오전이라 원래 예방접종을 맞고 주변 실내 놀이터에서 잠시 놀다가 집으로 귀가할 예정이었는데 계획을 수정했다. 바로 귀가하기로 했다. 또래보다 덩치 크고 힘이 센 아들을 키우는 엄마도 힘들 수 있구나. 아들은 다음부터 힘이 센 아빠와 예방접종을 맞으러 가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


대여섯 살짜리한테 무시당하면 화가 난다고 하는 황창연 신부가 생각났다. 화는 사실 가정 안에서 많이 난다고 한다. 화가 날 때는 작은 일로 시작해서 나중에 크게 터진다. 오늘의 화는 무엇으로 시작된 것일까.



https://youtu.be/3XcosFLuer8?si=OWo7zN26g5lyEBja

황창연 신부의 행복 특강, 무시당할 때 화가 난다고 한다.
2차 수두예방접종 맞기 싫어 다른 팔로 주사를 내리친 후 난 상처



https://blog.naver.com/lucid_neo/223106522330


https://blog.naver.com/daytoday_life/221603211726


다른 집 딸의 순조로운 예방접종

https://m.blog.naver.com/casiapeia/223412582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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