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카시트에 앉아서 발차기 100번 하기

ep.19 장거리 이동할 때 아들이 하는 일

by 호곤 별다방

남편의 다른 말은 남의 편이다. 내 편이 되고자 원해서 받아들였고 결혼했지만 어느새 남의 편이 되고야 말았다.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가자고 계획을 세우는 나를 전혀 돕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한다. 주당 40시간이 아닌 80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출퇴근을 포함해 회사와 관련된 시간에 인생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결혼 전에 야근도 해보고 오랜 시간 일을 해봐서 안다. 주중에 힘들게 일하면 주말은 좀 쉬고 싶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금요일까지 일했으니 토요일에 늦잠 자고 쉬는 건 이해한다. 그럼 일요일 반나절은 가족들과 함께 외출해도 되지 않을까. 남의 편은 항상 피곤하다. 그래 우리 네 가족을 먹여 살리니 네 뜻을 존중하겠다.


그래도 피할 수 없는 주말여행은 바로 시댁모임과 친정모임이다. 어느 날, 시댁모임을 위해 1시간 거리의 도시로 운전해서 가야 했다. 아들을 운전석 바로 뒤의 카시트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매어 주었다. 어느새 아들은 다리가 자라서 운전석 바로 뒤에 앉은 녀석의 발을 쭈욱 뻗으니 가까스로 운전석에 닿았다. 저번에 앉았을 때는 아무리 뻗어도 닿지 않던 운전석 뒷자리가 발끝에 닿는 느낌이 얼마나 짜릿했을까.


아빠는 운전에 집중해야 하는데 아들 녀석에게 운전석 등받이를 계속 걷어차이고 있다. 운전하는 아빠의 불평에 엄마는 조수석에 앉아 뒤를 돌아본다. 발끝에 온 힘을 주고는 양발을 번갈아가며 아빠의 등받이를 걷어차고 있는 둘째의 표정은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아주 신이 나있다.


아직 말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들은 '내가 아빠에게 이렇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요. 대단하죠?'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다. 아빠는 계속해서 등받이를 걷어차이니 기분이 좋지 않다. 영화관 에티켓에도 있지 않은가. 등받이를 걷어차지 마세요. 아빠는 그만하라고 좋게 말을 했는데, 아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해맑게 웃으며 새로 습득한 능력인 운전석 등받이 발차기에 집중하고 있다.


엄마가 운전할 때는 운전석이 앞으로 당겨진다. 아빠보다 다리가 짧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은 엄마가 운전할 때는 닿지 않았던 운전석 등받이에 오늘 발이 닿았다.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신기한 등받이 놀잇감을 아빠가 운전할 때 발견했다. 너무나 신이 났다. 등받이를 1000번도 넘게 차야 만족을 할 것 같다. 고속도로로 접어든 아빠는 아들에게 경고한다.


"발차기 그만해!"

"히히"


조수석에 앉은 엄마가 아무리 말려도 아들은 발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최소한 500번은 더 차야 멈출 기세이다. 멈추지 않는 아들의 발차기!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아들 신발을 벗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도가 조금은 약해졌지만 그래도 아빠는 운전석 등받이를 계속 걷어차이고 있다. 급기야 다음 휴게소에 들러 카시트 위치를 누나와 바꿨다. 가족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빠가 운전에 집중해야 우리 가족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아들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다.


아들 다리의 성장과정을 사진으로 비교해 보자. 당시의 키는 다음 기회에 적어두겠다.



키가 대파 크기만 했던 아들 2022-0908
택시에는 카시트가 없어 안전벨트만 채운다. 2023-0731
회사에 지각할까 봐 택시를 잡아탄 엄마맘은 애가 타지만 아들은 개의치 않는다. 2023-0915


친정 가족모임으로 1박 다음날 오전 물놀이 후 체크아웃, 이동 중 잠들었다, 2023-0930
택시 타고 이동하는 둘째, 2023-1011
카시트에서 잠든 둘째 머리 위에 첫째가 올려둔 토끼인형, 2024-0501


이렇게 짧아 보이는 다리지만 운전석 등받이 발차기의 위력은 세다. 2024-0518 영흥수목원


의자에 앉으면 다리를 뻗는 게 기본자세인 듯, 2024-0713 국립농업박물관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