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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덕현 Nov 13. 2024

나면 나는 대로, 빠지면 빠지는 대로

- 환삼덩굴과 탈모의 상관관계 

매일 산보를 나가는 창릉천은 평화롭기 그지없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곳이 전쟁터나 다름없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산책길은 몇 달만 방치하면 풀들이 침범해 온다. 그래서 그 길은 걷기조차 어려워진다. 걷는 내내 정강이를 스치는 풀들이 내는 작은 상처들의 결코 작지 않은 가려움과 아픔을 줄 때 나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다른 길을 찾아간다. 그래. 네가 이겼어. 


공공근로에서 나와 풀들을 싹 제거하고 나면 마치 오래도록 깎지 않고 방치해 둬 덥수룩했던 머리를 말끔하게 정리한 듯한 산책길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면 다시 그 길을 걷는다. 그러니 그곳은 엄밀히 말하면 끝없이 자라나 틈만 나면 제 땅이라고 산책길로 기어 나오는 풀들과, 때 되면 그 풀들을 깎아 지나다닐 수 있게 만들려는 사람들과의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그 전쟁은 꽤 치열하고 질깃질깃하다. 결코 끝나지 않을 싸움이니. 


여름의 끝자락에 산책길을 걷다가 거대한 나무 하나를 집어삼킨 덩굴을 봤다. 천을 뒤집어써서 마치 유령 같은 기괴한 형상을 한 그 모습 앞에서 나는 전쟁이 인간과 풀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길가까지 뻗어 나오는 덩굴의 이름은 '환삼덩굴'이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생장 속도가 엄청나고 순식간에 자라 다른 식물들을 휘감아서 말라죽게 함으로써 서식지를 넓혀간다고 한다. 이 덩굴을 '잡초제거작업으로 제거하지 않으면 기존 고유식물들이 살 곳이 좁아진다'고도한다. 그래서 이른바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됐다. 

매일 산책길을 걸으며 관찰하다 보니, 거대한 나무 한 그루를 뒤덮어 햇볕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환삼덩굴과 겨울이면 말라버리는 덩굴을 뚫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나무가 서로 치고받고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덩굴이 힘을 못쓰는 겨우내 나무는 앙상한 제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따뜻해지는 봄이 오면 덩굴들이 마치 목을 쭉쭉 뽑아 올리고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나면 또다시 덩굴은 나무를 뒤덮었다. 생명력이 차오르는 따뜻한 날들에 덩굴은 나무는 물론이고 천변의 식물들을 뒤덮어버렸고 심지어 전봇대를 타고 오르거나 나무와 나무 사이를 넘어가고 전선줄을 타고 오르기도 했다. 


그 생명력이 너무나 놀라워 산책길을 걸을 때마다 지구를 지배하는 건 인간이 아니라 이런 식물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우리는 우리에게 편리한 대로 걷기 편한 길을 내려 때 되면 제초작업을 벌이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저들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계속 걷기 편한 길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건 이 식물들 입장에서는 자기들 편한 길일 게다. 우리의 관점으로만 보니 저들은 그저 성가신 '잡초'이고 '생태계 교란 생물'이지만 저들은 사실 아무런 악의가 없다. 그저 태어난 대로 생존하려 할 뿐인 거다. 

꽃가루가 날리는 8월에서 9월 초에는 알레르기를 유발한다고 하고, 잔가시가 많아 제초작업을 어렵게 해 농민들의 골칫거리라고도 하는 '환삼덩굴'이지만 인간이 이 풀에 적응하고 때론 이용하고 있다는 건 놀라운 사실이다. 검색창에 '환삼덩굴'을 쳐보면 '효능'에 대한 정보들이 쏟아져 나온다. 혈압을 낮추는 성분이 있어 고혈압 환자에게 유익하다는 말도 있고(동의보감에도 나와 있단다), 나아가 항산화 효과가 있어 노화를 늦추고 면역력을 증진시키는데 큰 도움을 준다고도 한다. 


그중에서도 놀라운 뉴스는 환삼덩굴이 탈모 방지에 효능이 있어 샴푸로 재탄생했다는 기사다. 나이가 들면서 자꾸만 머리털이 빠져나가는 탈모인 중 한 명인 나는 그 기사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풋 웃음이 터졌다. 풀을 베고 잘라내도 엄청난 생명력으로 다시 자라나는 환삼덩굴의 그 이미지가 내 머리 위에서 펼쳐지는 상상이 난데없이 틈입해서다. 내 머리카락이 저 환삼덩굴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난데없는 바람이 상상 속에 펼쳐졌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환삼덩굴을 보며 탈모 방지를 떠올리는 상상력이라니. 

사실 우리는 저도 모르게 우리의 관점 안에 붙잡혀 있다. 환삼덩굴과 나무는 결코 싸우는 게 아니다. 그저 자나라고 있는 것이고 가까이 있어 겹쳐지는 것이다. 거기에 '생존'이니 '전쟁'이니 하는 건 우리가 붙여 놓은 해석일 뿐이고. 아마도 우리 역시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면, 나이 들어 머리가 빠지는 일은 당연한 일일 뿐, 탈모니 대머리니 하는 단어들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 정도가 될 것이다. 나면 나는 대로, 빠지면 빠지는 대로 그렇게 자연스러운. 


차가워지는 날씨에 환삼덩굴은 이제 말라가고 있다. 덩굴에 뒤덮여 있던 나무도 겨울이 되면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겨우내 말라있던 풀들은 또 봄이 되면 다시 하나둘 고개를 들고 자신들이 살아있다는 걸 드러낼 것이다. 그저 그런 것이다. 나면 나는 대로, 빠지면 빠지는 대로.

202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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