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 첫번째 주제 : 시작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본 초등학생이 여러 나라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무언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동기부여를 느낀 날. ‘요즘은 중국어가 대세라던데’라고 읊조리며 곧바로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교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 권으로 끝내는 중국어>, <중국어 회화 마스터>, <중국어 첫걸음> 등 평소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책들의 이름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채 별점과 후기를 비교했다. 하나도 도움이 안 됐다는 글부터 이 책을 통해 몇 달도 안 걸려서 자유롭게 중국어를 구사했다는 믿기 어려운 후기까지 꼼꼼히 살펴보다, 목차와 구성을 자세히 찍어 올린 블로그에 소개된 배우기 쉽고 CD까지 탑재되어있다는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 주문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이미 유창하게 중국어를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상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외국어에 대한 욕망이 강했던 나는 종종 다양한 언어를 구상하는 자신을 떠올리곤 했는데, 마침 방학인 데다 하는 일도 없는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해버린 모양이었다. 곧바로 스페인어 교재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결국 <스페인어 첫걸음의 모든 것>이라는 이름의 교재도 주문해버리고 만다. 아주 알찬 방학이 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어디선가 솟구치고 있었다. 방학이 끝날 쯤엔 두 가지의 언어를 더 구사할 수 있겠지. 자신감에 힘입어 외국어를 공부하기 위한 공책도 두 권 마련하고 매일 몇 시에 공부할 건지 계획도 세웠다. 벌써 4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내 자신이 매력적인 것 같았다. 외국인들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모습도 상상해보았다. 아무리 떠올려도 멋진 삶이라고 생각했다.
이틀 후, 교재가 도착하고 공부를 시작한다. 강좌를 열심히 듣고 책에 밑줄도 그어가며, 몇몇 단어는 큰소리로 발음까지 해보며 열정적으로 공부한다. 그리고 다시 이틀 후, 그 책은 책장 어딘가에 꼽혀 나오지 못하게 된다. 공책은 두 장 정도만 빼곡히 적혀있다. 결국, 내가 아는 중국어라고는 ‘니 취판러마’와 같은 중국어를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사람도 알 것 같은 간단한 어휘 몇 가지, 스페인어는 그저 알파벳 읽는 법정도 밖에 모른 채 4개 국어를 향한 도전은 끝을 맺었다.
이런 식의 작심삼일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정성하를 기대했으나 F코드를 겨우 잡고 그만둔 기타 연습, 우락부락한 근육을 기대하며 등록했던 헬스장, 파워블로거를 꿈꾸던 쓰다만 블로그와 아직 베트남을 여행하고 있는 유튜브까지. 하고 싶은 일은 넘치고 아이디어는 넘쳐나서 쉽게 일을 벌이지만 끝을 보는 경우가 잘 없었다. ‘일을 시작하는 데 있어 추진력은 좋지만 뒷심이 부족한 편, 즉 용두사미가 되기 쉽다.’ 오죽하면 MBTI라고 하는 성격유형 검사의 결과에서조차 나의 약한 뒷심을 지적하고 있었다. 몇 번씩이나 뱀의 꼬리가 되는 일은 조금 비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스스로의 다짐을 지키지 못하는 나약한 놈, 게다가 상습적이라니. 나중에는 무엇 하나 이뤄놓은 것 없이 비참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 들게 했다. 가끔은 이런 나의 태도를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던가. 여전히 잦은 시작만 존재할 뿐이었고, 그 결과라곤 뭐든 할 줄 알지만 잘하는 건 하나도 없는 그런 존재가 되는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자기 소개란이나 이력서에 ‘특기’를 써넣는 일이었다. 취미나 관심사라면 수백 가지도 써넣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일이라곤 ‘설거지’와 ‘아무 데서나 잠들기’처럼 (사실 이마저도 남들보다 뛰어난지는 모르겠지만) 그 누구도 특기 란에 쓰지 않을 것 같은 능력뿐이었다.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잘하는 게 뭐에요?”라고 물어보면 벙어리가 되어버렸는데 대충 “글쎄요.” 라거나 “잘하는 건 없는데 좋아하는 건 많아요.”라고 하며 답변을 흐려버리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노래나 춤, 요리와 같은 능력을 자신 있게 소개하는 걸 볼 때면 비참함은 배가 되었다. 이제껏 살면서 어떤 일 하나에 미쳐서 몰두해 본 적이 없는 것이 부끄러워 당장 숨고 싶은 마음에 땅바닥만 하염없이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특기’에 쓰고 싶은 말이 생겼다.
이스탄불의 갈라타 다리 옆에서 검푸른 색의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이맘때 나는 동행들의 영향으로 매일같이 글을 쓰는 중이었는데, 이날도 마찬가지로 해 질 녘의 분위기에 젖어 핸드폰 메모장에 순간의 감정을 기록하는 중이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글에 꾸겨 넣고 고갤 들어 진홍빛 하늘을 가르는 갈매기 무리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온몸이 떨렸다. 가슴 깊은 곳에서 진한 행복함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이것만큼은 계속하고 싶다고, ‘시작’에서 멈추지 않고 싶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보다 더 잘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걸 적어도 되는지에 대한 자신은 없었지만, 글쓰기만큼은 나의 특기로 쓰고 싶어졌다. 언젠가는 나의 용 꼬리가 꼭 글쓰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시 메모장을 켰고 방금 쓴 글의 가장 아래에 한 문장을 덧대어 썼다.
“이날의 기분을 잊지 않기를, 꾸준히 쓰고 기록하고 만들어내기를.”
문장을 마치고 다시 메모장을 바라보니 그동안 써왔던 글들이 보였다. 이 정도 꾸준함이면 언젠간 잘하는 게 뭐냐는 말에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다시 고개를 들었고 깊은 지중해는 여전히 잠잠히 물결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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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다가왔고 매년 그랬듯 새로운 플래너를 장만했다.
새 플래너의 첫 장에는 올해의 목표를 쓰는 칸이 있었는데, 한참을 고민하다 너무나도 유명한 성경의 한 구절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는 앞 문장에 줄을 그어 버렸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창대한 시작이 아닌 창대한 끝을 맞이하고 싶었다. 시작은 아무래도 좋았다. 더 이상 시작에만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장치를 만들어나가기로 했다. 글쓰기 모임을 만들고 글을 써서 서로 공유하는 자리를 만들고 누군가에게 글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만들었다. 다양한 시작들을 지속해보기로 했다. 갈라타 다리 옆에서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글 쓰는 일은 벅찬 일이니까, 잊지 않았으니까.
올해의 버킷리스트엔 여전히 중국어와 스페인어 공부하기가 자리 잡았다. 기타 연주와 블로그, 유튜브도 여전히 한 자리씩을 차지했다. 또 새로운 시작을 맞을 준비를 하겠지. 아마 살아갈수록 매년 쓰게 될 버킷리스트 목록은 더욱 길어질 것 같다. 대신 몇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목록들은 조금씩 진하게 기록되어 조금은 더 ‘특기’와 가까워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올해의 끝엔 4개 국어를 구사할 순 없어도 몇 개의 중국어 단어를 더 알고 있을 것이고, 기타로 칠 수 있는 곡도 두어 개는 늘어날 것이다. 중요한 건 끝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삶이 지속되는 한 나의 시작들은 여전히 –ing상태로 곁에 맴돌 것이니, 나에게 필요한 건 잊지 않는 일이었다. 다시 하나둘 공책을 꺼냈다. 책장에 꼽힌 책을 빼 들고 먼지를 닦아냈다. 녹슨 기타 줄을 잘라내고 새 기타 줄을 갈아주었다. 블로그에 담을 사진들을 정리했다.
어쩌면 매년 시작하는 나의 다짐들은 아주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한 발짝, 한 발짝씩, 다만 목적지는 잊지 않은 채로.
from.시언